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칼럼]과학과 기술의 상생
입력: 2007년 08월 02일 17:49:23
〈전승준/ 고려대교수·화학〉
최근 ‘과학기술’은 마치 한 단어처럼 사용된다. 그런데 이 말은 우리 어법상 오해를 약간 일으킬 수 있다.
하나는 앞의 단어가 뒤의 명사의 형용사처럼 사용돼 앞의 ‘과학’이 기술을 위한 과학이라는 느낌을 줄 수 있고, 다른 하나는 우리말에서는 동등한 명사들을 열거할 때 중요한 단어를 앞에 쓰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과학이 기술보다 더 중요하다는 인상을 줄 수 있다. 그리고 필자가 과학자 또는 기술인들이 모이는 자리에서 이러한 이야기들이 실제로 언급되는 것을 들은 적이 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과학과 기술이 아주 밀접한 관계가 있다는 의미로 사용되는 것만은 분명한 것 같다. 최근 과학적 원리가 응용되어 새로운 기술이 탄생하기도 하고, 훌륭한 기술은 과학의 발전에 기반이 되기도 한다. 그러나 과학과 기술의 역사를 살펴보면 19세기 중반 이전에는 과학과 기술은 별로 관계가 없어 보이고, 과학자와 기술자의 교류도 그리 활발하지 않았던 것 같다.
과학은 전통적으로 자연현상에 대한 원리와 그 지식의 체계화를 추구한 반면, 기술은 인간 생활과 생산활동을 편리하게 하는 데 필요한 실용적 방법이었다. 그리고 훌륭한 기술에 과학적인 지식이 별로 필요하지도 않았다. 예를 들면 김치를 아주 맛있게 담그는 기술을 가진 할머니가 유산균의 성질에 대한 과학적 지식이 없어도 최고의 기술을 발휘하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상호작용 원활해야 문명발전-
아이작 뉴턴 이후 근대과학 혁명의 중심지이면서 18세기 산업혁명이 시작되었던 영국에서, 당시 과학자들과 기술자들은 교류가 거의 없었고 산업혁명 당시 개발된 기술의 과학과의 관련은 미미했다고 알려져 있다. 신분적으로 과학자들은 우대를 받고 기술자들은 열악한 작업 환경에 놓여 있었다.
과학과 기술의 관련이 긴밀해진 것은 19세기 중반 이후 독일에서 유기화학에 대한 과학적 지식을 가진 학자들을 염료, 의약품을 생산하는 화학회사-지금의 Bayer이나 BASF 같은-에서 지원하고 자문을 받으면서 현대적인 과학과 기술의 밀접한 관계가 만들어졌다.
독일의 이러한 전통은 지금까지 이어져 대학의 기초연구가 산업기술로 응용되는 연계가 원활한 제도를 가지고 있고 이는 독일 국력의 기반이 되고 있다. 미국도 20세기에 들어와 과학과 기술의 연계를 가장 잘 활용한 나라로서 양자역학의 물리학 혁명을 반도체 기술로 응용하여 IT혁명의 주역이 되었고 미국을 가장 부강한 나라로 만들었다.
과학과 기술의 연계는 앞으로도 계속 중요할 것 같지만 미래 세계에서는 이것만으로 부족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인류 문명의 발전은 풍요한 삶에 대한 욕구와 이를 충족시키는 제품의 제공이고, 그 제품개발에 과학과 기술이 연계되어 있다.
욕구를 충족하고자 하는 수요자, 제품을 제공하는 생산자, 그리고 좋은 제품 개발을 연구하는 과학자와 기술자가 상호작용을 하고 관련된 자원과 생산 규모가 확대되면서 발전한다.
그러나 이러한 상호작용을 원활하게 하는 것은 쉽지 않기 때문에 어떤 면에서 이러한 상호작용을 최적화한 기업가들이 성공하여 부를 축적하였다.
수요자는 널리 퍼져 있고, 공장은 산업단지에 있고, 기술자는 회사 연구소에 있고, 과학자는 대학이나 연구소에 있기에, 떨어져 있는 이들을 원활하게 연계시키는 것이 기업 경영자의 중요한 역할이다. 그러면 앞으로 이들을 한 곳에 모아놓아 원활한 상호작용을 하는 방법을 찾으면 19세기 후반 과학과 기술 접목에 의한 발전만큼이나 획기적인 발전을 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대학과 연구소, 공장이 같이 섞여 있고 그 안에 소비자가 공존한다.
-생산·소비자와도 긴밀해져야-
만들어진 제품을 즉석에서 사용해보고 보완해야 할 것을 바로 그곳의 과학자나 기술자에게 제안하면 다시 보완된 제품이 즉석에서 만들어진다. 외형상 보기에 대학인지 연구소인지 공장인지 거주지인지 모호해 보이는 그런 곳이다.
윤동주의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 시집에서 정신적 감동을 얻을 수 있는 것처럼, ‘과학과 기술과 생산과 소비’가 모인 물질적 풍요를 얻을 수 있는 곳을 상상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