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칼럼] 연구개발 예산 100억 달러의 조건

입력: 2007년 01월 11일 18:05:51

신문에는 제목이 "연구개발, 예산보다 중요한 건......"으로 나감 

<전승준/ 고려대교수·화학〉


2007년 정부 예산이 어렵사리 지난 년 말 국회를 통과하여 과학기술 부문 예산도 확정되었다. 과학기술계의 좋은 소식은 정부예산에서 2006년 대비 증가율이 복지 부문에 이어 두 번째로 높은 증가율을 보이며 9조 8천억원으로 이는 달러 대비 원화가치 상승으로 인하여 100억 달러를 넘게 되었다. 현재 세계에서 연구개발 예산이 100억 달러 이상인 국가는 미국, 일본, 프랑스, 독일, 영국, 중국, 캐나다의 7개국에 불과함으로 우리 정부에서 연구개발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있다는 좋은 증거이다. 또한 미국, 중국과 같은 초대형 국가를 제외하면 정부 연구개발 예산이 100억달러에 도달한 시기가 1인당 국민소득이 2만달러 전후였다는 것은 우리나라의 연구개발 성장과정이 제 코스를 가고 있다고도 판단된다.


그러나 이는 좋은 소식이지만 기뻐할 소식은 아닌 것 같다. 모든 일에서 성공적인 결과를 산출하려면 그를 이루기에 합당한 여러 가지의 자원을 투입해야 한다. 합당한 예산은 한 가지 자원 투입을 의미한다. 그리고 그것이 성공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그러므로 성공의 한 조건을 만족시켰다는 의미로서 좋은 소식이고 성공한 것이 아니므로 기뻐할 소식은 아닌 것이다.


-‘소프트웨어’ 갖추는 게 우선-


그러면 성공을 위하여 충분한 예산이외에 무슨 조건들이 필요할까? 생각할 수 있는 여러 조건들을 크게 물질적인 하드웨어적 조건과 무형의 소프트웨어적 조건으로 나누어 생각해 보기로 하자. 예산은 대표적인 하드웨어적인 조건의 하나라고 생각된다. 연구 수행에 필요한 재료 등을 확보하기 위해서 충분한 예산은 필수적인 조건이다. 그리고 매우 중요한 다른 하드웨어는 인력이다. 모든 일은 사람이 하기에 필요한 만큼의 우수한 연구개발 인력은 필수적인 또 다른 조건이다. 그리고 연구개발 활동에 전념할 수 있는 시설과 환경들도 하드웨어일 것이다.


소프트웨어적인 요소들에는 어떤 것들이 있을까? 컴퓨터에서 소프트웨어는 하드웨어를 잘 작동하게 하는 프로그램들이다. 연구개발에서는 예산과 인력 등의 하드웨어적 요소가 잘 작동하도록 하는 제도, 법령, 양질의 인력을 육성하는 교육시스템, 과학자의 마음가짐 등이 아닐까 생각한다. 이러한 소프트웨어가 잘 갖추어지는 것은 하드웨어를 갖추는 것 보다 더욱 힘들다. 왜냐하면 하드웨어적인 요소들은 외형적으로 보이는 것이기에 선진국의 사례를 보고 연구하여 따라하면 된다. 그러나 소프트웨어를 잘 갖추는 것은 그 나라의 문화, 역사, 그리고 기득권 세력의 저항 등 쉽게 변화시킬 수 없는 요인들이 복잡하게 관여되어 있기 때문에 매우 어려운 일이다.


연구개발에서는 최초, 최고만이 인정을 받기 때문에 철저한 경쟁을 통하여 우수한 결과만이 살아남도록 하는 제도가 필요하기에 평등의 민주주의가 통하지 않는 곳이다. 따라서 평등과 민주주의적 이념을 지향하는 국가에서 연구개발 부문에 승자 위주의 치열한 경쟁을 도입하는데 많은 제약이 있게 된다. 연구개발에 종사하는 학자들은 사회에서 우수한 두뇌의 집단이다. 그런데 그러한 우수한 집단 내에서 경쟁을 통한 줄세우는 제도는 더욱 불만스러운 것일 수 있다. 그러나 그렇게 하지 않으면 세계 속에서 경쟁을 할 수 없다. 연구개발에서 국내 최고는 거의 의미가 없다. 거의 모든 부분에서 세계화가 급속히 진행되고 있지만 연구개발 만큼 세계화가 이루어진 곳은 없을 것 같다. 무한 자유경쟁주의는 연구개발 부문 좋은 소프트웨어 요소들을 갖추는데 필수적인 대원칙이다.


-남 흉내내면 100억달러 날려-


지속적인 경쟁을 위하여 무엇보다도 양질의 우수인력이 계속 공급되고 육성되는 시스템이 필요하다. 새로 진입하는 신진 연구 인력이 빠른 시간 내에 기득권과 연구로서 자유경쟁을 할 수 있는 환경을 마련해 주어야 한다. 100억 달러의 연구개발 예산은 상당히 많은 액수이고 정부와 국민이 국가 발전의 과학기술 기여에 대한 기대를 반영하는 것이다. 그러나 아무리 좋은 하드웨어를 가지고 있다하더라도 남의 흉내나 내면서 적당히 나누어먹기를 하는 시원찮은 소프트웨어로 작동하면 100억 달러가 허공에 날아가고 말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