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승준 교수 - 고려대학교 정년퇴임사

 

정년 퇴임사

 

남귤북지(南橘北枳), 고려대의 귤

 

제 퇴임사는 고려대에 대한 감사로 시작하려고 합니다. 그런데 무엇을 감사하느냐를 잠깐 말씀드려야 할 것 같습니다. 중국의 고사성어로 남귤북지(南橘北枳))라는 안자춘추(晏子春秋)에 나오는 말이 있습니다. 춘추시대의 명재상으로 꼽히는 제나라의 안영 이야기입니다. 당시 제나라는 강대국인 초나라에 친선사절 대표로 안영을 보내게 됩니다. 초나라의 영왕은 거만하고 무례하게 안영을 맞이합니다. 영왕은 안영을 맞이하는 잔치 자리에 제나라 출신의 도둑질한 죄수를 지나가게 하고 “제나라 사람들은 본시 도둑질을 잘 하오?” 라고 안영을 놀리는 말을 합니다. 이에 안영이 대답하기를 “귤나무라는 나무가 있는데 이 나무는 회수 남쪽에서 자라면 귤이라는 맛있는 열매를 맺는데, 회수 북쪽으로 옮겨 심으면 먹을 수 없는 탱자가 열립니다. 나무는 같지만 기후와 토질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사람도 마찬가지입니다. 제나라에서 사는 사람은 일절 도둑질을 모르는데 그 사람이 초나라에 오면 도둑질을 하는 건 초나라의 기후와 토질이 그렇기 때문이니 오로지 초나라의 풍토 때문입니다.”라고 대답하니 초나라를 모욕하는 말이지만 안영의 대답에 탄복해서 왕이 진심으로 후대하였다고 합니다. 감귤북지, 즉 강남에서는 귤이고 강북에서는 탱자라는 고어는 사람도 환경에 따라 달라진다는 것입니다. 고려대에서 지냈던 시간은 탱자였던 제가 고려대의 좋은 환경 덕분에 귤이 되려고 노력하는 생활이었던 것 같습니다. 열심히 노력했지만 귤이 되었는지는 모르겠습니다. 다만 제가 학문 활동을 하는데 자유스러운 환경을 만들어 준 고려대에 감사합니다. 제가 학교 밖의 활동을 하면서 타 대학들과 비교해 보면, 우리 학교만큼 교수를 대우해주고 자유롭게 학문 활동을 할 수 있도록 지원해 주는 학교가 우리나라에는 거의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다시 한 번 고려대에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퇴임이니까 뒤를 돌아보고 앞으로 다짐을 이야기하려고 합니다. 나이든 사람의 넉두리라 생각해 주셔도 될 것 같습니다. 제가 고려대에 부임하고 교수실을 꾸밀 당시 예술의 전당 상점에서 우연히 구입한 아트포스터 피카소의 ‘돈키호테’ 라는 아주 단순한 흑백그림을 액자로 만들어 걸어 놓았습니다. 처음에 그런 의도는 아니었지만 그 그림을 볼 때마다 학계의 돈키호테가 되어야 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제가 고려대에 있는 동안 저의 연구 분야에서는 저명 학술지라고 하는데 80편 정도의 논문을 발표하였습니다. 그리고 연구 분야를 한 분야만 계속한 것이 아니라 두 번 바꾸었습니다. 그러나 지금 돌이켜보면 연구한 결과들이 정말 기초과학 발전에 중요하면서 내게도 진정 알고 싶은 분야를 연구했는가라고 자문하면 그렇다라고 대답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제가 학문한 과정을 말씀드리면 미국에 유학가서 지도교수가 거의 정해준 주제를 연구했고, 관련되는 분야에서 연구원 생활을 하였으며, 한국에 돌아와 고려대에서도 초기에는 미국에서 연구한 주제를 거의 답습하였습니다. 그 후 바꾼 연구 분야는 제게는 생소했지만 화학과에서 과학재단지원 SRC우수센터를 유치하는데 유리한 당시 유행했던 분야였는데 우수하다고 평가받은 논문들을 여러 편 발표하였고, 또 한 번의 연구 분야 변화를 꽤하여 Nature 학술지에도 논문을 발표하였습니다. 그러나 생각해보면 그 동안의 연구한 것들은 타인이 정해준 연구 분야나 당시 유행하는 연구 분야, 즉 이미 중요한 것들이 이룩되어 있는 것을 열심히 쫒아가면서 저명학술지에 발표를 위한 연구, 즉 단순히 업적 쌓기 위한 연구를 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제가 연구하는 동안, 초기를 제외하고는 연구비 걱정이 없을 정도였었는데, 그렇기에 상당한 학술 논문을 발표할 수 있었지만 국민의 세금을 낭비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합니다. 논어에 위인지학(爲人之學)과 위기지학(爲己之學)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위인지학은 다른 사람을 위한 학문을 뜻하고, 위기지학은 자기를 위한 학문을 뜻하는 것으로, 후에 정자가 위인지학은 남에게 알려지기 위한 것이고 위기지학은 자기 수양을 위한 진정한 공부라고 해석 합니다. 제 학문은 거의 위인지학이었다고 생각합니다. 학교의 승진 요건은 물론 타인들이 요구하는 조건을 만족시키고 저와 제 가족을 먹여 살리는 수단이었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많은 사람들이 위인지학을 하고 저 역시 그러한 사람이었다고 위안을 하지만, 제 젊었을 때의 꿈은 그게 아니었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그러한 꿈은 계속 제 마음속 깊이 숨겨져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약 20년 전 미국에 가서 연구년을 보낼 때에 생각했던 문제가 있는데 이것이 연구해야 할 주제가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였는데 학계에서는 돈키호테같은 주제라고 할 수도 있을 것 같았습니다. 하여간 그 후에도 위인지학에 바뻐서 그 문제를 생각할 여유가 거의 없었습니다. 그리고 그것이 정말 중요한 학문적 주제인지 아직도 확신을 못합니다. 그러나 몇 년 전부터 저는 위기지학을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렇기에 지금의 정년은 학문에 있어서는 별 의미를 갖지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제 아이들 혼사도 치렀고 다행이 사학연금이라는 좋은 제도로 저와 제 안사람이 앞으로 사는 데는 별 걱정이 없을 것 같고, 제가 생각하는 주제는 책과 종이와 연필 (그리고 컴퓨터 ㅋㅋㅋ) 만 있으면 되는 것입니다. 명예교수로 임용될 것 같으니 도서관에서 책을 보는 것은 문제가 없을 것 같습니다. 이 주제가 돈키호테같은 주제이긴 한 것 같은데, 피카소가 그린 그림과 같은 창의성을 발휘하는 것이 문제일 것 같고, 그러한 창의성을 발휘하지 못하더라도 후에 제 자신이 후회는 없는 위기지학을 하고자 합니다.

 

퇴임이니까 제 경험을 토대로 후배 교수님들께서 참고하실 수 있지 않을까하는 이야기를 하려고 합니다. 저는 일찍이 고려대에 부임하자마자 우연한 기회로 학교 바깥에서 대외 활동을 많이 하게 되었습니다. 우리나라 과학정책, 특히 기초과학 정책 수립 또는 연구비지원 정책 등에 관한 여러 위원회에서 활동하였고, 10년 전 정도에 잠시 학교를 떠나 대학 연구를 지원하는 한국연구재단을 설립할 때 제도를 만드는 실무 책임자 일을 맡기도 하였습니다. 저는 외부 일을 할 때 항상 두 가지를 생각하였습니다. 하나는 국가를 위하여 즉 우리나라의 과학을 위하여 봉사한다는 것입니다. 제가 이렇게 이야기하면 당연한 말을 한다고 생각하실 것입니다. 그러나 외부 위원회에 참석하신 분들이면 아마도 제 말의 의미를 이해하실 것입니다. 보통 연구지원에 관련된 정부에서 주관하는 공공위원회는 주요대학과 지방대학 교수들을 구색 맞추어 구성합니다. 위원회에 참석하면 어느 위원이 어느 소속에서 왔는지 명패를 보지 않아도 알 수 있습니다. 즉 거의 대부분의 위원들이 소속대학이나 소속 집단의 대변인이 됩니다. 그것은 당연한 것이 소속대학이나 소속집단에서 추천하면서 그러한 일을 암묵적으로 맡기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저는 다행히도 활동을 하는 동안 제가 알기로는 고려대의 추천을 받은 적이 한 번도 없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나서서 고려대를 대변할 필요가 없었습니다. 대외활동에서 제가 생각하는 국가 과학정책의 올바른 방향을 발언하였고, 가끔 첨예하게 대립되는 이익집단들의 싸움을 중재하였기에 계속 불려 다녔던 게 아닌가 생각합니다. 저는 고려대가 정도를 밟으면 국가의 올바른 정책은 항상 고려대에 이익을 준다고 생각하였습니다. 따라서 국가가 올바른 정책을 수립하고 시행하게 하고, 고려대는 정도를 밟도록 하면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지금까지 훌륭하다고 알려진 고려대의 선배교수님들도 외부활동을 국가를 위하여 하신 분들이지 고려대만을 위하여 활동한 분들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두 번째는 정책들과 대학지원사업들이 정부가 만들고 대학은 항상 시행에 따르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거의 대부분의 정부 정책들과 규정들은 교수들이 참여해서 만든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정책이나 규정이 발표되면 그것을 듣고 유불리를 따지기보다는 사전에 그러한 것이 만들어 질 때 적극적으로 참여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제가 초기에 대외 활동에 참여하면서 이것을 느꼈기에 수동적이 아니라 능동적으로 더욱 적극적으로 참여해서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면 그것을 나서서 바꾸자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한 가지 더 중요한 것은 이 두 가지 생각을 실현하는 데는 학계의 네트워크가 상당히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고려대 내부뿐 아니라 외부와도 교류를 활발하게 해야 할 것입니다.

 

떠날 때는 말없이 라고 했는데 너무 장황했던 것 같습니다. 고려대는 우리나라의 어떤 대학에서 갖고 있지 않은 오랜 역사와 자유스럽고 도전적인 학풍을 가지고 있습니다. 미래의 대학은 많은 변화가 있을 것이라고 예측하고 있습니다만 고려대는 영원할 것이며 이러한 장점을 계속 유지하면 더욱 좋은 대학이 될 것이고 저도 그러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실험실에서 제자들과 함께

(2000년대 초반)

 

 

 

 

 

 

 

 

 

 

 

 

 

 

 

 

 

정년퇴임기념강연에서 가족과 함께

(2019.06.13.)

 

 

 

 

 

 

 

 

 

 

 

 

 

 

 

 

학과 동료 교수님들과 북한산 산행

(2005.08.11.)

 

 

 

 

 

 

 

 

 

 

 

 

 

 

 

 

 

 

화학과 SRC센터에서 노벨상수상 히거교수 초청강연 대담

(2000년대 초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