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이낸셜타임스 [특별기고] ‘기초연구 50%’ 약속 지켜야/전승준 고려대 화학과 교수
2008-08-10 17:47:23
지난 참여정부 5년 동안 과학기술계에서 오랜 숙원들이 이루어졌다. 과학기술부가 부총리 부처가 되었고 정부의 연구개발 예산은 2배로 증가하였으며 청와대에 과학기술을 담당하는 보좌관직을 신설하였다.
그러나 제도와 공급측면에서 정부가 많은 관심을 보였음에도 과학기술계가 문제라고 생각하는 것들의 개선은 이루어지지 않고 오히려 문제가 심화되었다. 이공계 기피현상, 정부출연연구원 사기저하, 대학교수들의 연구비 부족 등 여러 문제를 여전히 갖고 이명박 정부가 출범하였다.
과학기술계는 이명박 대통령 후보시절의 공약에 많은 기대를 하였다. 특히 수치를 포함한 공약이었던 임기 내에 국가 총 연구개발 예산을 국내총생산(GDP)의 5%로 확대하고 정부 연구개발 예산의 기초원천 연구 비중을 50%로 확대하겠다는 것은 정말 야심 찬 계획으로 과학기술계에서도 과연 실현 가능할 것인가 하는 의문과 함께 큰 기대를 걸었다.
GDP 5% 수준 확대는 연구개발 투자의 의지를 보여 주는 것으로 정부와 민간이 동시에 노력해야만 이루어질 수 있는 것이다. 이러한 양적 확대와 아울러 질적인 면에서도 획기적인 변화를 유도하는 공약이 기초원천 연구 비중을 50%로 확대하겠다는 것이다.
정부 연구개발의 본격적 투자는 박정희 대통령시절부터 시작하였고 당시 경제개발 정책의 일환으로 과학기술자를 우대하며 산업에 직접 도움이 되는 개발연구에 집중하였다.
현재 정부 연구개발비의 45%를 사용하는 출연연구원들이 당시 설립되기 시작하여 산업을 지원하는 데 큰 공헌을 하였다. 그러나 1990년대 중반까지 우리나라의 연구개발비는 규모가 선진국에 비하면 상당히 적었고 정부 연구개발 예산도 산업을 직접 지원하는 보조금 형식으로 응용 및 개발 연구에 치중하였다.
그후 지난 10년 남짓 연구개발 투자액은 선진국 수준으로 증가하여 세계 7위권이 되었다. 그러나 정부 연구개발의 투자 방식은 지난 30년간 별로 달라지지 않았다. 즉 정부 연구개발 예산을 산업체에 보조금 형식으로 직접 지원하며 대학과 정부출연연구원에 대한 지원도 산업체에 직접 도움이 되는 연구를 장려하고 있다.
연구개발 예산의 통계를 살펴보면 이 상황을 알 수 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서는 연구가 산업화되는 과정을 차례로 진행하는 기초연구, 응용연구, 개발연구의 3단계로 구분하는데 우리나라에서 정부 연구개발 투자의 각 단계 비중은 2006년도 통계에서 기초 23.4%, 응용 24.4%, 개발 52.2%이다.
반면에 미국, 영국 등 선진국은 정부 연구개발 투자의 기초연구 비중이 45% 내외이고 개발연구 비중은 아주 적다. 즉 선진국들에서 정부는 산업체에 보조금을 주는 응용 또는 개발 지원보다는 대학 또는 정부 지원 연구소에 기초연구를 지원하고 그 결과가 산업체에 다양한 응용과 개발연구로 확산할 수 있도록 투자하고 있다.
이러한 면에서 이명박 정부의 연구개발 예산의 기초원천연구 비중 50% 확대는 큰 의미를 갖는 공약이라 할 수 있다. 우리나라 연구개발 투자 방식의 패러다임을 정부는 학연을 활용한 기초연구 중심으로, 민간은 응용개발연구 중심으로 역할 분담을 하면서 상호 협력하는 선진국형으로 변환하는 상징적 의미를 갖고 있다.
최근 연구가 산업화되는 단계가 기초, 응용, 개발의 순서를 거치지 않는 경우도 있기에 파급효과가 큰 기본적 연구를 원천연구라고 할 수 있다. 이런 의미에서 기초원천연구 비중 50% 목표는 당장 산업을 도와주는 것보다 다양한 파급효과를 기대할 수 있는 기초연구를 정부가 지원해야 한다는 것이다.
앞으로 이명박 정부에서 5년간 60조원 이상의 연구개발 예산을 투자할 예정이다. 만약 이전의 방식인 응용개발연구 중심의 산업계 보조금 방식의 지원은 10년 뒤 현재 농업의 문제점을 과학기술이 반복할지 모른다. 바로 지금이 공약의 진정한 의미를 되새기고 정부는 시행을 위한 구체적 방안 모색에 적극적으로 나서야 할 때가 아닌가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