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칼럼] 순수과학과 순수한 투자
입력: 2006년 07월 06일 18:16:14
<전승준/ 고려대 화학과 교수〉
과학의 사회적 역할이 무엇인가는 오래된 논쟁의 주제이다. 특히 최근에 상당수의 국가에서 국가 예산의 일부분을 투입하여 과학기술 발전을 정부가 주도하고 있다. 이러한 현상은 국가가 과학기술자들을 동원하여 국가안보, 산업발전, 국민복지 등 사회적 목적을 갖는 투자를 하는 것이고, 이를 위한 자금을 확보하는 원천인 세금을 내는 그 나라 국민들은 이러한 투자에 거의 동의하는 편이다. 그러나 정부의 연구 예산 투입은 목적성을 갖기 때문에 과학자에게는 의무를 갖게 만든다. 이러한 현상은 20세기 후반 이후 두드러지게 나타나고 있고, 그 이전에는 대부분의 과학자는 흥미를 위하여 또는 사기업에서 사적인 이익을 위하여 연구를 진행했다. 최근 과학자들은 국가로부터 연구비를 지원받기를 원하지만 고전적인 과학자의 생각을 가지고 있는 듯하다.
역사적으로 과학자는 간혹 전쟁의 승리를 위하여 기여하기도 하였지만 사회의 요구를 충족하기보다는 자연 현상에 대한 자신의 의문을 해결하기 위하여 노력하는 과정에서 인류문명에 중요한 과학적 발견을 성취하였다. 이러한 것은 현재도 진행 중이고 중요한 과학적 발견은 인류의 유산이 된다. 그러나 이러한 과학적 발견은 인류의 유산으로서 인류 문명에 기여하지만 누구에게 소속되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예를 들면 뉴턴이 발견한 만유인력의 법칙은 뉴턴이 발견한 지적 재산일 수 있지만 그 당시도 지금도 뉴턴의 소유라고 생각하지 않고 누구의 것도 아니다. 즉, 이를 바탕으로 인공위성을 쏘아 올리거나 대포를 만들지만 법칙 사용에 대한 대가를 지불하지 않기에 인류 공유의 재산이라고 하는 것이 더 맞을 것 같다.
그러면 뉴턴의 연구를 위하여 누가 지원을 하였을까? 국가에서 연구를 지원하였다는 역사적 기록은 전혀 없다. 뉴턴은 캠브리지 대학의 ‘루카스좌 석좌교수’(현재 스티브 호킹 박사 재임중)로 임명되었기에 연구를 진행하는 데에 문제가 없었다고 생각되지만 그 자리는 개인적 기부에 의하여 지원되었다. 그리고 과학자는 일반적으로 자신의 연구업적으로 돈을 벌려고 하기보다는 학계에 논문 또는 서적이라는 수단을 통하여 알리고 자랑하여 명예를 얻기 원하는 경향이 있다. 따라서 주로 개인적인 지원이 이루어진 연구업적은 인류가 공유하게 된다.
그러면 최근 국가가 순수한 과학적 지식의 발전을 위하여 연구지원을 하는 것은 무엇을 위한 것일까? 앞서의 이유를 고려한다면 아마도 인류 모두를 위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왜냐하면 그 결과는 독점할 수 없고 인류가 공유하며 그를 이용하여 독점적으로 금전적인 이익을 취하지 않기 때문이다. 우리나라는 2007년까지 기초연구에 대한 투자를 정부 연구개발투자의 25% 수준까지 높이려는 목표를 가지고 있다. 이 수치가 어떠한 의미를 지니는지는 정확하지 않지만 선진국 수준에 접근하는 수치일 것으로 추정된다.
우리나라는 경제규모 면에서 세계 10위권 근처에 도달하였다. 아직 선진국이라고 할 수 없지만 문턱에 도달한 셈이다. 그러나 선진국에 끼는 것은 경제규모를 늘리는 것만은 아닐 수 있다.
현재 선진국이라고 불리는 국가는 경제적으로 대국일 뿐 아니라 여러 면에서 인류 문명에 가장 큰 기여를 하는 나라이다. 당연히 기초연구의 투자 액수도 최고 수준이다. 한때 일본이 선진국 중에서 연구개발투자 중에 기초연구 비율이 제일 낮았기에 기초과학 연구결과에 무임승차한다는 비판을 받았다. 선진국 진입을 위하여 가장 중요한 것은 경제적 측면에서 선진국 수준에 도달하는 것이다. 그러나 졸부들이 상류층에서 무시당하듯이 그 이외에도 여러 면에서 선진국 수준에 도달하여야 하고 순수과학 발전도 그 중의 하나이다. 그리고 또한 중요한 것은 기초연구 투자는 무늬만 기초연구의 틀을 씌우는 투자가 아니라 순수한 과학의 발전, 즉 인류의 과학적 지식 증진을 위한 연구를 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