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칼럼]거대과학의 국가적 의미
입력: 2007년 10월 11일 18:08:19
전승준
고려대 교수·화학
지난 10월4일은 소련(구 러시아)이 최초의 인공위성인 스푸트니크 1호를 성공적으로 발사한 지 50년이 되는 날이었다. 이날 미국 언론들은 이 사건에 대해 재조명하는 기사들을 보도했다. 당시 미국인에게 충격이었던 스푸트니크 사건을 되돌아보면서 과학기술 연구개발 체제를 재정비하고 과학과 우주개발에 대한 국민적 관심을 이끌어 내려는 의미가 있는 듯하다. 일본은 지난달 달탐사선인 ‘가구야’를 성공적으로 발사하여 지구를 2회 선회한 후 10월5일 달 궤도에 성공적으로 진입시켰다고 발표했다. 중국과 인도 역시 야심찬 달 탐사 계획을 예정하고 있다. 우주선 발사 계획은 대표적인 거대과학 사업이다. 거대과학 사업은 다수의 다양한 분야의 우수한 인력이 필요하고 국가적으로 대대적인 지원이 필요한 사업이다. 그리고 이러한 사업은 뚜렷한 목표의 결과물이 있고 그것은 수행하는 국가내에서뿐 아니라 인류 문명사에 남을 만한 업적이 될 것이다.
-자긍심 높이는 수천억대 사업-
20세기 거대과학의 시작은 미국의 원자폭탄 개발 계획이었던 맨해튼 프로젝트였다. 미국이 진주만 공격을 받은 직후에 시작한 이 계획에는 당시 미국에 있던 다수의 노벨상 수상자를 포함하여 최고의 과학자들이 관여하였다. 이 계획의 책임자는 군인인 그로브즈 장군이었으며 여러 대학, 연구소, 산업체, 군대 등이 총동원되었다. 맨해튼 프로젝트 하면 후반부에 물리학자인 오펜하이머가 책임자가 되어 미국 남서부 로스 알라모스라는 곳에 약 3000명의 과학기술자를 모아 원자폭탄의 설계와 조립한 과정이 주로 알려져 있지만 성공의 핵심은 핵폭탄의 원료인 우라늄과 플루토늄을 만드는 것이었다. 어떤 제조 방법이 성공할지 모르기 때문에 미국의 여러 대학, 회사, 연구소 등에서 여러 제조 방법의 연구가 동시에 시도되었다. 그 중 가장 거대한 시도는 뉴딜 정책에 의해 세워진 거대한 전력시설로부터 전기공급을 받을 수 있는 이점을 활용하여 테네시주 오크리지에 듀퐁, 코닥, 유니언 카바이드 회사 등이 참여하여 건설한 우라늄 농축시설이다. 농가 몇이 있던 곳이 1년 만에 뉴욕시 전력소모량을 소비하고 미국에서 6번째로 큰 공공교통망을 가진 도시로 커졌다. 성공 여부가 불투명하였지만 참여 과학기술자들은 창조적인 방법으로 여러 난관을 극복하였다. 결국 원자탄은 전쟁의 말기에 완성되었고 불행하게도 사용되었다.
이 계획은 결과물이 수많은 목숨을 앗아갔다는 것을 제외하고 완벽한 거대과학의 금자탑이다. 최고의 과학자들이 모여 여러 난관을 창조적으로 극복하여 이전에 존재하지 않은 최고의 결과물을 얻었기에 자국민의 자부심을 높여주었을 뿐 아니라 희생될 수 있었던 많은 자국민의 생명을 구했다. 그리고 더욱 중요한 것은 거대시설 건설 경험을 쌓고 산업체들을 육성하는 데 크게 기여하였고 미국이 완벽한 과학기술 최강국이 되는 계기가 되었다는 점이다. 그러나 미국도 거대과학에서 실패를 한 경험이 있다. 1990년대 초 통일장이론을 검증하기 위한 입자가속기인 초전도 초충돌기(SSC) 건설계획은 당시 2조원 이상을 투자한 후 중단되었다. 일본도 몇 년 전 중국이 유인 우주선 발사 성공으로 자긍심을 드높이고 있을 당시 대형 로켓이 발사 직후 폭발하는 실패를 맛보았다.
연구개발은 성공할 수도, 실패할 수도 있다. 처음 시도하는 연구는 성공할 확률이 더욱 낮다. 거대과학도 마찬가지다. 그런데 거대과학은 최소한 수천억원 이상의 엄청난 재원과 많은 인력이 투자되는 연구이다. 그래서 실패할까 하는 두려움에 이미 선진국이 한 것을 비싼 기술료를 지불하고 그대로 도입하여 해볼 수도 있다. 그러나 그것은 안하는 것만 못할 수 있다. 미·소 경쟁의 냉전시대 이후 거대과학은 국가 간 경쟁이 아니라 협력을 하고 있다. 따라서 좀더 빨리 하고 늦는 것은 거의 의미가 없다. 경쟁이 심하지 않기에 오직 창조적인 결과물만이 의미가 있다.
-빠른 성공보다 장기적 성과를-
거대과학은 다양한 과학과 기술이 복합적으로 사용되기 때문에 다양한 분야의 최고 과학자들을 양성하고 활용하며, 그것을 만드는 과정에서 축적되는 과학적·기술적 지식과 구축된 연구개발 또는 산업 인프라가 정말 중요한 결과이다. 최고의 과학자가 배출되고 축적된 지식이 서서히 전파되고 인프라가 사용되어 장기적으로 신산업을 창출하는 데 기여할 수 있다. 우리나라도 최근 인공위성 발사사업이나 핵융합사업과 같은 수천억원이 투자되는 거대과학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이른 시간 내에 목표 달성에만 집중하여 거대과학의 국가적 의미를 잊고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은 기우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