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칼럼] 뉴턴과 하버드대 박사과정생

〈전승준/ 고려대교수·화학〉


얼마 전 뉴욕타임스에 나온 ‘하버드에 못간 영재(Young, Gifted, and Not Getting into Harvard)’라는 제목의 칼럼이 주목을 받았는데, 이를 우리나라 한 일간지에서도 조그만 기사로 소개하였다. 하버드대 출신의 신문기자가 경험담을 쓴 것으로 수백 개의 댓글이 올라와 미국사회에서도 관심을 끈 칼럼이었던 것 같다. 내용은 하버드대 지원자들에 대하여 이 대학 출신 칼럼 필자가 지난 20여 년간 영재급 지원자 40여명을 면담하였지만 단 한명만 입학허가를 받은 것에 대한 느낌을 쓴 것이다. 미국의 상당수 대학에서 대학 입학 사정을 위하여 성적 이외에도 다양한 자료를 활용한다.


이 칼럼의 한 주제는 1970년 자신이 입학할 당시에 비하여 요즘 지원자들은 대학 입학을 위한 훨씬 우수한 교육을 받고 있다는 것이었다. 다른 하나는 미국사회가 자신이 대학에 입학할 당시는 좋은 대학 입학이 신분을 상승시키는 몇 안되는 방법 중에 하나였지만 지금은 훨씬 다양한 길이 있다는 것이었다.


-갈수록 발전하는 과학기술-


미국에서도 일부에 해당하지만 좋은 대학을 보내기 위한 부모와 학생들의 교육열기는 우리나라의 교육열을 무색하게 할 정도이다. 칼럼에서도 면담한 한 학생은 여름방학에 매일 아침 7시 전에 집에서 나와 2시간 기차를 타고 미국 항공우주국 최첨단 연구인 무중력상태 쥐 실험을 하는 대학에 가서 하루 종일 연구하는 예를 든다. 1970년의 자신은 네안데르탈 지원자라고 하면 최근 하버드대 지원자는 완전히 진화된 호모사피엔스 지원자라고 한다. 수많은 댓글은 일류대학에 가면 최고냐에서부터 돈 많은 부자만이 할 수 있는 대학입학을 위한 교육의 문제점 등 주로 일류대학과 그곳에 입학하기 위한 교육 문제에 대한 언급이었다. 그러나 칼럼 필자는 일류대 입학 열기의 부정적 또는 긍정적인 면에 대한 것보다는 미국이 훨씬 다양화되어 가는 것에 대하여 오히려 긍정적 시각을 언급한 것 같다는 느낌이었다.


그러나 필자가 이 칼럼을 언급한 것은 일류대 문제나 그곳에 입학하기 위한 교육열을 언급하려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네안데르탈 지원자였다는 이 칼럼을 쓴 필자와 지금 호모사피엔스 지원자라고 하는 하버드대 입학생 중에 뉴욕타임스 기자가 나오면 두 사람 중에 누가 더 좋은 글을 쓸 수 있을까에 대한 의문이다. 좋은 대학을 졸업하지 않은 ‘호밀밭의 파수꾼’의 제롬 데이비스 셀린저가 훌륭한 작가인 것처럼 글쓰는 것은 일류대 졸업과 조금 거리가 있다라고 할 수도 있다. 그러면 기초과학 분야에서도 전 세계적으로 가장 좋은 대학 중 하나인 하버드대 물리학 전공 박사과정생을 300년 전의 천재인 뉴턴과 비교하면 어떨까? 뉴턴 이후 300년 동안 물리학은 눈부신 발전을 하였다. 특히 20세기 들어오면서 뉴턴의 역학체계를 포함하는 새로운 양자역학체계가 확립되었고 이러한 과학과 기술의 발전은 현재의 인류 문명 발전의 원동력이다. 인류 문명 발전의 한 축은 틀림없이 발전되는 과학기술 등 지식의 축적이다. 그렇기에 차세대의 인재가 되고자 하는 학생들은 배워야 할 것이 많아지고 점점 더 공부의 양이 많아지는 것같다.


하버드대 물리학 전공 박사과정생이라면 그동안 축적된 현대 물리학의 중요한 이론은 거의 이해하고 있으리라 생각한다. 따라서 그러한 이론에 대하여 뉴턴을 가르칠 수 있을 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그 학생이 뉴턴보다 더 훌륭한 과학자인가라고 물리학자들에게 물어보면 아마도 거의 아니라고 할 가능성이 크다. 축적된 지식을 기억하고 이해한다는 것만으로는 천재 과학자라고 하지 않는다.


-몰랐던 것 알아내야 ‘천재’-


역사적으로 천재적인 과학자는 그 전에 모르고 있었던 것을 처음으로 알아낸 과학자이다. 따라서 하버드대 박사과정생이 뉴턴을 가르칠 수 있다고 한 것은 엄밀한 의미에서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이해한 것을 설명할 뿐이다. 그러면 진정한 가르침을 줄 수 있는 인재는 어떤 사람일까? 답을 찾는 것은 쉽지 않을 것 같지만 혹시 법가 사상을 편 진나라의 중국 통일 기초를 다진 상앙의 상군서의 다음 구절에서 힌트를 얻을 수 있을지 모르겠다. “위대한 군주는 세상 만물의 모든 것을 다 알고 있는 것이 아니라 세상 만물의 핵심을 장악하고 있다. 그래서 그들이 나라를 다스릴 때는 그저 핵심을 분명히 살필 따름이다.”


경향신문 2007/06/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