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칼럼]합성 생명체 만들기
〈전승준/고려대교수·화학〉
미국의 시사주간지 뉴스위크 최근호(6월4일자)에 ‘Life 2.0’이라는 제목의 표지기사가 실렸다. 인공적으로 생명체를 만드는 새로운 연구 분야로서 합성생물학(Synthetic Biology)의 연구 상황을 소개한 기사이다. 자연상태에서 진화한 현존하는 생물체를 life 1.0이라고 하면, 합성생물학에 의하여 새로 창조된 생물체는 life 2.0이라고 하여, 사용자들이 정보를 얻기만 하던 인터넷 Web 1.0에서 콘텐츠를 만들어 인터넷 상에 유통시키는 발전을 Web 2.0이라고 하는 것에 비유한 것 같다.
이 연구는 인간유전체 지도의 완성을 앞당기는 데 결정적인 공헌을 한 생명과학계의 풍운아인 크레이그 벤터 박사가 회사를 자비로 설립하여 참여하고 있고, 빌 게이츠 재단에서도 미국 버클리대학의 한 연구팀에 이 방법에 의한 말라리아 치료제의 대량생산 연구에 약 40억원을 지원하였다. 이 연구는 기존의 유전자 일부를 조작하여 이미 존재하는 생명체로부터 성질이 우수한 농산물이나 가축을 만드는 유전공학과는 차원이 다른 시도이다. 유전체의 암호를 새로 설계하여 의도적으로 인공적 생물체를 만드는 것으로 지구에 존재하는 생명체의 유전적 후손과는 전혀 다른 새로운 생명체를 만들려는 연구이다. 벤터 박사의 연구는 태양으로부터의 에너지를 바이오 연료로 바꿀 수 있는 인공 생명체를 만들어 이산화탄소와 같은 온실가스를 전혀 배출하지 않고 에너지 문제를 해결하려는 획기적인 시도이다.
-유전체 새 암호로 새생명 창조-
생명현상에 대하여 일찍이 ‘밀러의 실험’이라 불리는 생명체를 이루는 가장 기본 물질인 아미노산을 원시 지구 상태의 무기물에서 합성이 가능함을 보였던 실험적 연구나, 생명체는 수많은 생명이 없는 분자들의 모임인데 어떻게 생명현상을 보일 수 있는가에 대한 물리학적 고찰을 한 노벨물리학상 수상자인 슐뢰딩거 박사의 “생명이란 무엇인가?”라는 저서 등에서 과학적으로 규명해 보려는 지속적인 시도가 있었다. 그러나 최근에는 생명현상의 이해를 넘어서는 인공 생명체를 만드는 연구가 진행되고 있는 것이다.
생명체가 무생물과 구분되는 특성은 여러 가지가 있지만 핵심적인 특징은 자기복제가 되어 재생이 되면서 진화가 가능하다는 것이다. 따라서 생명체를 이루는 이러한 특징을 갖는 최소의 단위가 세포이다. 인공생명체 연구는 이러한 특징을 갖는 세포를 인공적으로 합성하는 것으로 크게 두 방향으로 나누어지는 것 같다. 하나는 언급한 기사에서 소개한 연구로서 세포 자체는 그대로 이용하지만 그 안의 유전체에서 가장 필요한 것들을 찾아내어 그들을 조합하여 유전체를 새로 설계하여 새로운 생명체를 만드는 방법이다. 다른 방향은 좀더 도전적이고 어려운 방법으로 완전히 생명이 없는 유기분자 또는 무기분자들을 조합하여 인공 세포(protocell)를 만드는 것이다. 현재까지 알려진 물리학의 이론에 의하면 생명이 없는 분자들은 무작위 운동을 한다고 가정하고 있는데, 과연 무작위 운동들이 모여서 일정한 방향으로 진행하는 현상이라고 할 수 있는 생명 현상이 어떻게 생겨날 수 있을까 하는 근본적인 과학적 의문을 해결하려는 노력이다. 마치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캄캄한 방안의 벽에 바늘이 들어갈 만한 크기의 구멍이 하나 있는데 바늘로 벽을 무작위로 찔러 그 구멍을 찾는 일과도 비슷할 것이다. 생명체는 아직 규명이 안 된 구멍을 보고 쉽게 찾을 수 있도록 빛을 밝히는 메커니즘을 갖고 있는 것이다.
-‘부정’시각 많지만 실현 될수도-
뉴스위크 기사에 소개된 것과 같이 이 분야의 선도적 연구를 수행하고 있는 하버드대 처치(Church) 교수는 “인텔이 전자공학에서 한 것을 생물학 분야에서 시도하는 것”이라고 하면서 유기체를 구성하는 소자를 만들어 그것을 조립하여 원하는 생물학적 특성을 가진 생명체를 만들려고 한다. 그러나 이러한 시도는 과학적인 관점에서도 회의적인 시각을 가진 과학자들이 있고 특히 종교계, 그리고 합성생물학은 유전공학보다 더 위험하다고 주장하는 환경운동가들은 강한 거부감을 보이고 있다. 근대 과학혁명 이후 ‘지동설’과 ‘진화론’을 들고 나온 과학자들로부터 두 번 크게 마음을 상한 교회가 이번에도 또 다시 마음을 상하지 않을지 궁금하다. 혹시 머지않은 미래에 “Church destroys church”(처치 교수가 교회를 무너뜨리다)라는 제목의 기사가 대서특필될지 누가 알겠는가?
경향신문 2007/07/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