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칼럼]오스카 피터슨을 추모하며

입력: 2008년 01월 03일 18:15:48

오스카 피터슨이 지난달 23일 타계하였다는 일간지 부고란의 자그마한 기사를 보았다. 독자들 중에 과학자나 과학에 관심이 있는 분들은 오스카 피터슨이라는 과학자가 있나하고 의아해 할 것 같다. 오스카 피터슨은 캐나다 출신의 흑인 재즈 피아노 연주가이다. 아마도 재즈를 좋아하시는 분은 알 만한 거장이다.


필자는 재즈 마니아나 전문가가 아니기 때문에 재즈에 대하여 잘 모른다. 단지 재즈 음악을 자주 듣는 편이다. 교수실에서 혼자 일을 하는 경우가 많은데 항상 재즈 음악을 작게 틀어 놓고 일을 한다. 그래서 듣는 음악의 제목이 무엇인지, 연주자가 누구인지에 별로 관심도 없고 그저 들으면 좋은 음악을 듣는다. 그런데 오스카 피터슨은 필자가 누군지 아는 몇 안되는 연주자 중의 한 사람이다. 왜냐하면 그의 음악을 들으면 금방 그가 연주하고 있는 것을 알 수 있기 때문이다. 그만의 특유의 리드미컬한 연주는 다른 피아노 연주와 뚜렷이 구별된다. 특히 재즈의 스윙감을 돋우기 때문에 그의 연주를 들으면 나도 모르게 어깨를 들썩이게 된다. 재즈 음악은 같은 곡이라도 연주자에 따라 매우 다르게 연주된다.


-새 재즈연주법 창안한 거장-


다른 예술에서도 마찬가지지만 재즈 연주자는 자신만의 특유한 연주법이 거장의 조건이다. 루이 암스트롱, 찰리 파커, 마일스 데이비스 등은 새로운 연주법을 개척한 재즈의 거장들이다. 수많은 재즈 연주자가 그들의 연주를 흉내내었다. 흉내내던 연주자 중에 드물게 흉내내던 방식을 버리고 새로운 연주기법을 창안하여 다음 세대 거장 반열에 오르기도 한다. 과학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한다. 우리가 아는 위대한 과학자는 자신의 분야를 개척한 과학자이다. 노벨상을 받은 과학자들은 거의 전부 자신의 연구 분야를 새로 만든 거장이다. 별로 주목하지 않은-그것이 당시에 관심을 끌지 못할 정도로 별 볼일 없는 분야였건 너무 풀기가 어려운 문제라고 생각하여 관심을 덜 가졌건-문제를 파고들어 해결을 위한 실마리를 푼 사람이다. 그 과정에 창조적인 생각이 들어가 연구 분야가 개척되면 수많은 평범한 과학자들이 뛰어들어 열심히 그 분야를 연구하여 처음 생각한 과학자를 더욱 유명하게 만들어준다. 이런 면에서 자그마한 분야라도 새로 연 과학자가 거의 없는 우리나라는 아마도 대부분의 과학자가 외국의 거장을 더욱 유명하게 만드는 데 지대한 공헌을 하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수준을 실망할 필요는 없다. 대부분의 재즈 거장들도 앞선 거장을 흉내내다가 어느 순간에 새로운 자기만의 연주 방법을 개척한 것과 같이 과학자들도 처음에는 거장이 개척한 분야를 연구하면서 배우고 어느 순간에 새로운 영감으로 자기 분야를 개척하는 과정을 거친다고 생각한다.


오스카 피터슨의 죽음을 접하면서 이런 생각도 해본다. 그는 일생을 얼마나 행복하게 살았을까? 오스카 피터슨은 대부분의 흑인 재즈 연주자와 마찬가지로 가난한 집안에 태어났으나 일찍부터 음악을 접할 기회가 있었기에 음악적 재능을 발휘할 수 있었다. 최근 재즈 연주가 중에 존경도 받고 풍요로운 생활을 하고 있는 연주자도 있지만 예전에 대부분의 연주자는 어렵게 살았다. 그러나 음악을 하는 사람들은 행복한 삶을 살고 있을 것 같은 생각이 든다.


-돈보다 흥 좇아 과학도에 귀감-


필자는 제일 좋은 직업이 그 일을 즐기면서 생계를 유지할 수 있을 정도의 수입을 가질 수 있는 직업이라고 생각한다. 예술가나 과학자 중에 애당초 부자가 되고자 직업을 택한 사람은 없을 것으로 본다. 부자가 되려면 돈을 훨씬 더 잘 벌 수 있는 직업을 택해야 할 것이다. 최근 국내 과학계에서 과학자들은 대우를 잘 받지 못하고 있으니 개선해야 한다는 주장이 있다. 물론 과학자들에게 안정적인 연구를 할 수 있는 환경과 대우가 필수적이다. 그러나 과학자는 돈을 잘 버는 직업이 아니라 정말 소질있고 좋아하는 사람이 자기가 좋아서 하면서 생활 수준을 어느 정도 유지하는 그러한 직업으로 자리를 잡았으면 한다. 좋은 과학적 발견 또는 발명을 하여 인류를 위하여 기여하면서 자기 좋은 일을 하는 것이다. 오스카 피터슨이 필자의 흥을 돋우는 일은 정말로 자기가 하는 일에 기여하는 것이다. 오스카 피터슨을 추모한다.


〈전승준 / 고려대교수·화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