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칼럼] 과학의 유행과 패션
입력: 2006년 09월 14일 18:18:26
올 가을에는 검은 색의 옷이 유행할 것이라고 한다. 패션은 필자의 전혀 알지 못하는 분야이기는 하지만 이러한 유행의 속성에 대하여 궁금했었다. 왜냐하면 과학에도 유행이 있는 것 같아 보이기 때문이다. 만약 일반 사람 중에서 어떤 한 사람이 어떤 색이 좋다고 생각하여 그 색이 갑자기 주목을 받아 유행한다고 보기는 매우 어렵다. 물론 특별한 경우 매우 인기를 끈 영화 속의 주인공 옷의 색 때문에 유행하는 경우와 같이 명백한 이유가 있는 경우도 있지만, 대부분은 잘 모르는 가운데 갑자기 언론 매체들이나 옷 가게들의 쇼윈도에 비슷한 색의 옷이 자주 등장하면서 대중들이 따라가는 것 같다. 그런데 패션은 일시적으로 유행하는 것 같다. 아마도 올 가을에는 검은 색이 유행하지만 내년 가을에는 틀림없이 다른 색이 유행할 것이다.
과학의 유행은 연구주제의 유행인 것 같다. 요새 가장 유행하는 주제는 나노과학과 생명과학인 것 같다. 상당히 많은 수의 기초 또는 응용 연구가 이 두 주제에 관련되어 있다. 그러면 나노과학의 유행은 어떻게 시작하였을까 한번 뒤돌아보자. 우선 시기적으로는 1990년대 초라고 생각된다. 80년대 초에 주사형터널현미경이라는 원자수준까지 관찰과 조작하는 장비가 개발되고(개발자는 1896년 노벨물리학상 수상함), 80년대 말부터 과학은 나노 크기의 영역에 대한 관심을 가져야 한다는 주장이 학술언론매체를 통하여 발표되면서 조짐을 보였다.
-최근 나노과학 연구주제 각광-
그런데 유행에 불을 지핀 사건은 1990년 후프만과 크래슈머 교수가 플러렌이라고 불리는 탄소원자 60개로 이루어진 분자화합물의 대량 합성 성공이라고 생각된다. 이 분자는 이미 1985년 스몰리, 크로토, 컬 교수에 의하여 기체상에서 미량 합성되었고 구조가 예측되었지만 당시 크게 주목 받지는 못하였다. (세 교수는 이 업적으로 1996년 노벨화학상을 공동 수상함) 플러렌 화합물은 기초연구뿐 아니라 다양한 응용 가능성이 제시되면서 당시 많은 연구 결과를 쏟아내었다. 필자도 플러렌 성질을 연구한 논문을 학술지에 발표하였다. 그러나 처음에 예상하였던 응용성의 실현에 회의적인 시각이 퍼지면서 플러렌 연구는 급격히 줄어들었고 새로운 모색을 하게 되었는데 이때 구세주가 일본에서 나왔다. 당시 NEC 회사연구소 연구원인 이지마 박사가 플러렌의 사촌 정도 되는 분자구조의 탄소나노튜브를 합성분리하는 데 성공하였다. 처음에는 주목을 받지 못하였는데 플러렌의 관심이 급격히 줄어들면서 학계에 크게 관심을 끌게 되었다. 그리고 곧 이어 탄소 이외의 원소들로 구성된 나노 입자들이 다양하게 만들어지고 응용성에 대한 연구가 활발해지면서 나노 과학과 기술은 현재까지 유행하고 있다. 그러나 유행이 시작된 지 거의 15년 이상이 지났고 나노 연구 결과로 상업적 대박을 터뜨린 경우는 거의 없지만 연구는 계속되고 있다.
패션의 유행과 과학의 유행을 비교하면 조금 다른 것 같다. 패션에서 유행은 한철이라는 말이 뜻하듯 한 시즌이 지나면 사라진다. 그러나 과학의 유행은 상당히 오래가는 것 같다. 나노 연구는 10년이 훨씬 지났어도 꾸준히 연구가 진행되고 있다. 이는 과학의 유행은 유행이라는 단어가 단기적이라는 의미를 포함한다면 맞지 않는 것 같다. 오히려 나노 연구와 같이 연구자들의 장기적인 관심은 트렌드라고 하는 것이 더 맞을 것 같다.
-과학의 결실은 장기적 관심서-
생명과학은 90년대 여러 조짐을 보이다 2000년대 들어오면서 인간지놈프로젝트의 완결이 불을 지핀 상태로 트렌드가 지속될 것으로 예상된다. 이렇게 과학은 장기적인 특징을 가지고 있다. 또한 과학적 연구가 산업적으로 응용에는 20년 규칙이라는 것이 있다고 한다. 과학적 연구결과가 산업적으로 성공을 거두는 데 20년이 걸린다는 것이다. 그 만큼 과학은 결실을 위하여 장기적인 관점을 가져야 한다.
패션의 유행은 다시 돌아온다는 특징도 있다고 한다. 이번 가을에 검은 옷을 사서 입고 수년 또는 수십년을 기다리면 다시 입을 날이 혹시 올지도 모른다. 과학도 가끔 그런 일이 벌어진다.
〈전승준/고려대교수·화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