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진국의 조건 

전승준(고려대교수·화학)   

우리나라 국민이라면 누구나 선진국이 되는 것을 간절히 바랄 것이다. 1995년 처음 1인당 국민소득이 1만달러를 넘은 뒤 IMF 사태를 맞으면서 1998년 1만달러 밑으로 내려갔다가 2000년 다시 1만달러대로 재진입하여 작년 통계가 아직 발표되지는 않았지만 1만5천달러 수준이 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현재까지 선진국으로 1인당 국민소득이 1만달러를 넘어선 뒤 10년 내에 2만달러에 도달하지 못한 나라는 없었다고 하는데 우리는 이미 10년 이상을 1만달러대에서 머무는 것에 대다수 국민들은 걱정하고 있다.

따라서 국정을 책임지고 있는 정부나 학계, 재계 등에서 무엇이 문제이고 우리를 선진국으로 이끌 수 있는 방안이 무엇인가에 대하여 많은 토론이 진행되어 왔고 제안이 쏟아지고 있다. 선진국으로 이끄는 요인과 제안 중의 하나로 많은 사람이 지적하는 것이 과학기술 발전인 것 같다. 이는 폴 케네디의 ‘강대국의 흥망’에서도 특정 나라가 타국보다 강대국이 되는 주요 이유 중의 하나로 기술발전의 차이를 지적하였고, 최근 윌리엄 번스타인의 ‘부의 탄생’에서도 국가의 부를 창출하는 조건의 하나로서 과학적 합리주의의 확산을 주장하였다. 이를 보면 대다수 국민들도 기술과 과학의 발전이 국부 증대의 원동력이고 선진국이 되는 중요한 요인이라는 것에 동의할 것 같다.


-과학적 합리주의 확산 중요-


그러면 이미 선진국이라고 하는 국가들의 발전상을 보았을 때 과학과 기술이 선진국으로의 발전과정에서 어떤 시기에 어떻게 중요한 역할을 하였는가를 생각해 보는 것도 의미가 있을 것 같다. 하나의 예로 미국의 경우를 살펴보자. 미국은 19세기 말경부터 경제적인 면에서 두각을 나타내었고 20세기 초 강대국으로 인정되기 시작하였다. 만약 과학기술이 부의 축적의 선행 조건이 된다고 하면 아마도 19세기 말 이전에 미국이 과학과 기술 측면에서 두각을 나타내는 증거가 있어야 하지 않을까 생각되지만 미국의 과학 기술은 20세기 초에 이르러 상당한 투자와 함께 과학 선진국에 들어선다. 따라서 과학기술의 투자가 부의 축적의 선행 조건이라고 일반화하기는 힘들 것 같다.

국가보다 작은 규모로 기업의 경우를 보아도 비슷한 것 같다. 우리나라의 대표 기업인 삼성전자나 현대자동차가 처음 기업을 설립하면서 과학적 합리주의의 환경에서 기술개발에 우선 투자하여 지금의 성공을 거두었다고 생각되지 않는다. 외국의 성공 기업도 대다수는 시작이 비슷한 것 같다. 그러나 기업의 성공에 회사 전반의 과학적 합리주의와 기술개발 투자는 주요 요인이라는 것은 다수의 기업가들도 인정한다. 그러면 이것이 언제 필요할까? 처음 기업을 설립한 기업가는 도산하지 않기 위하여 피나는 노력을 하지만 많은 기업이 이 단계에서 버티지 못하고 사라진다. 이때는 당연히 과학과 기술 개발 투자의 여력이 없을 것이다. 그러나 이 단계를 통과하여 살아남은 기업이 더 큰 야망이 있을 때 과학적이고 합리적인 사고방식이 일반화되게 체질 개선을 시행하고 과감히 기술개발에 투자하여 성공하는 경우 대기업으로 도약할 것이다.


-대기업 도약엔 기술개발 필수-


국가도 비슷한 과정을 거치지 않을까? 먹고 살기 힘든 후진국 시절 과학기술 종사자를 제외하고는 과학기술에 대한 관심을 갖기가 쉽지 않다. 이 시절에는 먹고 사는데 지장이 없을 정도의 나라를 만들기 위하여 밤잠을 안자며 열심히 일하여 간신히 중진국 정도에 도달한다. 다음 단계로 중진국에서 선진국으로 도약하기 위하여 국가적으로 과학적 합리주의의 확산과 기술개발이 필수적이 아닐까 생각한다. 이 단계에서 후진국을 벗어나기 위하여 밤잠을 안자고 월화수목금금금으로 일하는 방식을 과학적으로 일정을 관리하고, 합리적이고 효율적으로 일하고, 기술개발에 과감히 투자하는 방식으로 바꾸는 것이 필요하다. 선진국 도약을 위한 조건은 과학적 합리주의가 국민 전체에 확산되고 이것을 기본으로 한 합리적인 제도 하에 기술개발에 과감히 투자하는 것이다.


경향신문 2006/3/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