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은 왜 우리를 매혹하는가 - 화학자 전승준 교수의 음악 에세이  (7) 

  2008년 3월 5일 / 삼성  소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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핸드폰 벨소리에서 개인 블로그의 배경음악에 이르기까지 이제 음악은 공기처럼 생활 속 어디에 자리잡고 있다. '어거스트 러쉬'라는 영화에서는 '음악은 항상 곁에 있으니, 우리가 해야 할 전부는 그저 듣는 것'이라고 했던가. 무엇이 우리를 이토록 음악에 매혹되게 하는 것일까? 화학자 전승준 교수의 음악 이야기로 그 비밀을 알아보자. 

  


1) '별밤'으로 시작된 나의 음악 여행


쫓기는 듯 바쁘게 일을 하며 약 두 달을 밖에서 보내고 내 연구실로 돌아왔다. 폭풍이 몰아친 후의 고요함이랄까. 일상이 주는 평온함 속에 이전에 항상 하던 대로 재즈 음악 방송을 틀어놓고 메일을 열어보고, 인터넷을 찾고, 책을 본다.


필자는 스스로를 ‘별밤 세대'라고 생각한다. 요즘처럼 다양한 음악 매체가 없던 1970년대 전후, ‘별이 빛나는 밤에'(일명 별밤) 같은 라디오 프로그램을 틀어놓고, 음악을 들으며 공부도 하고 책을 읽던 세대가 필자와 같은 별밤 세대가 아닐까? 어느새 일상이 되어버린 음악과의 인연은 아마도 그때부터 시작된 듯하다. 남진, 나훈아의 트롯과 윤형주, 송창식의 포크송 등 다양한 음악이 유행했지만, 필자는 톰 존스의 ‘딜라일라'나 비틀스 같은 외국 팝송을 주로 들었다. 팝송을 듣고 흥얼거려야 더 유식해 보인다고 생각했었던 것 같기도 하다.



2) 클래식 음악은 정말 어렵고 따분한 음악일까?


팝송으로 시작한 필자의 음악 여행은 로큰롤과 클래식 음악으로 이어졌다. 노래방 연습 때문에 가요를 즐겨 들었던 적도 있고, 우연히 재즈를 접하면서 재즈를 많이 듣게 되었지만 지금은 장르에 상관없이 음악을 듣는 편이다. 물론 어떤 음악은 친숙해지기가 쉽지 않다. 가요에 익숙해진 사람에게 클래식 음악은 따분하고 골치 아픈 음악으로 생각될 수도 있겠다. 그러나 클래식 음악은 정말 어렵고 따분하기만 한 음악일까? 필자는 친숙하지 않은 장르의 음악을 처음 접할 때 탐구적으로 음악을 들어볼 것을 권하고 싶다.

 


클래식 음악은 말 그대로 ‘클래식'이다. 즉, 같은 곡이 오랫동안 무수히 많은 연주가들에 의하여 연주되고 해석된다. 그렇다면 같은 곡을 수많은 연주자들이 연주하는데, 그들의 연주는 정말 차이가 나고, 어떤 연주가 다른 연주보다 더 나을까 하는 것이 필자의 의문이었다.


1980년대 초 미국 유학시절, 평소 좋아하던 멘델스존 바이올린 협주곡 음반을 구할 수 있는 대로 10여 장을 구해 반복해서 들어본 적이 있다. 그러나 어느 연주가 다른 연주보다 좋다 판단은 쉽지 않았다. 같은 음향기기로 음악을 들으면 연주보다는 녹음 상태가 더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생각은 지금도 변함이 없다. 품었던 의문의 해답은 이상한 쪽으로 결론을 내게 되었지만, 이러한 경험을 통하여 클래식 음악은 필자에게 더욱 친숙하게 되었다.



3) 왜 음악은 우리를 매혹하는가?


1990년대 후반, 1년 동안 다시 미국 샌프란시스코 지역에서 보낼 기회가 있었다. 그때 우연히 재즈 라디오 방송을 듣기 시작하면서부터 음악에서도 다른 취향을 갖게 되었다. 재즈 음악을 듣기 시작한 것이다. 그 지역의 공영방송으로 정통 재즈 방송인 KCSM 방송은 서울의 연구실로 돌아온 후에도 인터넷(www.kcsm.org)을 통하여 듣고 있고, 지금 이 글을 쓰면서도 듣고 있다.


 


곡의 제목과 연주자를 기억하고, 열심히 책을 찾아보며 공부하듯 들었던 클래식 음악과 달리 재즈 음악을 들으면서는 연주자가 누구인지, 무슨 곡인지 별로 관심이 없어졌다. 재즈는 연주자의 음악이다. 같은 곡이라도 수많은 연주자들이 마치 다른 곡처럼 연주한다. 수십 곡쯤 소장하고 있는 ‘My funny valentine'만 해도 연주마다 그 맛이 다르다. 규칙은 있지만 오히려 규칙에서 벗어나는 맛이 더욱 재미있다. 그저 음악을 듣다가 어떤 때는 같이 흥얼거리기도 하고, 어떤 때는 어깨를 들썩이며 흥에 취한다.


 


클래식이나 재즈 음악을 본격적으로 들어보려고 할 때 먼저 좋은 음향 환경과 오디오 시스템을 갖추어야 한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러나 음악의 진정한 매력은 좋은 음향기기에서 발산되는 것이 아니라 음악 그 자체를 즐기려는 마음가짐에 달려 있는 것은 아닐까? 필자도 한 동안 좋은 음향기기를 갖춘 적이 있었지만, 지금은 주로 연구실에서 인터넷 음악 방송을 틀어놓고 듣고 있다. 오디오 시스템도 20여 년 전 미국 유학시절에 200달러 정도에 구입했던 중고 시스템을 아직 사용하고 있다.


왜 음악은 우리를 매혹하는 것일까? 그 이유는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한 가지 공통점은 음악이 우리의 감정을 순화시키기 때문일 것이다. 팝송을 들어야 더 유식해 보인다거나 클래식 음악을 들어야 더 고상해 보인다거나 하는 선입견 없이 남진의 ‘가슴 아프게'나 비틀스의 ‘Norwgian wood'나 빌 에반스의 ‘Walts for Debby'나 말러의 ‘천인 교향곡' 같은 음악을 듣다 보면 영혼을 어루만지는 음악의 손길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 필자


전승준 / 고려대 화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