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기초과학연구원, 자율운영이 관건이다
기사입력 2011.12.05 17:09:46 | 최종수정 2011.12.05 17:10:26
이명박 정부의 주요 과학기술 정책으로 꼽히는 국제과학비즈니스벨트의 핵심 기관인 기초과학연구원이 닻을 올렸다. 정권 출범 초기부터 학계뿐 아니라 정부와 지역, 정치계에서도 많은 관심과 논란이 있었기에 출범이 예상보다 상당히 늦어진 감이 있다.
필자는 무엇이든 시도해 보는 것이 낫다고 생각한다. 비록 실패를 해도 그 경험은 나중에 새로운 시도를 성공으로 이끌어내는 자산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동안 기초과학연구원은 △해야 하는가 △어떤 방식으로 운영하나 △어떤 기관으로 자리 잡아야 하는가 등을 논의하는 과정에서 당초 의도와 다르게 바뀐 점도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일단 출범이 결정됐으니 세계적인 기초과학 연구 분야 메카로 성장할 수 있도록 학계는 최대한 힘을 모아야 한다.
기초과학연구원이 성공적으로 안착하려면 다음 몇 가지 예상되는 문제점을 짚고 넘어가야 한다. 기초과학연구원 운영 철학 중 가장 큰 특징은 자율성이다. 이를 실천하려면 오랫동안 연구소를 관리하는 데 익숙한 정부 관료와 관리받는 데 익숙한 과학자들은 그런 잘못된 습관부터 버려야 한다.
무엇보다 담당 부처와 산하 연구소라는 기존 틀을 과감히 깨야 한다. 우리가 기초과학연구원 모델로 벤치마킹하는 선진국 유명 연구소들은 국가 주도로 한꺼번에 많은 예산을 들여 설립한 것이 아니라 오랜 역사를 거치면서 점진적으로 발전해 현재와 같은 명성을 얻었다. 비록 정부 예산을 사용하더라도 과학자들이 알아서 연구하는 자율성이 주어지고 정부는 `지원은 하지만 간섭하지 않는다`는 자세를 유지한다. 외국 유명 연구소에 나가 있는 젊은 과학자들은 하나같이 `연구에 관한 한 무한 자유를 보장받기에 과학자로서 행복하다`고 입을 모은다.
우리나라가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따는 데 태릉선수촌은 매우 중요한 몫을 했다. 그렇다고 노벨상 수상자를 배출하기 위해 태릉선수촌과 같은 스타일로 연구소를 운영하면 성과를 낼 수 있을까. 그렇지 않다. 운동처럼 엘리트 선수만 훈련시킨다고 노벨상이라는 성과를 낼 확률이 높아지는 것은 아니다.
노벨상 수상자를 많이 배출하는 선진국 연구소 운영 방식은 태릉선수촌과 크게 다르다. 선진국 연구소는 운동시설을 잘 갖춰 놓고 있으며, 부와 명예에는 관심을 두지 않고 오직 운동에만 몰입하는 선수들만 들어온다. 선수는 무엇을 하라는 지시를 받지 않고 20~30년 동안 자신이 알아서 연습하고 경기도 자신이 나가고 싶을 때 출전해 경쟁한다. 기초과학연구원은 이처럼 자율적 방식으로 운영돼야 한다. 행여 노벨상이라는 국가(정치)적 목적이 앞서면 애써 만든 연구소도 죽고 과학도 죽는다.
또 다른 중요한 문제는 예산이다. 당장 내년 예산부터 계획보다 적게 책정됐다가 다시 증액하는 과정을 거쳤다고 한다. 앞으로 수년간 수조 원대 예산이 필요한 상황이지만 연구개발비 증액은 한정돼 있다. 어떻게 안정적으로 예산을 얻어낼지 매년 고민거리가 될 수 있다.
이명박 정권에서 연구개발 예산은 매년 전년 대비 10% 안팎(약 1조원) 증액됐으나 차기 정부에서도 이런 증가율이 유지될 수 있을지 의문이다. 또 응용개발연구 투자가 70%에 가까운 정부 연구개발예산 구조에서 응용연구 투자분을 기초연구 투자로 급격하게 전환하는 것은 정부 부처 간은 물론이고 기초과학자들과 응용개발연구자들 사이에 논란이 될수 있다.
자율성과 안정적 예산은 기초과학연구원과 과학벨트가 한국 과학기술의 새로운 `성공모델`이 되기 위한 필요조건이 될 것이다. 이 밖에도 많은 난관이 나타날 것이다. 이미 정부 퇴직 관료들을 위한 자리를 마련하려 한다는 소문도 들린다. 만약 그렇다면 기대보다는 염려를 느끼는 사람이 많을 것이다.
[전승준 고려대 화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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