제5장 과학기술 경쟁력과 싱크탱크


                                          전승준 (고려대 화학과)

목   차


1. 21세기 국가과학기술 향상을 위한 싱크탱크 


1) 21세기 환경 변화

2) 국가 미래 경쟁력 증진을 위한 과학기술의 역할 및 필요성

3) 싱크탱크의 중요성


2. 과학기술분야 싱크탱크의 범위


1) 과학기술 분야의 범위

2) 싱크탱크의 종류와 특성


3. 국내 싱크탱크의 생성.발전 및 역할


1) 싱크탱크의 형성 및 발전과정

2) 싱크탱크의 현황.역할


   (1) 정부기관

   (2) 민간기관

   (3) 대학관련기관


4. 외국 싱크탱크의 생성.발전 및 역할


1) 미국의 싱크탱크

2) 일본의 싱크탱크

3) 유럽의 싱크탱크


5. 정책 건의 : 국가경쟁력 강화를 위한 바람직한 싱크탱크


1) 싱크탱크의 기능

2) 싱크탱크의 구성원

3) 싱크탱크의 운영

4) 싱크탱크의 바람직한 역할

5) 다학제적 싱크탱크


제5장 과학기술 경쟁력과 싱크탱크


                                          

1. 21세기 국가과학기술 향상을 위한 싱크탱크 


1) 21세기 환경 변화

21세기는 여러 면에서 변화가 있을 것이라고 예상하고 있다.  그리고 이러한 변화는 우리의 삶을 풍요롭게 하는 방향으로 가도록 노력해야 할 것이다.  20세기는 과학기술의 세기였다고 할 만큼 문명발전에 과학기술이 매우 큰 기여를 하였다는 것에 동의하는 것 같다.  그 이전에는 소수만이 누릴 수 있었던 혜택을 과학과 기술의 발전을 통하여 다수를 대상으로 하는 대량 생산기술 관련 산업의 발전으로 선진국을 중심으로 다수가 획기적으로 향상된 생활환경을 누리게 되었다.  21세기에는 사회적 국가적으로 새로운 변화가 있을 것이라고 예측하고 있다.  지식을 기반으로 하며 세계화, 정보화가 사회 경제 발전의 중요 수단이 되리라고 예상한다. 즉, 21세기의 지식기반 글로벌 정보화 사회에서는 국부와 성장의 원천이 과거의 물질적 자원과 노동력에 의한 인적자원에서 정보와 과학기술을 핵심으로 하는 지적자원으로 전환되어 새로운 지식을 창출하거나 습득한 지식을 활용하는 것이 더욱 중요해질 것이다. 

현재 우리나라 과학 기술력의 수준은 선진국에 비하여 아직 크게 뒤떨어져 있는 것은 물론 우리나라와 산업 경쟁 대상국 들과 비교하여도 별로 우위에 있지 못한 형편으로 과학기술분야의 획기적 육성이 시급한 실정이다.   앞으로 국가경쟁력에서 더욱 중요한 역할을 차지할 것으로 예상되는 과학기술의 효과적 육성을 위하여, 그리고 이러한 과학기술력을 효과적으로 국력 신장에 연계가 될 수 있는 국가적 체계를 갖추기 위한 싱크탱크의 역할 및 육성에 관한  정책방안을 제안하고자한다. 


2) 국가 미래 경쟁력 증진을 위한 과학기술의 역할 및 필요성

앞으로 미래사회의 대변혁을 주도하는 핵심요인 중의 하나가 과학기술이 될 것이며, 과학기술은 경제·사회발전과 상호작용을 일으켜 끊임없이 발전영역을 넓히고 발전 속도를 빠르게 하여 미래의 소망스런 모습을 창출하는 원동력으로서 역할을 할 것이다.

과학기술력은 에너지·자원 등 물적 자원보다도 더 소중한 경제사회 발전의 동력이 될 뿐 아니라 지식·정보화를 촉진하여 정치·경제·사회·문화·행정 등 각 분야의 효율을 제고하고, 산업의 경쟁력 확보에 핵심적으로 작용하여 국부창출의 엔진으로서 역할을 한다. 또한 과학기술은 보건, 의료, 복지 및 환경문제 해결을 가능케 하여 건강하고 쾌적하고 안전하고 편리한 삶을 보장해 주며, 다양한 생활양식과 의식구조를 지탱해 줌으로써 궁극적으로는 풍요롭고 소망스런 인간중심사회를 구현하는 원천이 된다. 과학기술의 우위는 자유와 안보를 지키는 수단을 제공하고, 국가의 위상을 드높이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며, 과학기술은 창조와 발전의 씨앗인 지식을 창출·활용하고 확산시키는 핵심인자이면서 이에 필요한 환경까지 조성하는 역할을 수행한다. 아울러 과학기술의 발전과 그로 인한 경제·사회의 성장과정에서 나온 역기능적 부산물을 과학기술로 해소하고, 과학기술의 발전이 초래할지 모를 피해를 방지하며, 사회가 건전한 의사결정을 내릴 수 있도록 사회에 책임을 지는 과학기술로서의 역할을 한다.

다시 말해 과학기술의 발전은 지식정보화를 촉진하고 21세기 무한경쟁시대에 살아남기 위한 산업경쟁력 확보와 국부창출의 기반을 제공하고, 또한, 개인과 국가의 기본적인 욕구인 삶의 질 향상과 국가안위를 보장하며, 지식에 기반을 둔 창조적인 사회를 건설하는데 이바지하게 될 것이다.




[그림]  과학기술의 역할


한편, 앞으로 전개될 과학기술의 특징적 발전 양상은 대략 다음의 네 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첫째,과학과 기술, 과학과 과학, 기술과 기술간의 융합화 현상이 확산될 것이다. 과학적 발견이 기술혁신을 촉진시키고 이러한 기술혁신의 성과가 다시 과학연구를 가속화시키는 등 과학과 기술이 연계되어 발전하는 추세가 확대될 것이다. 또한 기술의 활용도가 높은 전자기술 등을 중심으로 타 분야 기술이 광범위하게 결합 또는 융합됨으로써 새로운 형태의 기술혁신을 창출하는 융합화·복합화 현상이 더 크게 확산될 것이다.

둘째,기술의 시스템화와 지능화가 성숙단계에 이를 것이다. 인류는 지속적으로 사용의 편리성을 추구하여 왔으며, 따라서 앞으로 시장에 나오게 될 제품은 자동감지능력과 자율적 판단능력을 갖추고 상황에 맞춰 동작하는 지능형 제품이 될 것이다.

지능화로 가기 위한 중요한 기술발전방향으로는 먼저 인간의 의도를 읽어낼 수 있는 센서 기술, 자기학습능력을 바탕으로 하여 자체 지각능력을 실현하는 기술, 그리고 시스템과의 인터페이스를 위한 음성인식기술, 뇌파를 인식하여 시스템과의 접속을 편리하게 하는 친숙한 사용자 환경 등이 될 것이다. 또한 개발된 첨단기술들을 네트워크화하여 시스템기술로 통합하는 추세가 확산될 것이다.

셋째,기술혁신 속도가 날로 가속화되고 순환주기가 단축될 것이다. 신제품으로의 대체기간과 성능향상 속도가 크게 단축되는 등 기술혁신의 속도가 가속화되고 있으며, 과학적 발견·발명으로부터 실용화까지의 속도 역시 크게 단축되고 있다.

넷째,극한기술의 추구와 응용이 확대될 것이다. 앞으로 극저온, 초고온, 초진공, 초고압, 해저도시 및 우주기지 기술 등 인간의 활동능력과 이용공간의 확장을 지향하는 기술개발이 활발하게 전개될 것이다. 또한 경량화, 소형화, 저소비전력화 등 휴대성에 대한 요구와 빠른 처리속도와 대용량의 저장기능에 대한 소비자의 욕구가 지속적으로 증대되고, 나노(nano)기술 등 새로운 기술의 발전과 더불어 극한기술에 대한 관심이 날로 높아지고 있다. 이에 따라 극한기술에 대한 투자가 날로 증대되고 있으며, 기술발전속도도 가속화되어 새로운 응용기술에 대한 촉매로 작용할 것이다.

이러한 기술혁신의 발전양상에 따라 향후 전개될 미래 유망기술의 발전방향은 다음과 같이 예측되고 있다.

과학기술의 예측을 통하여 주요 선진국들은, ① 정보화사회의 기반을 구축하는데 필수분야인 정보기술, ② 생명의 안전성을 보장하는 생명의료기술, ③ 환경오염 문제에 대응하고 지속성장을 유지하기 위한 환경기술, ④ 에너지 고갈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에너지기술, ⑤ 그리고 전 기술분야의 기반이 되고 새로운 기술영역을 창출하는 재료기술 ⑥ 산업경쟁력 확보에 필수적인 메카트로닉스․시스템기술 등을 핵심유망기술분야로 설정하고 적극적인 정책적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미국은 장기적으로 경제성장을 촉진시키고 선도자로서의 미국의 지위유지 등을 뒷받침할 수 있는 유망 핵심기술로 에너지, 환경, 농업․식량, 정보(통신), 정보(컴퓨터하드웨어), 정보(소프트웨어), 정보(서비스), 재료, 제조․로봇, 의료, 우주, 교통분야를 선정하였으며, 일본은 2025년까지 과학기술창조입국을 달성하기 위하여 재료․공정, 전자, 정보, 생명공학, 우주, 교통, 해양․지구, 자원․에너지, 환경, 농림수산, 통신, 생산․기계, 보건․의료, 도시․건축․토목 및 복지 분야를 중요시하고 있다.

프랑스는 2010년 산업기술경쟁력을 제고하고 사회 변화에 대응하기 위한 핵심산업전략기술을 고려하여 보건․환경, 통신, 운송, 소비물자, 주거․인프라, 생명과학, 정보, 에너지, 소프트웨어, 재료 등의 기술분야를, 영국은 2020년 지식주도의 경제 건설을 목표로 환경․교통, 화학, 방위․우주, 에너지․환경, 금융서비스, 식품, 보건, 정보․통신, 재료 등을 핵심 기술분야로 선정하였다.

독일은 2020년 미래예측을 기반으로 재료․공정, 정보․전자, 생명과학, 소립자, 해양․지구, 광물․수자원, 에너지, 환경, 농림수산, 생산, 도시․건축․토목, 통신, 우주, 교통, 의료․보건․사회생활 분야 등에 정책을 집중하고 있으며, 호주는 국가가 2010년까지 전략적으로 필요한 핵심 기술로 환경(에너지), 교통, 정보통신․전자, 유전․생명공학, 정밀․제조, 신소재 기술 등을, 그리고  대만은 2010년 기술진보국가를 구현하기 위한 전략수립의 일환으로 멀티미디어(통신), 생명공학, 우주, 정밀기계, 신소재, 전기자동차 등을 미래 핵심기술로 선정해 집중 지원중이다.


3) 싱크탱크의 중요성

싱크탱크는 무형의 두뇌를 자본으로 하여 영위되는 기업이나 연구소로서, 일반적으로 사회과학.자연과학을 불문하고 모든 전문 분야의 이질적인 두뇌를 조직적으로 결집시켜 연구개발이나 조사.분석에 전념하게 하여 여기서 얻어낸 지식이나 기술을 제공하는 단체로서 정의되고 있다.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과학기술은 21세기 국가 경쟁력을 구성하는 중요한 요인 중의 하나가 될 것이다.   과학기술 분야의 싱크탱크는 크게 두가지 점에서 중요할 것이다.  하나는 21세기에도 역시 제조업은 계속 일정한 수준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할 것이다.  왜냐하면 인간은 삶을 영위하기 위하여 제품을 소비할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새로운 제품을 고안하기 위한 아이디어, 제품을 효율적으로 생산하기 위한 아이디어 등은 산업계에서 지속적으로 필요하고 이는 기업의 방향을 컨설팅하는 싱크탱크가 해야할 역할 일 것이다.  싱크탱크가 제공하는 아이디어는 기업의 사활이 걸리는 중요한 사안이 될 수 있다.

다른 하나는 국가적인 차원에서 과학기술에 대한 지식과 아이디어가 국민의 삶의 질을 향상시키고 국가안위에 중요할 수 있기 때문에 싱크탱크가 이러한 지식과 아이디어를 제공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최근 국가를 경영하는 일은 정치, 경제, 사회, 과학기술, 환경 등이 복잡하게 연관되어 있기 때문에 항상 상호연관된 상황을 고려하여 국가적인 정책이 결정되어져야 한다.  그렇지 못한 경우는 비록 좋은 정책이라고 하여도 국민들의 지지를 얻지 못하고, 따라서 정책의 시행과정에서 실패를 할 수 있다.  따라서 과학기술에 대한 지식과 아이디어는 국가의 정책을 결정하는데 앞으로 더욱 중요한 요인이 될 것으로 예상된다. 

한 예로 최근에 우리나라의 방송과 전자산업의 방향을 정하는 중요한 이슈인 디지털 TV의 방송 방식의 논란이다.  디지털 전송 방식은 크게 미국식과 유럽식으로 나누어져 있다. 전 세계적으로 미국과 캐나다만이 미국식을 채택하고 있고 그 이외의 나라는 유럽식을 사용하고 있다.  우리나라는 1997년 디지털 TV 전송방식을 미국식을 결정하였다.  그러나 그 후 꾸준히 미국식 방식의 문제점이 제기되어 최근까지도 논란이 되고 있다.  왜냐하면 기술적인 면에서 유럽식이 미국식보다 우세하기 때문에 우리나라에서도 이제라도 유럽식으로 바꾸어야한다는 의견이 끊임없이 제기되고 있다.  이러한 논란은 난시청 지역의 수신율이 유리하고 특히 이동상황에서 매우 우수한 수신율을 보이는 유럽식이 대다수 국민들의 수신의 편이성을 고려할 때 선택되어져야 한다는 논리를 시민단체를 중심으로 제기되어지고 있다.  반면 정부와 업계쪽에서는 미국이 TV 수출시장으로 매우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으므로 미국의 시장을 바라보고 산업계의 국제 경쟁력을 키우기 위하여 미국식을 채택하여 경쟁력을 향상시켜야 한다는 논리이다.  두 쪽 다 일리가 있는 제안이지만 결국 어느 한 방식을 결정하여야 한다.  이러한 결정은 기술의 우수성만으로 판단할 수 없는 것으로 사회적으로 미치는 영향을 국민의 여론을 수렴해야하며 또한 국가 경제에 미치는 영향을 고려해야한다.  그리고 이러한 사안은 우리나라의 정보통신 산업의 근간을 결정하는 매우 중요한 일이다. 그러면 이러한 사안에서 과학기술 분야의 싱크탱크는 우선 기술적인 면에서 어떠한 편견없이 송출방식의 기술적인 면의 평가를 정확하게 제시할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경제적 사회적인 면을 고려하여 정책을 결정하는데 과학기술 분야에서 조언을 하는 일은 국가적으로 매우 중요한 일이다.  비단 이러한 예 이외에도 체세포 복제문제, 환경과 산업발전의 문제 등 국가의 경제적, 사회적 중요한 이슈가 과학기술과 관련이 있고 이러한 이슈들에 대한 정책을 결정하는데 과학기술 분야의 싱크탱크는 매우 중요한 역할을 담당해야 할 것이다.


2. 과학기술분야 싱크탱크의 범위


1) 과학기술 싱크탱크의 범위

과학기술 분야의 싱크탱크의 범위를 정의하는 것은 다른 분야의 싱크탱크의 범위를 정의하는 것과 약간 다른 점이 있을 것 같다.  앞서 싱크 탱크는 일반적으로 두뇌를 사용하여 연구개발이나 조사분석을 통하여 얻어낸 지식이나 기술을 제공하는 기관으로 정의되었고 과학기술 분야에서의 싱크탱크 역시 이러한 종류의 싱크탱크가 있을 것이다.  그러나 과학기술 분야에서 싱크탱크는 특수한 분야의 과학기술 연구와 밀접한 관련이 있으므로 연구기관이 싱크탱크로서의 역할을 겸하는 경우가 많이 있다.     

 

2) 싱크탱크의 종류 및 특성

과학기술 분야의 싱크 탱크는 다음의 두 가지로 분류하여 생각할 수 있다.


가. 목적지향적 싱크탱크 (mission-oriented think tank)

이러한 싱크탱크는 일반적으로 어떤 특정 분야의 과학기술 연구기관일 경우이다. 과학기술적으로 정확한 목적을 가지고 이를 이루기 위하여 노력하는 연구집단이다.  이러한 싱크탱크는 특정 과학기술 분야의 전문가, 과학자 또는 기술자를 다수 보유하게되고 그들은 그 분야에 대한 특정 연구주제에 대하여 연구를 수행한다.  연구는 대부분이 산업적 또는 국가방위를 위한 목적으로 수행되기 때문에 목적지향적 응용 또는 개발연구를 수행하게 된다.  이러한 싱크탱크의 예로는 우리나라의 대다수의 출연연구소를 들 수 있고 미국의 경우 항공우주국(NASA)같은 곳이 대표적인 예가 될 수 있다.    


나. 목적설정적 싱크탱크 (mission-pointing think tank)

이러한 싱크탱크는 과학기술분야의 목적을 설정하기 위하여 자료를 수집하고 분석하여 타당성 있는 목적을 제안하거나 목적을 설정하기 위한 기초자료를 제공하는 집단이다.  이 싱크탱크에는 과학기술의 전문 분야의 과학자 또는 기술자를 포함하여 과학과 기술의 전반에 대하여 조망할 수 있는 과학기술 전문가로 구성되어, 산업계에는 과학기술적인 컨설팅을 하고, 국가적으로 과학기술의 역할과 발전방향를 포함하여 미래를 전망하여 정책을 제안하고 전략을 수립하여 기업 또는 정부의 의사 결정에 조언하는 기관이다.  이러한 예로는 우리나라의 경우 출연연구소 중의 하나인 과학기술 정책연구원(STEPI)을 들 수 있고 미국의 경우에 Arthur D. Little(ADL)연구소가 그 예가 될 수 있다.  


3. 국내 싱크탱크의 생성.발전 및 역할


1) 싱크탱크의 형성 및 발전과정

우리나라의 싱크탱크는 1960년대에 국가의 경제발전을 위한 과학기술 분야의 지원기관으로서 정부 출연연구기관의 발족이 그 효시하고 할 수 있다.

우리나라 정부출연연구기관의 설립 및 발전과정을 살펴보면, 1960년대 경제개발계획 추진과정에서 국가 과학기술개발을 선도할 연구기관으로 한국과학기술연구소(KIST)가 설립(1966년)되었고, 이후 기술분야별 전문출연연구기관들이 1970년대에 설립․운영되어 선진도입기술의 소화․개량 및 산업기술 개발지원으로 경제․사회발전에 기여하였다.  1980년 과학기술계 연구기관 정비방안에 따라 각부․처에 산재한 16개 정부출연연구기관(과기처 5, 타부처 11)을 9개 기관으로 통폐합하여 과학기술처에서 육성․지원기능을 담당토록 일원화되었고, 이후 한국전자통신(연)은 정보통신부로, 한국인삼연초(연)은 재정경제부로, 한국해양연구소가 해양수산부로 이관되었으며, 한국항공우주연구소등이 한국기계연구원에서 분리․독립하여 과학기술부 산하에는 20개 출연기관(7개 부설기관 포함)이 운영되어 왔다. 1990년대 말에 들어 정부출연(연)이 경제․사회변화에 보다 효과적으로 대응해야 한다는 요구가 높아지면서, 경영혁신의 일환으로 제정․공포(’99.1.29)된 『정부출연연구기관등의설립․운영및육성에관한법률』에 의거 정부출연(연)의 관리․감독기능을 국무총리실이 총괄하여 담당하게 되었다. 과학기술부도 동법의 시행에 따라 한국과학기술연구원등 13개 기관(4개 부설기관 포함)을 국무총리실로 이관하고, 교육․연구기관과 원자력 관련기관, 사업관리 및 지원기관인 한국과학기술원등 8개기관(2개 부설기관 포함)만 관리하고 있다.

민간의 경우 1980년대에 들어오면서 대기업을 중심으로 과학기술분야의 연구소가 설립되기 시작하였다.  삼성, LG, 대우등 재벌 기업에서는 각 산하 기업의 기술적인 뒷받침을 위하여 대규모의 종합기술연구소를 설립하였다.  그러나 이러한 연구소가 기업의 싱크탱크로서의 역할보다는 제품개발을 위한 기술적인 지원을 위한 것이었고 싱크탱크의 역할은 오히려 재벌 기업의 기획실에서 과학기술의 전문인력을 두어 수행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2) 국내 싱크 탱크 현황.역할


   (1) 정부기관


 가. 정부출연기관


  정부출연연구기관은 국가의 과학기술혁신 수요에 적극적으로 부응하고 자체기술개발능력의 축적 및 향상을 도모하기 위해 우수한 연구인력과 최신의 연구설비를 갖춘 연구조직으로서 정부의 재정적 지원으로 설립․운영되는 연구기관을 뜻한다.  정부출연연구기관을 설립한 이유는 공공기능적인 업무를 수행하지만 예산회계법과 공무원임용령의 경직성에서 탈피하여 인사․급여관리, 재무․회계관리 등에 있어 공직사회에 결여되기 쉬운 탄력성을 부여하여 연구생산성을 극대화하고자 하는데 있다.


                        부처별 과학기술분야 관련 출연기관 현황

소     관

기          관          명

기관수

과   기   부

한국과학기술원, 광주과학기술원, 한국원자력연구소, 한국원자력안전기술원, 원자력병원, 한국과학재단, 고등과학원, 한국과학기술평가원

8기관

국무총리실 

기초기술연구회

한국과학기술연구원, 한국천문연구원, 한국기초과학지원연구원, 한국생명공학연구원

19기관

공공기술연구회

한국지질자원연구원, 한국에너지기술연구원, 한국항공우주연구원, 한국표준과학연구원, 한국해양연구원, 한국철도기술연구원, 한국건설기술연구원, 한국과학기술정보연구원

산업기술연구회

한국기계연구원, 한국전기연구원, 한국화학연구원, 한국식품개발연구원, 한국전자통신연구원, 한국생산기술연구원, 한국한의학연구

가) 인력현황

정부출연(연)의 인력은 2001년 12. 31현재 정규직 직원을 기준으로 과기부 산하 8개 출연기관에 3,147명과 국무총리실 산하 19개 출연연구기관에 6,859명으로 총 10,006명이 종사하고 있다. 정부출연(연)의 인력은 1997년에는 10,877명이었으나 IMF사태 극복을 위해 공공부문에 추진된 구조조정과정에서 출연(연)에 대한 경영혁신을 추진하면서 인력감축을 시행한 결과 1999년에는 9,505명까지 감소되었다가 2000년부터 다시 증가하기 시작해 현수준에 도달하였다.

이중에서 연구원은 6,546명, 기술원 1219, 행정원 954, 기능원 1,287명으로 연구원이 차지하는 비중이 전체 인력의 65.4%에 달한다. 1997년에는 연구원이 전체 출연기관 종사자의 54.7%로 5,946명이었던 것에 비하면 연구원의 비중이 크게 높아진 것이며, 이는 경영혁신과정에서 정부출연(연)의 인력구조를 연구원중심으로 재편하려는 노력이 반영된 것이다.


나) 조직구조

과학기술부 산하 8개 정부출연기관의 조직은 이사회, 기관장, 연구조직 및 지원조직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이사회는 11인내지 15인 이내의 이사로 구성되어 있다. 이사회는 연도별 사업계획 및 결산의 승인, 임원의 선임과 해임, 중요재산의 처분 및 취득관리, 정관변경, 중요규정의 제․개정, 부설기관의 설치 등의 중요사항을 의결한다.

원(소)장은 경쟁․공모방식에 의거 각 기관의 원(소)장 후보추천위원회의 주관으로 공모절차를 거쳐 응모자중 후보자를 복수로 이사회에 추천하고, 추천후보자중 적임자를 이사회에서 선임하여 감독관청인 과기부 장관의 승인을 받아 취임하며 기관운영 전반에 대한 책임을 지고 있다.

그러나, 국무총리실 산하 정부출연연구기관은『정부출연연구기관등의설립․운영및육성에관한법률』에 근거하여 각 출연연구기관(법인)의 이사회를 해산하고, 국무총리실 산하에 5개 연구회를 구성하였으며, 각 연구회의 목적 및 기능에 따라 각 부․처에서 출연연구기관을 이관받아 과학기술계 3개 연구회에 19개 연구기관이 소속하게 되었다.

연구회의 이사회는 이사장 1인을 포함 15인 이내의 이사로 구성된 출연연구기관의 최고의사결정기구이다. 연구회 및 소관연구기관의 예산 및 사업계획의 승인, 소관연구기관의 원장 및 감사의 임면, 소관연구기관의 경영목표의 승인, 소관연구기관의 기능조정 및 정비(신설․통합 및 해산 포함), 소관연구기관의 실적 및 경영내용 평가, 소관연구기관간 협동연구를 위한 필요한 조치 등이 이사회의 중요의결사항이다.

연구기관의 원(소)장은 연구회의 이사장이 임면한다. 원(소)장 선임은 법 제 12조 및 동법 시행령 제6조와 제7조규정에 의거 후보자를 공개모집 또는 원장추천위원회의 추천을 받아 이사회의 심의․의결을 거쳐 취임하며 기관운영 전반에 대한 책임을 지고 있다.


다) 예산구조

과기부 및 국무총리실 산하 27개 출연(연)의 2001년도 총 예산규모(사업계획 기준)는 2조965억원에 달하며, 이중 정부로부터 직접 지원받는 출연금은 6,039억원이며, 출연기관들이 자체조달하는 예산이 1조4,962억원으로 정부가 직접 예산으로 지원하는 비율은 약 29%에 달한다.

출연(연)의 전체예산 중 연구개발활동과 직접 연관되는 연구비는 전체예산의 85%에 달하는 1조 7,806억원이며 나머지는 시설비, 차입금상환 등으로 사용된다.


라) 출연기관의 운영

정부는 각부․처의 출연(연)에 대한 관리․감독기능을 해소하여 자율성을 강화하고 경쟁체제 및 민간경영 기법을 도입하기 위해 연합이사회 제도를 도입하고 연구생산성 제고를 도모하고 있다. 과학기술부는 그동안의 출연(연) 중심의 연구관리체제에서 벗어나 국가과학기술을 총괄․조정하는 부처로서 출연(연)의

                           출연(연) 2001년도 총사업비 현황

(단위 : 명, 백만원)

기 관 명

기관장

설립연도

인원

2001년도 예산

정부출연금

자체수입

총예산

과학기술원

홍창선

’71. 2

681

64,779

108,347

173,126

고등과학원

김정욱

 ’96. 10

72

4,790

1,164

5,954

광주과기원

김효근

 ’93. 11

130

23,469

16,044

39,513

원자력(연)

장인순

’59. 3

1,028

32,551

148,165

180,716

안전기술원

김세종

’90. 2

300

7,595

30,866

230,688

원자력병원

심윤상

’73. 2

738

7,258

79,652

86,910

과기평가원

최수현

’99. 2

100

4,904

13,349

18,523

과학재단

김정덕

’77. 5

98

32,142

198,546

230,688

한국과학기술연구원

박호군

’66. 2

652

50,181

64,415

114,596

한국생명공학연구원

복성해

’88. 8

242

19,293

33,951

53,244

한국기초과학지원연구원

이정순

’86. 3

171

41,508

19,055

60,563

한국천문연구원

이우백

’85. 2

79

7,651

2,574

10,225

한국한의학연구원

고병희

 ’94. 10

30

3,114

480

3,594

한국생산기술연구원

주덕영

 ’89. 10

224

23,035

36,847

59,882

한국전자통신연구원

오길록

 ’76. 12

1,976

12,096

337,595

349,691

한국식품개발연구원

강수기

 ’87. 12

141

7,674

9,075

16,749

한국기계연구원

황해웅

 ’76. 12

417

22,363

45,506

67,869

한국전기연구원

권영한

 ’76. 12

279

16,250

45,732

61,982

한국화학연구원

김충섭

’76. 9

359

37,040

33,315

70,355

한국항공우주연구원

최동환

 ’96. 11

325

12,682

76,848

89,530

한국해양연구원

한상준

’90. 6

332

31,511

37,397

68,908

한국에너지기술연구원

손재익

’77. 8

277

15,841

37,260

53,101

한국지질자원연구원

곽영훈

’76. 5

339

23,723

27,466

51,189

한국건설기술연구원

하진규

’83. 6

231

12,864

22,302

35,166

한국철도기술연구원

이헌석

’96. 3

179

6,370

25,039

31,409

한국표준과학연구원

은희준

’75. 12

330

38,134

25,645

63,779

한국과학기술정보연구원

조영화

’62. 1

276

45,090

16,000

61,090

27개 기관

 

 

10,006

603,908

1,492,635

2,096,543

특성화․전문화와 산․학․연 경쟁체제 구축 등 국가전체적인 차원에서 정부출연(연) 정책을 수립․추진하고 있다.

또한 출연(연)의 연구 및 경영에 있어서 독립성 및 자율성이 보장되도록 지원하며, 각종 제도들을 정부출연(연)이 고유임무․기능을 효과적으로 수행하는데 적합토록 수립․조정하는데 적극 지원하고 있다.

출연기관이 국가의 전략적 연구개발공동체로서 대내적으로는 대학과 민간부문의 연구영역을 한차원 뛰어넘고, 대외적으로는 세계 어느 연구소와도 경쟁에서 이길 수 있는 능력을 갖추는 것이 요구되고 있다.

따라서 출연기관별 기능을 특성화하여 중복기능을 배제하고, 중․장기적 관점에서 기관이 지향하는 발전모습을 구체적으로 제시할 수 있도록 공모제에 의하여 선임된 기관장이 기관 경영목표를 수립하여 실천하도록 추진하였다.


나. 한국과학기술원(KIST)

정부는 1960년대 초반까지 되풀이 되어온 빈곤의 악순환 고리를 단절하고, 낙후된 우리나라 산업과 경제를 발전시키기 위하여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을 수립하였으며, 1962년도부터 제1차 경제개발계획을 추진하였다. 그 당시 우리나라는 산업경제의 발전을 위하여 선진국 기술의 도입․소화를 절실히 필요로 하고 있었다. 따라서 국내산업의 기술수준을 향상시키고 해외시장에서의 상품경쟁력을 제고시키기 위해서는 선진기술의 도입은 물론이고 이를 기반으로 한 기술혁신이 강력히 요망되었다. 이같이 국가․사회적으로 새롭게 인식된 과학기술에 대한 수요에 부응하기 위한 국가적인 노력의 결과로 1965년 5월의 한․미 정상회담에서 한․미 양국 대통령이 공동성명을 통해 한국의 공업발전을 주도할 수 있는 공업연구소의 설립에 합의하고, 양국정부가 주요협력사업의 일환으로 KIST의 설립을 적극 추진하여 1966년 2월 10일 한국의 최초 종합연구소가 설립되었다. 

KIST 설립 후 정부는 1966년 12월 한국과학기술연구소 육성법을 제정하는 등의 적극적 육성을 통해 KIST가 우리나라 과학기술 발전의 요람이자 중추기관으로 역할을 충실히 수행할 수 있도록 하였고, KIST 역시 활발한 연구활동을 통해 산업의 고도성장을 견임함은 물론 우리나라가 신흥공업국으로 부상하는데 커다란 기여를 함으로써 국가의 요구에 부응해 왔다.

설립 직후에는 해외 과학자들을 유치하여 연구소의 기틀을 확립하는 한편 선진기술의 도입과정에서 발생하는 기술적 문제의 해결을 통해 산업계를 지원하거나 산업계에 대한 자문 역할을 담당하였다. 또한 정부가 추진하였던 철강산업, 중기계공업, 조선공업, 자동차공업 등의 육성방안에 대한 기초자료의 조사, 과학기술 진흥을 위한 국가 과학기술 장기정책 수립 등을 수행하였다.  그 당시 거의 유일한 우리나라 과학기술 분야의 싱크탱크로서의 역할을 수행하였다고 할 수 있다. 

1970대에는 본격적인 연구개발 활동이 시작된 시기로, 당면 산업기술의 개발을 통해 국내 공업기술 발전의 선도적 역할을 담당하였다. 이 시기에 KIST는 당시의 시대적 요청인 선진국 기술의 소화․흡수․개량 활동을 통하여 폴리에스터 필름, 동복강선 등을 산업계에 보급하였다. 아울러 정부가 중점적으로 추진하는 중공업의 발전을 지원하기 위해 선박․해양연구소('73. 10), 전자통신연구소('76. 12) 등 전문연구기관들을 부설기관으로 설립하는 등 과학기술 산실로서의 역할을 담당하였다. 또한 한국 벤쳐산업 육성 기관의 효시가 된 한국기술진흥주식회사(K-TAC, '74. 9)를 설립하여 연구기관 등에서 개발된 기술들을 산업화시키는 가교역할도 수행하였다.

1980년대에는 내부적으로 한국과학원(KAIST)과의 통합․분리라는 굴곡을 겪었지만, 연구개발활동면에서는 선진기술의 모방 개량을 통한 국산화 연구로부터 창조적 개량연구로 서서히 변화한 시기였다. 이 시기에 KIST는 국내산업의 첨단화가 진전되고 산업계의 첨단기술 수용태세가 갖추어짐에 따라 당면 첨단기술 개발에 중점을 두고 GaAs 반도체 소재, 아라미드 섬유, 광자기디스크 등 첨단기술을 개발하여 산업계에 제공함으로써 국제시장에서 우리나라 기업이 국제경쟁력을 강화하는데 기여하였다. 그리고 시스템공학연구소의 전신인 전산개발센터('81. 1), 유전공학연구소('85. 2), 과학기술정책관리연구소(STEPI)의 전신인 기술평가센터('84. 7) 등을 설립하여 관련분야 기술의 발전과 국가과학기술정책 수립 및 연구개발사업의 효율적 관리에 크게 공헌하였다.

1990년대에 들어오기 직전인 1989년 6월 KIST가 분리․독립 한 후 새로운 체제를 구축하여 급변하는 대내외 환경변화에 대응하는 새로운 역할을 적극 모색하기 시작하였다. 특히 세계적인 기술보호주의의 심화로 선진국으로부터 기술도입이 어려워짐에 따라 국가적으로 미래 첨단기술의 자체개발 필요성이 강하게 대두되었으며, 또 환경오염 문제가 심각해짐에 따라 연구개발 측면에서 이에 대한 적극적인 대응이 요구되었다. 이러한 환경변화에 따라 KIST는 미래 산업의 핵심이 될 신기능소자, 바이오센서, 생체재료 등 미래 첨단기술에 도전하였으며 DLC VCR 헤드드럼 개발과 CFC 대체기술 개발에 성공하였고 도핑콘트롤 분야에서는 세계적인 수준에 이르렀다. 즉 창조적 원천기술 개발에 도전하여 미래 첨단기술 및 공공복지기술의 확보를 통해 산업구조 고도화에 기여하였다. 또한 연구정보개발센터의 전신인 과학기술정보유통사업단('91. 2)을 시스템공학연구소내에 설치하여 과학기술유통체제 구축의 초석을 마련하였으며, 한․소과학기술협력센터('91. 3)를 설립하여 북방국가들이 보유하고 있는 국방관련 첨단․기초기술을 우리의 생산기술에 접목시키고 관련 과학기술인력을 유치하여 군․민 겸용기술을 개발하는데 공헌하였다.

현재의 한국과학기술연구원은 처음 설립된 재단법인 한국과학기술구소의 기본 이념을 이어받아 '국가과학기술을 선도하는 창조적 원천기술을 연구개발하고 그 성과를 보급함'을 목적으로 한다.


 주요 기능

- 원천기술을 창조하는 종합연구기관으로 기초.선도기술분야의 연구.개발수행 및 그 성과의 보급

- 국책적 중장기 연구.개발사업 및 국가과학기술 저력배양을 위한 연구개발사업의 수행과 그 성과의 보급

- 국내외 산,학,연간의 연구협력 및 전문인력 양성

- 연구 및 개발용역의 수탁 및 위탁

- 기타 위 사업에 부대되는 사업 및 기타 연구원의 목적달성을 위하여 필요한 사업


다. 한국원자력연구소(KAERI)

과학기술에 대한 거의 불모지였던 당시 원자력은 과학기술의 상징적인 분야이었기 때문에 국내에 과학기술분야의 최초의 정부지원 연구소인 원자력연구소가 1959년 3월 1일 설립되어 원자력에 관한 연구와 국가 정책을 기획하는 주관기관이 되었다.  1973년 1월 15일 한국원자력연구소법이 제정.공포 됨에 의하여 그해 2월 17일 원자력연구소, 방사선의학연구소, 방사선농학연구소가 통합되어 한국원자력연구소가 발족되었다.  1970년대에 들어오면서 국가의 에너지 정책이 원자력 발전으로 전환되면서 원자력 발전의 연료를 개발하기 위한 한국핵연료개발공단이 1976년 발족되었고 이 기관은 1980년 한국원자력연구소에 흡수 통합되면서 우리나라 에너지의 모든 연구와 정책을 담당하는 연구소로서 한국에너지연구소로 개칭되었다.  그 후 다시 원자력에 대한 연구와 정책개발의 역할을 하는 연구소로서 한국원자력연구소가 되었다.  이 연구소는 설립 이후 우리나라의 에너지 전략 및 정책 수립에 필요한 연구를 수행하는 싱크탱크로서의 역할을 수행해 왔고 주요한 기능은 원자력연구소법 제 7조에 나타난 다음과 같다.

주요 기능

- 원자력에 관한 기초 및 응용연구

- 핵연료 물질에 관한 연구, 개발 및 생산

- 방사선 폐기물 및 사용후 핵연료에 관한 저장, 처리, 처분에 관한 연구 및 개발

- 원자력에 관한 연구자 및 기술자의 양성 및 훈련

- 방사선 동위원소의 생산 및 배분

- 원자력에 관한 기초 및 응용연구, 방사선 의학연구, 방사선 농학연구, 핵연료 물질에 관한 연구 개발 및 생산,  방사선 폐기물 및 사용후 핵연료에 관한 저장, 처리, 처분에 관한 연구개발사업의 성과보급


라. 한국과학재단(KOSEF)

    과학기술처는 1967년 발족이래 연구활동을 활성화하기 위한 시책의 하나로 ‘과학기술기금제도’를 운용하여 왔다.  과학기술진흥법에 기반을 둔 이 기금제도는 당초 기금의 과실금으로 회계 연도에 구애받지 않고 추진해야 할 종합적이며 조직적인 연구개발사업을 추진하기 위한 연구비를 지원한다는 목적 외에도 이공계 대학교육을 육성하기 위해 이공계 대학원생에게 장학금을 지급하였다.  과학기술처는 대학과 연구기관의 기초연구 전반을 활성화하기 위한 획기적인 새로운 지원제도가 필요하다는 인식에서 기초연구 지원을 전담할 재단의 설립을 위한 기초작업으로 1972년 12월 18일 과학기술진흥법의 개정안을 국회에서 통과시키는 데 성공하였다. 

과학기술재단 설립의 법적인 근거를 마련한 과학기술처는 재단 설립을 구체화하기 위한 활동에 들어 갔다.  1973년 초 대통령의 과학기술처 연두순시 때 과학기술처의 새해 업무보고에서 최형섭 과학기술처 장관은 과학재단 설립의 필요성과 설립을 위한 구상을 보고하였다. 과학기술처는 과학재단의 설립에 관한 구상을 미국 전문가들과 정부요로에도 제시하여 이미 미 국립 과학재단을 통해 많은 경험을 갖고 있는 이들의 자문을 구하는 한편 우리의 재정형편으로서는 기금조성이 당분간 어렵다는 전제에서 기금 일부를 외자로 충당하려는 뜻을 개진하여 보았다. 이것은 한․미 과학기술협력위원회의 의제로 상정되었다.   1976년 9월 말 대통령의 특별지시에 따라 과학재단은 마침내 구체적인 설립작업에 들어갔다.  한국과학재단법(법률 제2943호)은 1976년 12월 22일 공포되었고, 정부는 첫 번째 기금으로 3억 5,000만원을 출연하기로 결정했다. 이 법에 따라 1977년 2월 14일 한국과학재단법 시행령(대통령령 844호)이 공포되었으며, 곧 발족한 재단설립위원회(위원장 : 이창석 과학기술처 차관)는 과학재단의 정관을 작성하였다.

이와같은 절차를 거쳐 한국과학재단은 1977년 5월 18일 과학기술처장관(최형섭)을 초대 이사장으로 하여 한국과학기술정보센터 구내에서 출범을 하였다.

한국과학재단은 과학기술연구능력의 배양과 과학교육의 진흥 및 과학기술의 국제교류를 증진하게 함으로써 과학기술의 창달․진흥에 기여하게 함을 목적으로 하며 우리나라의 이공대 대학의 연구 및 고급인력양성을 지원하는 기관으로 미국의 과학재단(NSF)와 유사한 역할을 하고 있고 주요기능은 다음과 같다.

 

  주요기능 

- 과학기술연구활동의 지원

- 연구장학금 및 연구장려금의 지원

- 과학기술교육의 향상, 발전을 위한 사업의 지원

- 학회 및 국내외 학술활동의 지원

- 과학기술의 국제교류 증진을 위한 사업의 지원

- 연구인력활용을 위한 사업의 지원

- 과학기술의 정보화를 위한 사업의 지원

- 기타 과학기술의 발전에 필요한 사업의 지원

 

마. 한국표준과학연구원(KRISS)

한국표준과학연구원은 국가 표준기술을 확립하기 위한 연구를 수행하는 기관으로 1975년 12월 24일 한국표준연구소로 설립되었다.  그 후 국가교정검사 업무를 1979년부터 시행하였고 국가표준 주파수국을 1984년에 개국하는 등 국가적인 표준 기술 확립을 위한 연구와 국제적으로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표준연구기관이다.  특히 국가표준기본법에 명문화된 측정표준 대표기관으로의 역할을 담당하고 있고 주요 기능과 역할은 다음과 같다.


주요 기능과 역할

- 국가표준기술 확립 : 국제단위 정의에 따른 7개 기본단위와 수많은 유도단위들의 최고 측정능력 확보 및 국제 소급성 유지를 통하여 측정정밀도 향상 및 새로운 측정분야 확립하고 물질특성분석을 위한 인증표준물질(CRM) 개발 

- 산업측정 및 평가기술 개발 : 연구원이 보유하는 측정기술 역량을 산업에 접목시키는 측정 응용연구 수행 하며 초전도기술, 광기술 등 미래산업 선도형 기반기술 개발

- 국가표준기술 보급 : 국내산업의 측정 정밀정확도 통일을 목적으로 하여 측정기기 교정 및 시험검사를 담당하며 인증표준물질 (CRM) 보급

- 기술지원 및 교육훈련 : 정밀측정기술 지원 및 자문하며 교육 및 훈련을 담당함.

  

바. 한국과학기술정보연구원(KISTI)

국가 과학․기술정보분야를 전문적으로 담당하는 국가 지식정보인프라의 중심기관으로 2000년 2월 산업기술분야정보 전문기관인 산업기술정보원(KINITI)와 과학기술분야정보 전문기관 인 연구개발정보센터(KORDIC)을 통합하여 한국과학기술정보원이 발족되었다. 산업기술정보원은 1962년 설립된 우리나라의 과학기술 정보 수집 및 분석 기관인 한국과학기술정보센터를 전신으로 하는 기관으로서 1982년 국제경제연구원과 통합되어 산업연구원이 되었다가 1991년 산업자원부 산하의 산업기술정보 수집기관인 산업정보연구원으로 개편되었다.  연구개발정보센터는 1991년 2월 KIST 부설 시스템공학연구센터(SERI)내에 과학기술정보유통사업단으로 발족되어 1993년 KIST 부설 연구개발정보센터로 개편되었다. 1997년 과학기술원(KAIST)부설 기관으로 이관되었다가 1999년 국무총리실 산하 공공기술연구회 소속기관으로 독립되었다.  한국과학기술정보연구원은 정부부처별로 분산되어 있는 각종 과학기술 정보 관련 업무를 통합하여 국가 과학기술정보의 대표기관으로 육성하기 위하여 통합 설립되었다. 


주요사업

- 과학․기술 및 이와 관련된 산업에 관한 정보를 종합적으로 수집․분석․관리

- 정보의 관리 및 유통에 관한 기술․정책․표준화 등을 전문적으로 조사․연구

- 연구개발 인프라를 체계적으로 구축․운영

- 국가 과학기술 지식․정보 인프라의 연구개발 및 서비스 체제를 확립하여 국가 과학기술 진흥과 산업의 발전 및 국민복지 증진에 기여


주요 기능

- 과학․기술․산업 지식정보화

  ․ 국내외 정보의 체계적 수집/관리 및 공동활용체제 구축

  ․ 지식정보의 데이터베이스 제작 및 전자화 촉진․지원

  ․ 정보관리․유통시스템등의 보급 및 정보화활성화를 위한 교육․훈련

- 지식정보화 정책개발

  ․ 정보의 관리 및 유통에 관한 기술․정책 등의 연구개발 및 자문

  ․ 국내외 과학․기술 동향의 조사․분석

- 슈퍼컴퓨팅 기반구축

  ․ 고성능 컴퓨팅 기반구축과 자원할당 및 응용기술의 개발․지원

-연구전산망 고도화

  ․ 연구전산망 등 과학․기술 전용 초고속정보망의 구축․운영 및 지원


사. 과학기술정책연구원(STEPI)

1987년 1월 과학기술 활동 및 과학기술과 관련된 경제사회의 제반문제를 연구․분석함으로써 국가 과학기술정책의 수립과 과학기술발전에 이바지함을 목적으로 한국과학기술원(KAIST) 부설로 과학기술정책연구. 평가센터가 설립되었다.  그 후 1993년 5월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 부설 과학기술정책관리연구소(STEPI)로 개편되었고, 1998년 5월 과학기술정책관리연구소와 산업기술정책연구소(ITEP)의 정책연구기능을 통합하여 경제사회연구회 소속 정부출연연구소로 개편하는 방침이 결정된 후 1999년 1월 "정부출연연구기관 등의설립. 운영 및 육성에 관한 법률" 에 의하여 경제사회연구회 소속 과학기술정책연구원이 되었다.  그 직후 2월에 국가연구개발사업 기획, 평가, 관리 기능을 한국과학기술 평가원(KISTEP)으로 이관하고 5월에 과학기술정책연구원으로 개원하여 현재에 이르고 있으면 주요사업과 기능은 다음과 같다.. 


 주요사업

- 과학기술, 연구개발활동 및 기술혁신에 대한 조사분석.연구

- 과학기술정책 대안 개발 및 기술경영전략 수립에 관한 연구 및 자문

- 과학기술과 경제사회의 상호작용에 관한 학제적 연구

- 과학기술의 국제협력 및 과학기술정책의 세계동향에 관한 조사연구

 

 주요기능

- 과학기술정책을 담당하는 정부부처 및 유관기관에 문제해결적 정책대안 제시

- 산업의 기술발전 및 기업의 기술개발능력 향상을 위한 전략 제공

- 과학기술정책 동향, 과학기술지표 등 관련 정보, 자료를 관련기관 및 일반 수요자에게 공급

- 과학기술정책에 관한 정책연구의 국내거점 역할 수행


아. 한국과학기술기획평가원(KISTEP)

한국과학기술기획평가원은 정부 각 부처가 수행하고 있는 국가연구개발사업을 체계적으로 조사.분석.평가하고 , 국가연구개발사업의 연구기획, 관리, 평가에 관한 업무 및 과학기술 국제협력에 관한 업무를 효율적으로 수행하기 위하여 설립되었다.  KISTEP은 1999년 2월 과학기술정책연구원(STEPI)으로 부터 분리되어 한국과학기술평가원으로 설립되었다.  2001년 7월 17일 과학기술기본법 제 20조에 근거하여 한국과학기술기획평가원으로 확대개편 되었다. KISTEP의 주요기능은 다음과 같다.


주요기능

- 국가과학기술기획

 ․ 과학기술 발전추세의 예측

 ․ 기술 영향평가 및 수준평가

 ․ 국가과학기술 표준분류체게 작성․보완

 ․ 과학기술기본계획 수립 지원

 ․ 과학기술 연구개발 활동조사

 ․ 국가 전략기술 로드맵 작성

 ․ 기술동향 분석

- 국가연구개발사업의 종합조정 지원

 ․ 국가연구개발사업 조사․분석 및 평가

 ․ 국가연구개발사업 사전조정

 ․ 국가연구개발사업 종합 DB 구축

 ․ 과학기술부 산하 출연연연구기관 평가

- 연구개발 사업관리

 ․ 특정연구개발사업, 원자력연구개발사업, 과학기술국제화사업의 연구기획․관리․평가

      * 국내․외 핵심 기술동향 조사 ․ 분석

      * 연구개발사업 신규 및 보완기획

      * 연구과제 선정 및 협약

      * 연구결과의 평가 및 진도관리

      * 연구과제의 성과 ․ 사후관리

 ․ 기술개발 성과의 보급 및 실용화 촉진

 ․ 연구관리 교육훈련 프로그램 운영

- 과학기술국제협력

 ․ 국제회의 주관

 ․ 국제기구 과학기술 활동지원

 ․ 과학기술자 교류 및 국제협력 연구지원


자. 국가과학기술위원회(NSTC)

정부는 1973년이래 국가과학기술 종합조정을 위한 위원회를 운영하고 있다. 당시 과학기술진흥법에 따라 국무총리를 위원장으로 하고 관련부처 장관과 민간 위촉위원으로 구성되는 과학기술 종합심의회가 국가적인 과학기술정책 및 사업을 조정하기 위하여 운영되어 왔다.  1996년도에 제정된 “과학기술장관회의 규정”에 의하여 위원장을 재정경제원장관을 위원장으로 하고 관련부처 장관이 위원이 되는 과학기술장관회의로 개편되었고 1997년 제정된 “과학기술혁신을 위한 특별법”에 의하여 위원장이 과학기술부장관이 되었다. 

1999년 1월 개정된 “과학기술혁신을 위한 특별법” 및 2001년 7월 제정된 “과학기술 기본법”에 의하여 대통령을 위원장으로 하는 국가과학기술위원회를 설치하여 연구개발사업의 사전조정결과를 예산편성에 반영하는 등의 실질적인 종합조정 제도를 확립하였다.  위원회는 관련부처 장관 15인과 민간위원 9인으로 구성되어 과학기술 진흥을 위한 주요 정책 및 계획을 수립.조정하고 각 부처별로 추진하고 있는 연구개발사업의 사전조정과 예산의 효율적 운영에 관한 사항등을 심의한다.  위원회는 산하에 과학기술부 장관을 위원장으로 하는 운영위원회와 바이오산업기술 위원회가 있고 운영위원회 산하에 정부위원과 민간위원으로 구성된 정책전문위원회, 연구개발전문위원회, 우주개발전문위원회, 나노기술전문위원회의 4개의 전문위원회가 있어 과학기술 정책에 자문을 하고 있고, 또한 중앙부처와 지자체 공무원으로 구성된 지방과학기술진흥협의회를 두고 있다. 국가과학기술위원회의 주요기능은 다음과 같다.


주요기능

- 과학기술 주요정책과 종합조정계획의 수립, 조정

- 과학 기술관련 예산의 확대와 효율적 사용방안 강구

- 매년도 국가연구개발사업의 우선순위 설정과 사전 조정

- 과학기술계 연구회 및 연구기관의 평가와 발전방향 모색       


차. 국가과학기술자문회의(PACST)

1987년 제9차 개정헌법에서 과학기술 진흥을 위한 국가적 의지를 선언함과 아울러 처음으로 과학기술에 관한 대통령자문기구 설치근거가 마련 되었다.이와 같은 헌법정신을 구현하기 위해 89년 4월 국가과학기술자문회의규정이 제정되어, 89. 6. 5~90. 12. 31까지 한시적으로 과학기술자문회의를 설치 운영토록 하였다.  그러나 이러한 한시적인 조직으로는 제 기능을 발휘하기 어렵다고 판단한 행정개혁위원회는 89년 8월 상설 자문기구 설치를 대통령에게 건의하였으며, 이를 받아들인 대통령의 지시에 따라 91년 3월 국가과학기술자문회의법이 제정되고, 이어 91년 4월 동법 시행령이 제정됨으로써 91년 5월 31일 제1기 국가과학기술자문회의가 발족되었다.

자문회의는 제1기(91. 5. 31~93. 5. 30), 제2기(93. 5. 31~95. 5. 30), 제3기 (95. 5. 31~97. 5. 30), 제4기(97.5.31~99.5.30), 제5기(99.6.1~01.6.7)를 거쳐 2001년 6월 8일부터 제6기 자문회의가 활동중에 있으며, 그간 범 국가적인 과학기술진흥의지를 높이고 국정운영의 기본틀을 구축하는 데 많은 성과를 거두어 왔다.

국가과학기술자문회의는 상근 정무직인 위원장을 비롯해 학식과 경험이 풍부한 각계 민간전문가 및 당연직 위원(과기부차관) 등을 포함한 총 11인의 자문위원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회의의 업무수행을 지원하기 위해 사무처를 두고 있다.  대통령에 대한 자문보고는 직접보고 또는 서면보고 형태로 이루어지며, 자문회의운영은 월 2회의 정례회의와 함께 전문적인 연구검토 등을 위해 필요한 경우 과제별로 위원 5인 내외로 구성되는 소위원회를 운영하고 있다.  그 동안 과학기술자문회의의 기능은 다음과 같다.


주요 기능

다음 사항을 대통령에게 자문한다.

- 과학기술 혁신과 정보 및 인력의 개발 등 과학기술정책의 발전방향에 관한 사항

- 과학기술개발을 촉진하기 위한 제도의 발전에 관한 사항

- 기타 과학기술분야에 관하여 대통령이 부의하는 사항 등


카. 대한민국 학술원

학술원은 1952년 제정된 문화보호법에 의하여 1954년 7월 17일 13명의 회원으로 개원되었다.  당초 학술원 회원의 수는 50명으로 제한되었으며 60년 문화보호법을 개정하여 회원의 수를 100명으로 늘렸다. 1988년 대한민국 학술원법이 제정되었고 회원의 수를 150명으로 하였다.  현재 총 143명의 회원이 있는데 그 중 71명이 자연계 분야의 회원이다.  학술원의 주요기능은 다음과 같다.

주요기능

- 학술진흥에 관한 정책자문 및 건의 

- 학술연구와 그 지원

- 국내외 학술 교류 및 학술행사 개최

- 학술원상 수여, 기타 학술진흥에 관한 사항


타. 한국과학기술한림원

순수 민간차원에서 과학기술에 전문적인 식견을 가진 석학들을 회원으로 하여 각 부문별 전문성을 활용함으로써 국가 과학기술의 진흥과 창달에 기여하기 위하여 1994년 설립되었다. 그후 2001년 제정된 과학기술기본법 시행령에 법적지위가 명시되었다. 현재 종신회원 175명을 포함하여 총 491명의 회원이 있으며 그 주요 기능은 다음과 같다.


주요 기능

- 범부처적인 정책평가와 자문

- 과학기술 관련 연구과제의 수탁 및 용역

- 국가 과학기술의 장기적인 비전과 발전 전략을 마련하기 위해 산.학.연.정 전문인사를 초빙, 정기적인 원탁토론회 개최

- 원탁토론회에서 발굴된 문제점들을 중심으로 한 연구 프로젝트를 개발하여 정책개발 연구과제로 수행하고, 그 결과를 과학기술정책에 적극 반영되도록 정부에 건의

 

카. 한국공학한림원

1994년 제정된 “산업기술기반조성에 관한 법률”에 의하여 1996년 창립되었다.  한국공학한림원은 학계, 산업계 및 국가의 기관 등에서 공학 및 기술 발전에 현저한 공적을 세운 우수한 공학기술인을 발굴, 우대하고 공학기술과 관련된 학술연구와 지원사업을 행함으로써 국가의 창조적인 공학기술 개발과 지속적인 발전에 이바지 하고자 통상산업부의 법인으로 설립되었다.  그 주요 기능은 다음과 같다.


주요기능

- 공학․기술 관련 연구 및 기술정책 자문 

- 공학기술 진흥사업 수행

- 공학․기술 대내외 교류 및 협력사업 수행

- 공학․기술인 발굴 및 우대

- 공학․기술관련 자료 발간 및 대외 홍보 


   (2) 민간기관

1980년대에 들어오면서 대기업을 중심으로 기업 연구소가 설립되었다.  처음의 설립의도는 제품개발에 필요한 기술을 도입하는 창구이면서 자체 기술개발을 위한 연구소로 활용하기 위한 것이었다.  삼성종합기술원, LG종합연구소등의 대기업 연구소는 상당히 큰 연구소를 보유하고 있는데 이는 우리나라의 총 연구개발비의 거의 70%정도가 기업에서 사용하고 있다는 통계만 보아도 기업의 연구소가 상당히 활성화되어있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연구소의 역할은 주로 제품 개발과 관련된 기술 개발 연구로서 싱크탱크라고 보기보다는 단순한 연구소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기업 연구소의 한 부분에서는 기업의 기술개발의 방향 등 싱크탱크로서의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가. 삼성종합기술원

삼성종합기술원은 1987년 무한탐구의 이념에 따라 설립되어, 미래 신규사업 창출을 위한 원천기술 연구와 시장의 게임을 바꾸는 혁신적 제품 (Dominant Design)개발을 목적으로 하고 있다. 삼성종합기술원은 관계사의 전략사업 경쟁력 강화를 위하여 현장의 애로기술 해결에 적극지원하고 시뮬레이션, 분석기술 등 공통기반기술 일류화도 추진하고 있다. 이와 함께 삼성 그룹 내 중장기 기술전략을 제시하고 기술 자문을 통해 지원, 우수한 기술리더를 육성하는 등 그룹의 중앙연구소로서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삼성그룹의 연구개발은 사업부 개발실, 각사 연구소, 삼성종합기술원의 3원화체제로 운영되고 있다. 이중 삼성종합기술원은 미래사업을 대비하기 위해 원천특허확보, 표준화기술 연구 , 차세대 신사업 창출에 주력하며 삼성전자 총괄별 연구소, SDI, 전기, 코닝 등 각사 연구소는 신제품개발, 핵심애로기술 개발, 사업부 개발실은 제품 개선, 공정 혁신 등을 수행하고 있다.

삼성종합기술원은 축적된 기술역량을 바탕으로 새로운 기술의 씨앗을 발굴하고 관계사 제품개발에 협력할 뿐 아니라 Global Network의 핵으로 삼성 내 연구개발 시너지를 위해 다양한 플랫폼을 제공하는 Total Solution Provider의 역할에 주력하고 있다. 특히 중요성이 증대하고 있는 국제 표준 기술제정에 초기부터 적극 참여하여 표준화기술을 선도하고 있다.


나. LG그룹 기술연구소

LG 그룹은 현재 그룹차원의 종합연구소는 없고 각 분야별로 기술연구소가 설립되어 운영되고 있다.  그러나 LG그룹은 일찍이 1979년 그룹차원의 럭키 중앙연구소를 설립하여 기업으로 연구소다운 연구소를 처음 설립 운영하였다. 현재 LG화학 기술연구원, LGCI 생명과학연구소, LG석유화학 기술연구소, LG전자 기술원, LG 생산기술원 등 회사 차원의 연구소이외에도 제품분야 별로 소규모 연구소를 다수 운영하고 있다.

연구소들은 미래기회 발굴 및 육성과 현 사업의 경쟁력강화의 R&D의 두 가지 목표를 효율적으로 달성하고자 CRD R&D(Corporate R&D)와 BU R&D(Business Unit R&D) 기능으로 2001년 말에 개편하였다.  LG화학 기술연구원의 경우 CRD는 현재 신소재연구소, 공정기술센타, 분석센타 3개 연구소로 구성되어 있으며, 미래기회 발굴을 포함한 New-to-World Product 개발과 신상품 공정개발, 초정밀 분석기술, 계산화학 같은 핵심기술 육성의 역할을 하고 있다.  BU R&D는 LG화학의 4개 사업본부와 Partnership을 이루어 현사업의 경쟁력강화에 주력하고 있으며, 특히 정보전자소재 분야는 정보전자소재연구소와 배터리연구소 두 연구소가 LG화학의 정보전자소재 사업안정화를 위한 연구를 수행하고 있다

 

   (3) 대학관련기관

1990년대에 들어오면서 대학의 연구비가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함에 따라 대학 연구소의 수가 급속히 증가하였다. 그러나 대학에 설립된 연구소는 대부분 연구비를 수주하기 위한 목적으로 소수의 교수들이 모여 설립하였기 때문에  싱크탱크의 역할을 담당하기보다는 연구의 수행을 목적으로 하고 있다.  따라서 아직 국내에서는 과학기술 분야의 싱크탱크라고 할 만한 연구소가 존재하고 있지 않다. 


4. 외국 싱크탱크의 생성.발전 및 역할


1) 미국의 싱크탱크

20세기를 전후해 미국의 과학기술 수준은 유럽에 비해 낙후되어 있었다.  19세기 후반기에 미국이 유럽과 경쟁할 수 있는 분야는 지질학이었다.  새로운 국토의 개척, 특히 서부개척의 필요성 때문에 남북전쟁 직후에 연방정부 내에 지질조사국(Geological Survey)이 만들어져 서부의 새로운 주들에 대한 지리, 농업, 광업, 수로, 생물 등에 대한 연구를 수행하였다.  그 후 지질조사국은 화학실험실을 갖추어 우수한 화학자와 물리학자들을 고용해 순수과학 연구까지 수행하였다.  그러나 과학연구는 오래가지 못하였는데, 당시 과학이 과학자 개인의 취미, 호기심을 충족하는 활동으로 여겼으며 의회는 이러한 개인적인 활동에 세금을 지원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였다. 

그러나 20세기 초반 미국사회가 본격적인 공업사회로 탈바꿈하면서 연방정부 내에는 과학과 관련된 기구들이 만들어졌으며 이에 따른 예산과 인원이 크게 증가했다.  국립표준국(National Bureau of Standard, 1901창립), 공중보건국(Public Health and Hospital Service, 1905창립), 산림국(Forestry Service)과 같은 기구는 정부가 공공적인 목적을 위하여 과학기술자들을 고용하는 정부기구의 효시가 되었다.  그리고 산업체에서도 19세기 말부터 전기공업과 화학공업이 빠르게 성장하기 시작하였고 산업체에도 기술자들의 필요가 급증하였다.  산업체도 연구소를 만들어 과학기술자들을 고용하기 시작하였는데 제네랄 일렉트릭 연구소, 벨 연구소, 듀폰 연구소 등이 대표적인 예가 되겠다.  이와 함께 미국과학계를 주도해 나갈 과학자 집단이 1910년대를 통하여 나타났는데 당시 과학 후진국인 미국에서도 밀리컨(R. A. Milikan), 콤프튼(A. H. Compton)과 같은 유럽학자와 대등한 수준의 우수한 젊은 학자들이 배출되어 현재의 미국과학의 전통을 만들기 시작하였다. 

이런 상황에서 1차 세계대전이 발발하였다.  이러한 대규모 전쟁은 미국과학과 과학자들에게 완전히 새로운 경험과 기회를 제공하였다.  전쟁은 장기전으로 돌입하면서 새로운 무기의 개발은 전쟁에 중요하게 되었다. 전쟁 초반에는 화학, 조선공업에서 우위를 차지하던 독일이 전쟁무기에도 뛰어났으며 독일 화학자가 개발한 독가스가 위력을 떨쳤으며, 잠수함도 위력적이었다.  당시 미국에서는 전쟁에 참여하기 이전부터 국립자문위원회(National Advisory Committee)등에서 전쟁에 관련된 연구를 간접적으로 수행했다.  그러나 전쟁에 참여하면서 Caltech대학의 천체물리학자인 헤일(G. E. Hale)이 윌슨 대통령을 설득하여 1916년 NRC(National Research Council)이 만들어지면서 과학자들이 전쟁에 필요한 연구에 본격적으로 참여하게 되었다. 이 기관은 비록 국립과학아카데미 소속의 민간단체이었지만 국가의 안보와 복지를 위하여 순수.응용연구를 추진하며, 이를 위하여 국내의 모든 연구기관과의 협동을 한다는 목적을 가지고 출발하였다.  그러나 주로 전쟁을 수행하는데 국가적 필요와 관련된 방위연구를 담당하였다.  당시 NRC는 잠수함탐지기 개발, 망원경에 사용되는 렌즈개발, 화학전을 위한 방독면의 개발 등 전쟁을 위한 연구에 매우 성공적인 결과를 내어 전쟁수행에 결정적으로 기여하였다.   조직적인 연구에 의한 전쟁을 위한 기술개발은 군에게 과학기술의 기여가 전쟁에 큰 영향을 미친다는 깊은 인상을 심어주었다.  미국의 한 장군은 이를 가르켜 “이번 전쟁은 연구에 의해 승리했다”고 표현하기까지 하였다.   제1차 세계대전을 통하여 과학자들은 군사기술, 전쟁관련 업무를 포함함에 따라 과학연구의 성격도 변화했다.  전쟁이전에는 연구가 주로 개인적.소집단적 연구였고 연구분야도 개인의 흥미에 따라 정해졌음에 반해, 전쟁을 거치며 집단연구, 공동연구가 일반화되었으며 연구주제도 정부로부터 기획되고 조정되었다.  과학자들은 역사상 처음으로 정부로부터 대규모 ‘용역연구’를 경험했고 연구의 규모가 커지면서 이전에 비하여 거의 무한정의 예산이 과학 연구에 지원되었다.

전쟁이 끝난 후 과학자들은 전쟁 중에 보여준 과학자와 기술자의 업적이나 과학기술의 힘을 강조하면서 NCR의 지원을 요구하였으나 정부의 지원은 대폭 줄었다.  따라서 다른 후원자를 찾았는데, 새롭게 등장한 과학의 후원자는 산업체와 사회사업재단이었다.  전쟁중의 국방연구는 큰 기업의 공장에서 이루어진 것이 많았는데 이런 과정에서 기업가들은 과학이나 과학자들의 역할을 이해하게 되었고 산업과 대학간의 협동연구를 지원하기 위한 ‘산업자문위원회’가 만들어졌고 여기에 이스트만, 듀폰, 멜런 등의 대기업이 참여했다.  또한 록펠러재단, 카네기재단과 같은 사회사업재단들도 NCR의 과학연구를 지원하였다.  그러나 1920년대 후반과 1930년대 대공황기에 과학에 대한 지원이 급속히 감소되는 것을 경험한 과학자들은 안정적이고 지속적으로 후원할 수 있는 방법을 물색하였다. 

제1차 세계대전을 겪으면서 과학의 중요성을 정부, 산업계, 재단에 인식시키며, 미국을 세계의 강대국으로 부상시키는데 과학정책을 주도하는 과학 엘리트 집단이 등장하였다.  이들의 핵심 멤버는 헤일, 밀리컨, 노이스(W. A. Noyes)등의 노벨상을 수상하는 실력을 가진 저명한 과학자와 록펠러재단의 로즈(W. Rose), 벨의 카티(J. J. Carty), 정치가 후버(H. Hoover)등의 재단, 산업계, 정계인사 등이었고, 이들 중 은퇴하는 사람이 생기면 MIT와 하바드 총장인 콤프튼, 코넌트(J. B. Conant)과 같은 인사가 가세했지만 전부 합쳐도 10명이 안되는 이 집단이 제1차 세계대전 이후 미국과학계를 사실상 움직였고 실질적인 미국 과학계의 싱크탱크 역할을 하였다.   이 과학엘리트 집단의 과학자들은 자신의 분야에서 탁월한 업적을 내었고 학계와 사회각계에 영향력을 지닌 인물들로 미국의 과학을 국제적으로 지도적인 위치에 올린다는 목표를 가지고 있었다.

이들의 정책은 몇가지 특성을 가지고 있었는데 정책의 골격은 재단, 기업, 정부로부터 돈을 끌어내어 대학의 연구를 지원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이들은 모든 대학에 공평한 지원보다는 소수의 우수대학에 집중 지원하여 ‘정상을 더높이는(make the peaks higher)’ 정책으로 강한 엘리트주의를 표방하였다.   또한 지원분야도 유럽이 연구의 중심이었던 이론물리학, 수학 등의 순수 과학 분야도 지원하였지만, 수리물리학, 천체물리학, 생화학, 물리화학, 생물리학 등의 당시로 보면 새로운 학제적(Interdisciplinary) 분야의 지원을 선호하였다.  이렇게 집중적인 지원을 받은 분야는 결국 세계제일의 수준으로 중요한 학문 분야로 부상하면서 미국과학은 이들의 의도했던 방향대로 발전하였다.

제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면서 국방연구의 필요성은 다시 대두되었다.  MIT교수였다가 발탁되어 정부에서 과학자문을 맡고 있던 부시(V. Bush)는 이러한 국방연구의 필요성을 일찍이 주장한 사람이었다.  그는 연방정부내에 국방연구를 담당하는 공식기구를 만들어야 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고 1940년 6월 이를 루스벨트 대통령에게 제안하여 수락 받음에 따라 국방연구위원회(National Defence Research Committee: NDRC)가 설립되었고 부시는 초대 의장이 되었다. 

전쟁중에 NDRC는 놀라운 성공을 거두었는데, 대표적인 예는 “레드랩”이라고 명명된 레이다를 개발하는 비밀계획으로 MIT에 본부를 두어 개발에 성공하여 전쟁 승리에 결정적인 공헌을 하였다. Caltech대의 과학자는 고체연료를 사용하는 로케트 개발에 성공하였고 존스홉킨스대은 근접 기폭장치를 개발하였고 그 이외에도 전쟁 수행에 결정적인 역할을 하는 수 많은 장치 개발에 성공하였는데 가장 과학의 힘을 보여준 것이 원자폭탄의 개발이라고 하겠다.  이러한 전쟁 수행에 대한 과학기술의 기여는 연방정부와 미국국민에게 과학의 위력에 대한 다시 한번 깊은 인상을 심어주었으며, 미국의 과학은 정부라는 안정적인 후원자를 얻게 되었다.  과학과 정부가 결합함에 따라 과학과 정치도 가까워졌고 과학, 정부, 정치간의 관계가 정립되었다.

원자탄의 개발은 정부의 정책과 과학의 힘을 가장 극적으로 드러낸 사건이었다.  당시 기초 원리인 우라늄 핵 연쇄반응은 1938년 독일의 과학자에 의하여 성공하였다. 당시 유럽에서 망명하였던 학자들인 실라르드(L. Szilard), 위그너(E. P. Wigner), 졸리오(F. Joliot), 페르미(E. Fermi) 등은 핵분열에 관한 학술정보 출간의 금지를 제안하였고, 아인슈타인으로 하여금 미국이 원자탄 개발에 착수해야한다는 서신을 루스벨트 대통령에게 보내도록 하여 미국정부가 우라늄위원회(Uranium Committee)를 만들도록 하였다.  초기에는 원자폭탄 개발에 여러 가지의 과학적, 기술적 문제점 때문에 과학자들도 회의적이었고 정부고위 관리도 원자탄 자체가 과학자들의 탁상공론 정도로 생각하였다. 그러나 영국에서도 원자탄 제조를 위한 “모드위원회”가 구성되었고 이 위원회의 지원에 의하여 가장 중요한 기술적 문제였던 임계질량을 추정하게 되었고 모드위원회의 이러한 결과는 미국의 과학자들을 자극하게 되었다.  당시 미국의 버클리대학의 로렌스(E. O. Lawrence)는 원료를 훨씬 쉽게 만들 수 있는 플루토늄에 의하여서도 원자탄의 제조 가능성을 알게 되었다.  1941년 로렌스는 NDRC의 부시, 코넌트에게 본격적인 연구에 착수하여도 좋을 만큼 원자탄의 제조가 현실적임을 알렸고, 부시는 루즈벨트 대통령을 설득하여 1942년 9월 원자탄 개발 프로젝트인 ‘맨하튼 계획’을 시작하도록 하였다. 총 책임은 그로브즈(L. R. Groves)장군이 맡았고, 과학과 기술에 관련된 문제는 로렌스, 콤프튼이 맡았다. 이 계획은 완벽한 비밀유지, 막대한 예산지원, 유능한 과학자와 기술자의 참여를 통하여 원자탄 개발에 해결해야할 많은 기술적 문제들을 하나씩 해결해 나갔다.  이 계획은 당시 미국의 과학기술력의 총집합체라 할 만큼, 대학, 산업체, 연구소, 군대 등을 총동원하는 거대한 계획이었다.  당시 이론적인 면에서 앞선 독일 보다 미국이 원자탄 개발을 먼저 할 수 있었던 것은 이 계획에 필요한 실험물리학자, 화학자, 공학자, 그리고 거대한 설비의 건설경험이 많았던 산업계와 풍부한 자원이 있었고, 이 모든 조건을 조직적으로 연계시키면서 연구할 수 있도록 지휘하는 과학기술의 싱크탱크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폭탄제조에 필요한 기술적인 문제가 해결되고 제조된 원료는 로스알라모스 국립 연구소에 모아졌고 로렌스가 추천한 오펜하이머(R. Oppenheimer)의 책임 하에 원자폭탄의 설계와 조립이 이루어졌다.  1944년 여름 거대한 실험시설에 3000명의 과학자와 기술자가 원자탄을 제조하기 시작하였다.  오펜하이머는 하는 일이 원자탄을 만드는 작업의 일부라는 사실을 잘 모르는 과학자들을 격려하여 계속 연구에 몰두하는데 탁월한 능력을 발휘하였고 당시 이 연구소는 미국 과학기술계의 싱크탱크라고 할 수 있었다. 

맨하튼 계획은 성공적으로 끝나고 전쟁은 종결되었다.  그러나 미소 냉전체제하에서 무기연구는 지속되었고 맨하튼 계획의 설비는 민간기구인 원자력위원회(Atomic Energy Commission)에 이관되었다.  원자폭탄에 참여했던 과학자들은 수소폭탄의 제조도 염두에 두고 있었는데 원자폭탄의 위력을 본 과학자중에 수소폭탄 개발 계획에 반대하는 학자들도 있었다. 직접 맨하튼 계획에 참여하였던 오펜하이머, 로렌스, 콤프튼, 페르미 등도 반대하였는데 텔러(E. Teller)를 중심으로 수소 폭탄제조의 기술적인 문제가 해결되고 1949년 소련의 원자폭탄 개발의 성공으로 인하여 다시 과학자들은 수소폭탄 제조에 참여하게 되었고 1952년 수소폭탄 실험에 성공하게 되었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전쟁의 무기연구를 중심으로 발전하던 과학기술분야는 1957년 소련의 스프트니크호가 발사에 성공한 후 우주개발 경쟁으로 옮겨가서 결국 1960년대 NASA의 우주개발계획을 정부의 전폭적인 지지하에 추진하게 되었고 아폴로 우주선 계획에 의하여 달에 처음으로 인간을 보내는데 성공하게 되었다.  한편으로 냉전체제 하에서 국방연구는 지속적으로 지원되었고 이는 전쟁을 위한 연구뿐 아니라 군.산.학의 복합연구체제를 확립하였고 산업 발전에도 큰 기여를 하게 되었다.  대표적인 예로 스탠퍼드대학과 그 주변의 실리콘밸리는 우주개발과 미사일 개발 연구 덕분에 벤처 기업의 메카가 되었다. 

전쟁 직후 새로운 형태의 국가적으로 필요한 전략적 연구를 수행하는 연구소가 생겼는데 교과서적인 싱크탱크의 효시라고 할 수 있는 랜드 연구소(The Rand Cooperation)가 대표적이다.  공군사령관을 지낸 아놀드(H. H. Arnold)의 제의로 더글러스 항공사와 공군이 뜻을 모아 1948년 300여명의 연구원으로 문을 열었다.  이 연구소는 본격적인 전쟁과 안보관련 전문 싱크탱크라고 하겠다.  1960년대 우주개발에도 참여하였고 특히 전쟁무기인 대륙간 탄도탄 개발등 미국 국가안보에 절대적으로 필요한 연구를 수행하고 있다.  랜드연구소는 예산의 80%이상이 연방정부로부터 용역의 대가로 받을 정도로 정부와 깊은 관계가 있고, 실제 미행정부에 엄청난 영향을 미치고 있기 때문에 ‘케네디행정부의 국방정책을 알려면 랜드연구소로 가보라’라는 말이 유행하기도 하였다.  미국은 싱크탱크의 천국이라고 할 만큼 정부정책 또는 산업계의 컨설팅을 위한 연구소들이 많이 존재한다.  그리고 이들을 정부 또는 산업계, 그리고 국민들이 지원을 하고 있다.  싱트탱크가 비록 일반대중을 교육시키지 못하고 사회발전에 직접적으로 기여하지 않더라도 지도층을 바로 가게 하며 국가나 사회발전의 원동력이 되었고, 무엇보다도 변화 개혁의 선도자가 된다고 생각한다.  또한 싱크탱크는 특정정치 집단이나 이익단체를 위한 주장을 한다하여도 궁극적으로 정책이 올바로 가도록 하는 사회적 정의를 실현하는 기능을 갖고 있다고 미국인은 생각한다.   


가. 정부관련 기관

가) OSTP(Office of Science and Technology Policy)

미국 의회는 OSTP를 1976년 대통령과 백악관내의 지도자에게 국내 또는 국제적인 정책에 과학과 기술적 측면에서 조언을 하기 위한 목적으로 설립을 승인하였다. 즉, OSTP는 연방정부의 주요정책, 계획, 프로그램에 대한 대통령의 과학적 기술적 분석과 판단을 위한 정보를 제공하는 기관으로 주요 기능은 다음과 같다.

- 건전한 과학기술 정책의 개발과 예산 확보를 위한 정부기관의 투자기획 및 기관간의 조정

- 경제발전, 환경, 국가안보에 기여하는 과학과 기술에 대한 연방정부의 투자 정책수립

-  연방정부, 주정부, 지방정부과 다른 국가 또는 과학기술계와의 협력적 관계 유지

- 과학기술에 대한 연방정부 투자에 대한 성과 분석


나) NTIS(National Technical Information Service)

NTIS는 상무부(Depatment of Commerce)내의 기술국(Technology Administration)의 한 기관으로 미국이 전세계적으로 경제에 대한 국가경쟁력을 유지시키는데 필요하고 산업체의 새로운 제품 개발과 생산을 촉진시키기 위한 목적으로 기술적 자료의 수집과 제공을 목적으로 한다.  주요 기능은 다음과 같다.

- 정보 수집 및 제공을 위한 표준적 방식의 개발

- 연방정부, 또는 과학계 산업계의 모든 과학적, 기술적, 공학적 자료의 수집 및 정리

- 전세계적으로 정보의 수집 및 정리

- 연방정부가 가진 정보의 공공적 제공


다) NIST(National Institute of Standard and Technology)

1901년 연방정부내의 최초의 물리과학을 위한 연구소로 국립표준국(National Bureau of Standard)이라는 명칭으로 설립되었다.  현재 상무부(Depatment of Commerce)내의 기술국(Technology Administration)에서 지원하는 연구소이다.  과학과 기술적인 표준과 측정법을 개발하고 확정시키며, 상품 생산성을 향상시키기 위한 기술의 개발, 삶의 질을 향상시키 위한 연구를 수행한다.  주요 기능으로는 다음과 같다.

- NIST 연구소 : 국가의 기술 인프라를 증진시키고, 산업계의 제품과 서비스를 향상시키기 위한 기술적 연구 수행

- Baldrige National Quality Program : 미국 제조사 또는 서비스회사, 교육기관 등의 경쟁력 향상을 위한 지원 프로그램

- Manufacturing Extension Partnership : 중소 기업에 대한 기술적 지원을 위한 전국적 지원 조직 구축

- Advanced Technology Program :  개인기업과 공동으로 공익적 목적을 위한 신기술 개발 지원 

 

라) 국립과학재단 (National Science Foundation: NSF)

NSF는 1950년 국립과학재단법에 의하여 설립되었다.  이 기관은 과학진보, 국민건강, 번영, 복지향상, 국방수호 및 기타 과학에 관련 사항 연구 및 지원을 목적으로 하고 있다.  그러나 연구를 직접 수행하는 기관은 아니고 연구비를 주로 대학에 제공하는 기관으로 기초과학연구와 공학연구를 지원하며 국내 및 대외 정책의 도출에 적합한 과학과 공학정보를 제공하고 있다.  주요 수행 사업은 다음과 같다.

- 과학 및 공학의 연구와 교육 기금 제공

- 2000개 이상의 학교, 기업체 및 연구기관에 연구비를 제공하고 협력협정을 맺어 과학과 공학 발전 도모

- 교육을 위하여도 지원하며, 대학원생을 비롯하여 연구인력 양성 프로그램에 지원

- 연구시설 운영을 위하여 지원하며, 국립연구센터, 해양학 연구시설, 북극연구기지 등의 대규모 연구소 운영도 지원


마) NASA(National Aeronautics and Space Administration)

1957년 최초 인공위성인 스푸트니크 1호 발사가 소련에서 성공하자 우주개발연구를 효율적으로 수행하기 위하여 NASA가 설립되었다.  1960년대 우주개발 계획은 엄청난 예산과 인력을 투입하여 수행되었는데 머큐리-제미니-아폴로 계획으로 이어지는 우주개발연구는 1969년 7월 16일 아폴로 11호가 처음으로 인류가 달에 도착하는 성공을 거두었다.  NASA는 플로리다의 케네디 우주센터, Caltech의 제트추진연구소등 10개의 연구센터에 2만명 이상의 연구원을 보유한 거대 연구조직이다.  우주개발 연구 사업은 아직도 NASA의 가장 중요한 연구사업으로 화성탐사등 태양계를 탐험하는 연구는 지속적으로 수행되고 있고 아울러 초음속 민간항공기 개발, 우주비행선 계획 등 민간에서 사용하는 초음속 항공기에 대한 연구도 최근 수행되고 있다.

        

나. 민간기관

가) RAND 연구소

1948년 설립된 RAND연구소는 싱크탱크의 효시라고 할 수 있다.  현재 1200여명의 연구원, 직원 2000여명과 3800만 달러의 예산을 사용하는 세계 최대의 싱크탱크이다.  대부분의 연구가 정부의 용역성 연구로서 정치, 경제, 국방, 의학, 법률 등의 여러 분야에 걸쳐있으나 주로 전쟁과 안보 관련 전문의 싱크탱크라고 할 수 있다. 랜드에서 수행하는 프로젝트중 50%정도가 미공군으로부터 의뢰 받은 것이고 15%정도가 국방부나 육군 등 타 군사기관에 관한 것이며 민간부문은 35%정도를 차지한다.  과학기술적인 면에서는 주로 전쟁 수행에 필요한 과학적 기술적 지식에 관한 연구가 이루어지고 있다고 추측되어지고 있으나 프로젝트의 상당수가 국가 1급비밀로 분류되어 구체적으로 어떠한 연구가 진행되고 있는지는 잘 알려지지 않고 있다.  최근 탈냉전 이후 많은 프로젝트가 민간부문으로 이동되어, 예를 들면 도시 공해문제, 의료체계 등의 연구가 진행되고 있다.

         

나) ADL 연구소

ADL은 1986년 MIT교수였던 화학 및 화공학자인 리틀(Arthur L. Little)과 그리핀(R. Griffin)박사에 의하여 설립되었다. 연구소 이름도 리틀 박사의 이름으로부터 만들어졌다.  학문연구로부터 얻어진 과학적 발견을 산업 및 사회전반의 최대 효용을 위하여 서비스에 응용한다는 목적으로 설립되었다.  ADL이 컨설틴 산업의 역사를 대변하는 기관이라고 하는 것은 최초의 컨설팅 회사라는 것 이외에 컨설팅을 통해 축적된 경험과 지식을 바탕으로 제품수명 주기이론 등을 비롯한 새로운 방법론을 창안하여 전파하였고 ADL로부터 독립하여 새로운 컨설팅회사가 만들진 경우가 많이 있다.  ADL은 영리를 목적으로 하는 컨설팅회사로서 세계 30여개국에 52개소의 사무실과 170개소의 실험실을 둔 초대형 싱크탱크이다.  ADL은 정부, 산업체, 대학, 과학자, 연구소, 국제기구 등 다양한 고객을 상대로 의뢰하는 문제는 무엇이든지 해결해 주고 있다.  기술 및 정책개발, 제품생산성, 경영혁신, 환경, 건강, 안전에 대한 컨설팅을 주요 업무로 설정하고 있다.  


2) 일본의 싱크탱크

아시아의 국가로서 서구기술문명을 가장 일찍 받아들인 일본은 20세기에 들어오면서 기술적인 수준에서 비약적인 발전을 하였다.  특히 과학분야 보다 기술분야에서 정부와 산업계의 주도 하에 조직적으로 국가의 기술 경쟁력을 향상시켰다.   

일찍이 다이쇼정부의 기술정책은 상업적인 면과 전략적인 면에서 모두 큰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  그 당시 점차 복잡해 가는 산업의 과학적 기초를 마련하기 위하여 1927년 이화학연구소(RIKEN)가 설립되었다.  제1차 세계대전은 과학과 기술의 전략적 중요성을 일깨웠다.  독일의 카이저 빌헬름 연구소와 같은 대규모 중앙 집중식 연구의 필요성을 인식한 기업가, 학자, 관료의 수가 늘어났고 기업과 정부의 공동 주도 하에 RIKEN이 만들어졌다. 초기투자는 기업의 기부금으로 충당하였고 정부는 초기에 운영비의 상당부분을 제공하였다. 그리고 독일의 모형을 따라 응용연구와 순수연구, 모든 분야에서 특수한 과제를 집중 연구하는 여러 개의 개별 연구실로 나누어져 있었으며, 그 지위에 걸맞게 국가의 가장 뛰어난 과학자들이 배치되었다. 정부의 개정지원을 받는 RIKEN은 국수적이면서 전략적인 임무를 수행하였다. 그 후 1930년대 후반에 공공연구소와 민간연구소의 수가 급격히 늘어났고, 1938년 제정된 국가동원법은 정부로 하여금 기술연구를 지도하고 육성하는 새로운 권한을 갖게 하였고 이 법에 의하여 설립된 정부기획단은 국가의 중점핵심기술분야에 대한 연구명령을 내릴 수 있는 권한을 갖게 되었다. 1939년 정부는 연구소 등록제를 실시하여 기술 개발을 위한 전반적인 계획을 수립하는데 필요한 정보를 확보하였다.  1941년 기획단은 ‘과학과 기술의 새로운 질서형성을 위한 계획’이라는 보고서를 발간하였는데 그 보고서에 ‘대동아 공영권의 물적 자원에 근거한 일본형 과학기술의 확립’을 요구하고 있다. 그 결과 정부의 각 부서에 나누어져 있던 기술정책을 한곳으로 모은 기술청이 설립되어 공공연구소 뿐아니라 민간연구소를 포함한 모든 연구소의 개발계획과 재정 지원을 직접 조정할 수 있었으며 연구소의 모든 활동을 국가의 필요에 부응하도록 조절하는 책임을 지게 되었다.  이후 사실상 일본의 연구는 정부의 주도하에 목적 지향적인 연구를 수행할 수 있는 체제를 갖게되었으며 이러한 전통은 일본의 과학기술 싱크탱크는 기술관료가 주도하는 양상을 보이게 되었다.

전쟁의 패배 후 1948년 일본의 관료들은 기술정책의 기초를 재건하기 시작하였는데 산업과학기술단이 과거의 통상산업성을 대체한 국제통상산업성(MITI)내에 설립되었으며 각종 중앙연구소의 지배권을 인수하여 MITI가 산업기술에 관한 정책개발의 핵심 역할을 하였다.  그 후 1956년 일본 의회는 일본의 대규모 기술혁신을 목적으로 하는 과학기술청(STA)의 신설을 인준하였고 1959년 정부는 기술정책의 조절, 육성하기 위한 과학기술위원회라는 자문그룹을 구성하였는데, 이 위원회는 연구와 관련 있는 각 부서의 활동을 조절하고 미래의 발전을 위한 장기 계획을 마련하기 위하여 구성되었다.  이 후 MITI와 STA는 일본 과학기술 정책 수행의 두 주요 기관으로 일본 산업기술 발전에 큰 기여를 하였다.  일본은 싱크탱크라 불리울 만한 기관을 따로 두고 있지 않고 있으며 주요 과학기술정책은 MITI와 STA가 주도하며 과학자와 기술자에게 조언을 구하는 체제로 되어있다.  국가적인 과학기술정책의 총괄과 조정은 내각부에 설치된 과학기술회의를 통하여 이루어졌는데 최근 개편된 내각체제에서는 ‘종합과학기술회의’가 내각부에 설치되어 과학기술정책의 기획입안 및 종합조정을 담당하고 있다. 통상성 산하에 우리나라의 정부출연연구소와 유사한 연구소들이 있는 AIST(Agency of Industrial Science and Technology)가 있어 과학적 또는 기술적 연구를 전담하고 있다.   

 

가) 종합과학기술회의

내각총리대신을 의장으로 하고 과학기술 관련 내각 대신, 행정기관의 장과 전문가 7인을 포함하여 총 14인으로 구성되어 국가전체의 과학기술을 담당하고 각 성.청 보다 한 단계 높은 차원에서 종합적이고 기본적인 과학기술 정책의 입안 및 조정을 수행한다.  내각총리대신 등의 자문에 따라 다음과 같은 사항을 조사 심의하며 필요한 경우 내각총리대신에게 의견을 제시할 수 있다.

- 과학기술의 종합적.계획적인 진흥을 위한 기본적인 정책

- 과학기술에 관한 예산.인재 등 자원배분 방침 및 과학기술 진흥에 관한 중요 사항

- 국가적인 중요한 연구 개발의 평가

- 종합과학기술회의의 결정에 의해 하부기관을 설치

  

나) 이화학연구소(RIKEN)

과학기술의 종합적 연구를 수행하기 위하여 1917년 설립되었고, 전후 1958년 과학기술청 산하의 정부 연구기관으로 재조직 되었다.  연구소는 순수과학에서부터 응용과학까지 연구를 수행하는 종합 연구소이다.  현재 700명에 가까운 연구원과 3000여명의 학생, 방문연구원이 연구를 수행하고 있고 년간 예산이 800억엔이 되는 일본 최대 연구소의 하나이다. 최근 연구주제는 게놈연구, 뇌연구등의 생명과학 분야의 학제적인 연구와 새로이 부상하는 첨단연구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



3) 유럽의 싱크탱크

중세 이후 과학기술이 비약적으로 발전했던 시기에도 유럽의 과학과 기술은 개인 중심으로 발전되었다.  산업혁명기에도 기술의 산업에의 응용도 개인의 능력에 따라 성취되었고 과학자나 기술자는 사회에서 크게 주목을 받지 못하였다.  특히 영국의 경우는 과학자는 귀족에서 나왔고 과학적 연구는 개인의 호기심을 충족시키는 정도로 인식되었고 기술자는 사회적으로 천대받는 위치에 있었다.  그러나 프랑스나 독일은 특히 기술자에 대한 국가적 필요성을 인식하여 프랑스에서는 일찍이 에콜폴리테크와 같은 우수한 공학자를 양성하는 교육기관을 열어 과학기술자를 양성하였다.  20세기 전후 독일은 과학자와 기술자의 국가적 중요성을 가장 잘 인식하여 활용하였다. 

1887년 독일 전기산업의 개척자인 지멘스(E. W. von Siemens)의 개인적 노력과 독일 제국 정부의 협력으로 제국물리기술연구소(Physikalisch-Technische Reichsanstalt: PTR)가 설립되었다.  이 연구소는 국가의 산업발전에 필요한 표준을 정하는 일을 주로 담당했는데 과학적.기술적.산업적 차원에서 독일제국이 새로이 획득한 정치적인 힘과 권위의 상징이 되었고 이 연구소는 세계 물리학의 중심지가 되었다.  빌헬름시대에는 과학과 산업의 연결이 본격화되었고 이러한 상호결합은 국가의 적극적 개입에 의해 더욱 강화되었다.  그리고 이 당시의 과학은 산업적.국가적 의미 이상을 지니고 있었는데 독일제국내에서 과학은 국가의 명예와 위신 차원에서 진흥.육성되어 과학기술발전은 국수주의적 발상과 맥을 같이하고 있었다. 프로이센 교육부의 고등교육 및 대학 행정 책임자로 빌헬름시대에 과학.문화정책에 막대한 영향력을 행사한 알트호프(Fridrich Althoff)는 유능한 젊은 과학자가 대학에 임용된 후 강의를 비롯한 일상적인 교육업무에 시간을 너무 많이 빼앗겨 연구활동에 지장을 받는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전적으로 연구에만 전념할 수 있는 연구소를 만들겠다는 생각을 갖게 되었다.  이러한 계획은 1911년 카이저 빌헬름 협회(Kaiser-Wilhelm Gesellschaft) - 현재 막스프랑크연구회의 전신 - 의 설립에 의하여 실현되었다.  이 협회의 기본 게획을 만들었고 초대 회장이었던 하르낙(A. von Harnack)은 설립취지에서 기초과학의 연구는 산업발전에 필수적이며 군사력과 과학은 위대한 독일을 지탱하는 두 기둥이라고 강조하였다.  이 연구소는 아인슈타인이 이끄는 물리학연구소, 하버(F. Haber)가 이끄는 물리화학연구소 등 세계 과학의 중심지로 성장하였다.    

 그러나 제1차, 제2차 세계대전을 통하여 과학기술자는 전쟁의 무기연구에 이용되었다. 또한 유럽은 전쟁으로 과학기술의 연구를 수행하기 힘들었기 때문에 대부분의 유능한 유태계 과학기술자들은 미국으로 이주하게 되었다.  이들은 미국 전쟁을 승리고 이끌고 미국의 과학기술수준을 최고 수준으로 올리는데 결정적인 기여를 하였다.  그러나 유럽의 각 나라는 과학기술의 수준이 2차세계 대전 후 미국에 비하여 열세에 있게 되었고 국가 경쟁력에 기여하는 싱크탱크로의 역할도 부진하였다.  그런 가운데에도 독일의 막스프랑크 연구회나 프랑스의 CERN 연구소등은 국가적인 싱크탱크로의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가) 독일 막스프랑크 연구회

1911년 설립된 카이저빌헬름협회는 전후 1948년 막스프랑크연구회로 개칭 후 재출발하였다. 연구회는 산하에 80여개의 연구기관이 있으며 대부분이 과학분야이다.  연방 및 지방정부에 의하여 지원되고 있지만 정부 간섭없이 독립적으로 운영되어 인사, 조직은 물론 연구과제 선정, 평가 등 기관 운영은 자율적으로 운영된다.  연구회에는 과학자문위원회라는 연구기관 평가를 담당하는 중추기관이 있는데 국제적으로 명성있는 과학자로 구성되며 모든 연구기관에 의무적으로 설치되어야 한다.  연구회의 목적은 다음과 같다.

- 산하 연구기관의 지원, 관리, 평가

- 산하 연구기관들의 탁월한 연구프로젝트 및 실적 촉진

- 자연과학, 사회과학, 예술 및 인문학 분야에서 일반 대중을 위한 기본 연구방향 설정 


나) 프랑스 국립과학연구소(Centre National de la Recherche Scientifique : CNRS)

국책연구기관을 지원하고 대학에서 할 수 없는 연구를 수행하며, 대학연구소의 기능을 강화할 목적으로 1939년 설립되었다.  특히 학제간 연구를 체계저으로 수행.지원함을 가장 큰 목적으로 하고 있다.  12,000명 정도의 연구직을 포함하여 총 26,000여명의 인원을 보유하고 있으며 총 예산은 약 155억 프랑(약 2조 3천억원)을 사용하고 있다. 연구는 다음의 7개의 연구 부서를 중심으로 이루어지는데 다시 1250개의 연구단위로 나누어져 있다.

- 수학물리연구부

- 핵 및 분자물리 연구부

- 언제니어링 연구부

- 화학 연구부

- 우주과학 연구부

- 생명과학 연구부

- 인문사회과학 연구부


5. 정책 건의 : 국가경쟁력 강화를 위한 바람직한 싱크탱크


1) 싱크탱크의 기능

우리나라의 최초의 연구소 겸 싱크탱크는 집현전이었다고 생각된다.  세종임금이 조선시대의 최고의 성군으로 꼽히는 이유는 집현전에서 연구하고 집대성한 귀중한 연구자료의 덕분일 것이다.  1940년(세종 2년) 설립된 집현전은 1456년(세조 2년) 폐지될 때까지 불과 37년간 존속하면서 많은 학자를 길러내었고 조선시대를 대표하는 연구 업적을 남겼다.  총 90여명의 학사가 집현전에서 연구한 것으로 기록되어 있는데 이들은 젊은 나이에 집현전 학사로 발탁되어 후에 당대 최고의 학자와 정치가가 되었다.  집현전의 역할은

① 경연과 서연(임금과 같이 경서를 강론하며 당면한 문제의 해결점을 논의하기도 하고 임금의 명령을 받은 것을 조사.보고)

② 문한 (학문과 문장을 필요로 하는 관서에 차출되어 일을 수행)

③ 옛제도의 조사.연구

④ 편찬사업

⑤ 도서관

등을 수행하였다.   이러한 역할은 현재의 싱크탱크가 해야할 일을 말해주고 있다고 생각한다.

기능적인 면에서 싱크탱크가 수행해야할 것은 정책을 결정하는 대통령 또는 그를 보좌하는 기관에 당면한 문제를 분석하여 해결방안을 제시하고 대통령이 지시한 사항에 대하여 조사하여 보고하는 것이다.  그리고 필요에 따라 각 부처에 과학기술적 자문과 연구를 수행하는 일을 담당하여야 할 것이다. 그리고 이전의 과학기술에 관련된 사업을 조사 연구하는 사업을 수행하고, 연구결과의 편찬과 연구정보의 수집 및 이용을 할 수 있도록 하여야 할 것이다.  싱크탱크를 새로이 설립하던 기존의 연구소를 재편성하던 이러한 기능을 원활히 할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어야 할 것이다.


2) 싱크탱크의 구성원      

현대 사회에서 과학은 전문화되어 있다.  과학은 여러 전문분야들로 세분화되어 있고 그 내용이 어려워서 전문가가 아닌 경우는 지식인이라 할 지라도 전혀 이해할 수 없는 정도이며, 대개의 경우는 과학자들 마저도 자신의 분야 이외의 다른 분야의 과학의 내용은 이해할 수가 없게 되었다.  따라서 본격적인 과학활동은 과학자 전체로 이루어진 과학자사회가 아니라, 전문분야의 과학자들로 이루어진 세분화된 과학자사회들에서 주로 이루어지게 된다.  싱크탱크는 당연히 과학자 또는 기술자의 전문가 집단이 되어야 할 것이다.  그리고 가능한한 각 분야의 전문가가 적절히 조화되는 구성원이 필요한데 이것이 가능하지 못한다면 아웃소싱에 의하여 라도 항상 동원할 수 있는 전문가 집단을 보유하고 있어야 한다.


3) 싱크탱크의 운영

과학기술분야의 연구는 재원이 상당히 필요하다.  미국의 경우 싱크탱크의 상당수가 외부용역에 의하여 또는 재단이나 국민들의 기부금에 의하여 운영되고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경우는 정부의 출연 연구소 형태로서 정부에서 운영비의 대부분을 부담하고 있거나 산업체 연구소의 경우 그 모 기업에서 운영비를 지원한다.  운영비에 대한 안정적인 지원은 싱크탱크의 역할을 원활히 수행하는데 필수적인 요소이지만 연구결과나 제안에 대한 독립성에 부정적인 영향을 받을 수 있다.  왜냐하면 객관적인 연구결과보다 지원하는 기관의 구미에 맞는 결과를 내놓게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현 시점에서 우리나라의 경우 미국의 싱크탱크와 같은 운영을 하는 기관이 당장 설립 운영되기 쉽지 않은 현실에서 정부의 지원을 받는 경우 정부의 영향력을 최소화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가 마련되어야 할 것이다.


4) 싱크탱크의 바람직한 역할

대통령이 정책을 결정할 때는 그 정책에 대한 배경과 문제점에 대한 정확한 정보가 정책 결정과정에 제공되어야 한다.  이러한 정확한 정보를 수집하여 제공하는 일이 싱크탱크의 가장 중요한 역할이 될 것이다.  특히 과학 기술적인 측면에서의 정보는 일반 지식인으로도 이해하기 힘들기 때문에 정확한 정보와 이를 일반지식인이 이해할 수 있도록 해설한 정보를 제공해야 할 것이다. 어떤 한 쪽이 결정되기에 유리한 정보를 제공함으로써 중요한 결정을 오도하는 것은 매우 중대한 문제를 발생시킬 수 있을 것이다.

최근 국가적으로 중대한 사안에 과학기술적인 정보가 필요한 경우가 상당히 많고 앞으로 더욱 많아질 것으로 생각된다. 이러한 사안이 비전문가의 부정확한 정보에 의하여 잘못된 정책적 판단이 이루어진다면 국가적으로도 큰 손해를 보게될 수 있다.  따라서 앞으로 과학기술적 싱크탱크의 역할은 국가적으로 더욱 중요한 역할을 해야할 것이다.


5) 다학제적 싱크탱크

국가적으로 중요한 사안은 여러 가지 분야, 즉 경제적, 사회적, 과학기술적으로 복잡한 관계를 가지고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따라서 이러한 복잡한 사안에 대한 올바른 정책을 결정하기 위하여서는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가 참여하는 싱크탱크가 필요하다.  과학기술 분야는 더욱 타 분야의 인력에 정보를 정확하게 제공하는 것이 필요하다. 따라서 과학기술 분야만의 인력으로 구성된 싱크탱크보다 다학제적인 싱크탱크가 앞으로 더욱 필요할 것이다.


<참고문헌>


제5장 과학기술 경쟁력과 싱크탱크


과학기술부. 1999. ��2025년을 향한 과학기술발전 장기비젼��, 과학기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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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식, 박성래, 송상용. 1992. ��과학사��, 전파과학사

김영식, 임경순. 1999. ��과학사신론��, 다산 출판사

손보기. 1996. ��세종대왕과 집현전��, 세종대왕 기념사업회

임종철. 2002. ��세계를 움직이는 미국의 싱크탱크��, 경제사회 연구회

정서환. 1997. ��세계를 움직이는 미국의 싱크탱크��, 도서출판 모색

테사 모리스 스즈키 지음. 박영무옮김 1998. ��일본기술의 변천��, 한승

일본총합연구소 지음, STEPI 옮김. 2001. ��일본.미국.유럽 연구개발프론티어��, STEPI


 요 약 



 21세기의 지식기반 글로벌 정보화 사회에서는 국부와 성장의 원천이 과거의 물질적 자원과 노동력에 의한 인적자원에서 정보와 과학기술을 핵심으로 하는 지적자원으로 전환되어 새로운 지식을 창출하거나 습득한 지식을 활용하는 것이 더욱 중요해질 것이다.   앞으로 국가경쟁력에서 더욱 중요한 역할을 차지할 것으로 예상되는 과학기술의 효과적 육성을 위하여, 그리고 이러한 과학기술력을 효과적으로 국력 신장에 연계가 될 수 있는 국가적 체계를 갖추기 위한 싱크탱크의 역할 및 육성에 관한 정책방안을 제안하였다.

우리나라는 과학기술 계통의 다수의 출연연구소가 있어 과학기술 연구를 수행하고 있는데 과학기술계의 싱크탱크 역할을 하고 있는 대표적인 연구소가 과학기술원, 한국원자력연구원, 한국과학재단, 한국표준과학연구원, 한국과학기술정보연구원, 과학기술정책연구원, 한국과학기술기획평가원 등이 있고 그이외에 국가과학기술회의, 국가과학기술자문회의, 대한민국 학술원, 한국과학기술한림원, 한국공학한림원 등이 싱크탱크의 역할을 하는 기관이라 하겠다. 그 외에 민간연구기관이 대기업을 중심으로 있다.  외국의 경우 미국은 싱크탱크의 중요성이 일찍이 알려졌고 정부 정책 결정에 큰 영향을 행사하고 있다. 이 들중에는 OSTP, NIST, NASA, NSF와 같은 정부지원기관과 RAND, ADL과 같은 민간기관이 있다.  우리나라도 그 기능, 운영, 구성원, 역할 면에서 과학기술의 전문성에 걸맞은 싱크탱크가 국가 정책을 결정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해야 할 것이다.        


Summary 


The source for the national wealth and development in the 21st century, which will be a knowledge based society, is expected to be knowledge resources like science, technology and information rather  than material resources and labor resources.  In order to nurture science and technology effectively, which will be more important for the national competitiveness in the future, we propose the policy plan to develope the think tank for making an national system which is related with the growth of national power owing to science and technology.

There already exist a lot of government sponsored laboratories for science and technology research. Among them, the representative think tanks are  KIST, KAERI, KOSEF, KRISS, KISTI, STEPI, KISTEP.  The other think tanks are NSTC(National Science and Technology Council), PACST(Presidential Advisory Council of Science and Technology), KAST(Korean Academy of Science and Technology), NAEK(the National Academy of Engineering of Korea), NAS(National Academy of Science). And also there are a few of industry supported laboratories.  In United State, the importance of think tanks were recognized earlier and they already have given impacts on the national policy. Among them, the government agencies are OSTP, NIST, NASA, NSF, and the private institutes are RAND Cooperation and ADL Inc. In our nation, the think tanks should play an important role to decide the national policy in the specific areas of the science and technology with the proper function, operation, constituent, and rol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