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8월 31일] 과학기술, 질적 성장 꾀할 때


전승준 (한국연구재단 전략기획홍보센터장) 미국이 과학기술 강국으로 성장하는 데 공헌한 연구기관으로 국방성 산하 고등방위연구기획청(DARPA)을 들 수 있다. DARPA는 연구개발(R&D)비 규모나 위험부담이 커 민간 기업이 지원하지 못했던 첨단 과학기술 개발을 주도하며 미국의 과학기술 발전을 견인했다. 요즘 보편적으로 사용되는 차량용 내비게이션이나 인터넷은 모두 DARPA의 연구 지원으로 개발된 것이다.


미국에 비해 상대적으로 연구 인프라와 예산이 부족한 우리나라는 기초ㆍ원천기술부터 제품개발에 이르기까지 과학기술 전주기를 지원하는 DARPA와 같은 정부의 역할이 매우 중요하다.


시장성 갖춘 개발연구 필요


우리나라는 지금까지 지속적인 R&D 투자 확대로 과학기술 선도국가로서의 기반은 다졌지만 이를 실질적ㆍ경제적 성과 창출로 연계하지 못했다. 최근 스위스 국제경영개발원(IMD)이 발표한 '2010 세계경쟁력 평가 결과'에 따르면 과학 인프라는 세계 4위, 기술 인프라는 18위로 우수한 성적을 거둔 반면 자격을 갖춘 엔지니어의 공급 수준은 47위, 대학교육의 사회 부합 정도는 46위 등으로 여전히 하위권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또한 과학 논문의 질적 수준을 평가하는 피인용 비율도 0.03%(1981년)에서 2.3%(2008년)에 그치는 등 과학기술의 질적 수준은 여전히 답보상태에 있다. 이제 과학기술의 양적 성장을 넘어 우수 성과창출과 직결된 질적 성장을 추구해야 하는 시점에 이르렀다.


모든 과학기술 연구는 궁극적으로 성과창출과 연계돼야만 우수한 연구 결과라고 할 수 있다. 우수한 기초연구 결과는 수십년 이상 장기간에 걸쳐 광범위하게 성과 창출에 기여한다. 20세기 초 양자역학이론 확립은 반도체 소자를 개발하고 컴퓨터와 스마트폰의 등장에까지 영향을 미쳤으며 레이저 발명에도 기여해 DVD 개발과 라식 수술에도 활용됐다.


한편 우수한 개발연구 결과는 단기간에 기하급수적인 상업적 이윤창출로 이어진다. 우리가 흔히 사용하는 레이저 프린터, 3DTV 등은 주로 선진 대기업의 기초ㆍ원천기술에 기반을 둔 개발연구의 대표적인 결과물이다.


우수한 기초 연구는 수많은 시도와 실패를 거쳐 연구자들에게 인정받는 광범위한 영향력을 지닌 이론으로 자리매김하면서 후속 학술연구 논문에 인용된다. 반면 우수한 개발연구는 훌륭한 연구로 인정받아야 할 뿐만 아니라 상품화로도 직결돼야 한다.


따라서 개발연구는 연구 자체의 중요성 이상의 '시장성'을 필요로 한다. 비록 학계에서는 인정받았으나 시장성이 부족해 빛을 보지 못한 제품도 부지기수이다. 그러나 시장에서 실패한 우수 연구는 향후 새로운 시도의 기반이 될 수 있고 실제 시장에서 성공한 제품들은 여러 차례의 실패를 통해 이뤄진 결과이다.


R&D 선진화를 통한 과학기술의 질적 성장을 위해 정부는 지난해 9월 연구사업 선진화방안을 수립했다. 선진화 방안에 따르면 향후 우리나라 R&D는 선진국 추격형ㆍ모방형에서 모험형ㆍ창조형으로, 개별기술에서 융합 기술로 무게중심을 이동한다. 창의적ㆍ도전적인 기초ㆍ원천연구가 활성화하고 세계시장을 주도하는 대형 선도제품 개발과 산업융합ㆍ원천기술 확보를 위한 융합 및 산업창출형 R&D도 더욱 활발해진다.


정부·학계 창조적 R&D 협력을


9년간 2조원을 투자해 미래사회 전지구적 문제를 해결하고자 하는 글로벌프론티어 사업이나 학문적 가치는 높지만 성공률이 낮아 지금까지 과감히 시도하지 못했던 연구를 지원하는 모험연구 등이 그 대표적인 사례이다.


연구지원 관리절차의 선진화도 크게 개선된다. 특히 도전적ㆍ모험적 연구에 '성실실패 용인제도'를 적용해 창의적 연구문화를 조성한다. 평가제도도 양적 지표를 기준으로 한 일률적 평가에서 질적 지표에 기초한 각 학문 분야와 연구자의 특성을 고려한 개인 역량 중심의 평가로 전환된다.


이러한 변화는 단기간에 어느 한쪽만의 의지로 추진할 수 없는 지극히 어렵고 힘든 과정일 것이다. 그러나 우리 과학기술의 선진화를 위해 반드시 필요한 변화이며 정부와 학계가 상호 협력해 이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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