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칼럼]시간 측정의 역사
입력: 2007년 12월 06일 17:58:14
나이를 먹어가면서 12월에 대한 느낌이 달라지는 것 같다. 젊었을 때는 다음해를 준비하는 달이었던 것 같은데, 나이가 들어가면서 12월은 다음해를 준비하기보다는 점점 더 지난 1년을 되돌아보는 달이 되었다. 지난 일을 생각하다 보면 후회스러운 일도 많고 시간을 되돌려 과거로 돌아가 더 잘 하고프다는 생각을 하기도 한다. 과학적으로 시간의 경과는 큰 미스터리다. 대칭성이 없다는 것이다. 공간 속에서 물체의 움직임은 어떤 방향으로 움직이면 그와 정반대 방향으로도 움직일 수 있는데 시간의 변화는 한 쪽 방향으로만 진행하지 반대로 갈 수 없다는 것이다. 즉, 시간은 미래로 흘러가고 과거로 되돌릴 수 없다는 것이다. 이 현상은 물리학의 매우 중요한 연구주제로서 최근에도 많은 학자들이 연구하고 있다.
시간이 흘러간다는 개념이 고안된 이후 시간의 길이를 측정하는 것은 중요한 일이었다. 과학적으로 경과 시간의 측정은 시간적으로 반복되는 현상의 시차를 이용한다. 1년은 태양을 중심으로 지구가 공전하면서 계절이 바뀌어 똑같은 상태로 다시 돌아오는 데 걸리는 시간이다. 다른 경우, 진자의 반복운동 사이의 시차로 시간의 경과를 나타낼 수도 있다.
-달력에 담긴 과학·종교·문화-
역사적으로 시간의 흐름을 정확하게 측정하고 표시하는 방법은 종교와 관련되어 매우 중요한 일이었다. 종교의 의식을 언제 시행해야 하는 것과 관계가 되기 때문에 기독교나 이슬람교에서 시간을 정하는 역법을 열심히 연구하였다. 현재 사용되고 있는 달력 체계도 그레고리력이라고 불리는 것으로 1532년 교황 그레고리우스가 제정한 것이다. 그 이전까지는 로마시대 기원전 46년에 카이사르가 제정한 율리우스력이 사용되었는데 이 체제에서는 1년을 365일로 하고 4년마다 윤년을 두기 때문에 1년이 365.25일이다. 그러나 지구 공전운동에 의한 정확한 1년은 365.2422일이기 때문에 율리우스력은 매년 평균적으로 0.0078일씩 오차가 생긴다. 부활절은 춘분이 지나고 첫 보름달이 뜬 후, 첫 일요일로 정하게 되어 있는데 율리우스력이 1500년 이상 사용되면서 오차가 누적되어 당시 부활절의 날짜가 10일 정도나 빨라지는 문제가 생겼다. 이를 보정하기 위하여 4년마다 윤년을 두지만 400의 배수가 되는 해는 평년으로 하는 그레고리력이 탄생하였다. 그러나 그레고리력도 매년 평균적으로 26초 정도 빨라지는 오차가 생기기 때문에 앞으로 약 3000년 후 어떤 해는 윤년을 평년으로 바꾸어야 할 것이다.
시간의 표시법은 과학적인 면도 있지만 오랜 역사를 통하여 확립되었기 때문에 일종의 문화유산이기도 하다. 필자는 영어를 처음 배울 때 영어의 각 달의 이름과 철자를 외우는 게 고역이었던 기억이 난다. 우리말은 달을 그냥 숫자 순서로 1월, 2월 하기 때문에 달의 이름을 외울 필요가 없다. 그러나 영어에서는 1월을 first month라고 하지 않고 January라고 하고 달마다 따로 이름이 있다. 그것은 율리우스력이 만들어질 때 당시 라틴문화의 의미를 가질 만한 것을 달의 이름으로 사용하였기 때문에 아직 남아있는 서양 문화의 유산이다. 숫자의 과학적 체계가 좋지만 서양 사람도 이 경우는 문화유산의 자부심이 사람들의 혼동을 참도록 하는 모양이다. 하긴 2월이 28일 또는 29일로 된 유래는 더욱 우스꽝스럽다. 처음에는 홀수달은 31일, 짝수달은 30일로 정하였는데 로마의 아우구스트 황제가 자신의 생일이 있는 8월(황제의 이름을 따서 8월은 August임)을 31일로 하고 첫 번째 짧은 달을 더 줄여 28일 또는 29일로 만들고, 8월 이후부터 홀짝체제를 바꾸어 달의 일수에 대한 체계를 혼란스럽게 만든 것이다.
-100억분의 1초 경쟁하는 시대-
과학기술이 발달하면서 매우 짧은 시간을 정확하게 측정하는 것이 더욱 중요하게 되었다. 가장 정밀한 시계는 세슘원자시계로 100억분의 1초 정도의 정밀도를 가지고 있다. 정보통신 분야에서 정보를 나타내는 부호를 얼마나 짧은 시간에 구분할 수 있는지가 전달하는 단위시간당 정보의 양을 결정하기 때문에 시간을 정밀하게 측정하는 시계를 개발하려는 경쟁이 더욱 치열해졌다. 대항해 시대에 유럽 국가들이 세계 각지에 식민지를 만들 수 있었던 것도 해상의 위치를 정확하게 알 수 있게 하는 해상시계 덕분이었듯, 미래시대의 지배를 위하여 더욱 정확한 시계를 갖는 게 중요할 수도 있다.
〈전승준 고려대 교수·화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