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칼럼]대학 경쟁력의 조건들 

입력: 2008년 03월 06일 17:57:20

최근 대학의 교수 재임용 탈락에 대한 신문 보도가 사회의 주목을 받고 있는 것 같다. 그동안 교수는 우리나라 유교 전통사회에서 존경과 대우를 받지만 경쟁의 무풍지대였고 그 때문에 세계적으로 경쟁력 있는 대학이 우리나라에 별로 없다는 사회적 인식이 있는 것 같다. 그래서 언론들에서 경쟁적 풍토가 대학사회에 확산되기를 기대하는 듯하다. 교수인 필자도 공감한다.


연구환경부터 충분한 제공을


대학 경쟁력을 생각할 때 우리가 좀 더 생각해야 할 문제가 있는 것 같다. 엄격한 심사기준에 의하여 능력을 보이지 못한 대학 교수를 재임용에서 탈락시키는 것은 당연하지만 이것은 결과만을 보는 것이다. 미국 대학 교수의 경쟁력은 단지 엄격한 정년보장심사제도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다른 중요한 것은, 특히 연구중심대학이라고 할 수 있는 경쟁력 있는 대학에서 교수를 채용할 때 교수들에게 시드머니(seed money·처음 연구를 시작할 때 연구시설 마련과 연구보조인력을 지원하는 자금)를 제공하는 것이다. 그리고 좋은 대학일수록 이러한 시드머니를 많이 내걸고 우수한 교수를 유치하기 위하여 경쟁한다.


따라서 대학 교수들은 채용이 되자마자 연구할 수 있는 환경을 갖출 수 있고, 2~3년 내에 좋은 연구결과를 낼 수 있다. 대부분의 대학이 교수로 임용된 지 5년 전후해서 정년보장심사를 하게 되는데 이때까지 좋은 연구결과를 내지 못하면 심사에서 탈락하게 된다. 따라서 일단 연구환경을 만들어 기회를 준 후, 얼마나 잘했는가를 또한 엄격히 심사하는 매우 합리적인 제도라고 생각한다.


그러면 우리나라 대학의 경우를 생각해 보자. 필자가 대학에 교수로 임용될 당시인 1980년대 후반에 신임교수로 임용될 때 시드머니라고 생각할 수도 있는 지원을 받을 수 있는 대학은 아마도 KAIST나 포항공대 정도였던 것 같다. 그래서 지금 KAIST나 포항공대가 그나마 세계적 수준의 대학이라고 명함을 내밀 정도가 된 게 아닐까 생각한다. 그리고 그 후에도 시드머니를 제공하는 대학은 많지 않았던 것 같다.


국가적 연구 나라서 지원해야


특히 사립대학의 경우 신임교수는 시드머니는 고사하고 처음에 연구를 위한 실험실 공간도 제대로 갖추지 못하고 몇 년을 보내기도 한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나라에서 5년 이내에 어느 정도 좋은 결과를 내는 교수는 정말 대단한 능력을 갖추었다고 할 수 있다. 그것은 연구에 대한 능력뿐 아니라 연구환경을 만들기 위하여, 그리고 연구비를 지원받기 위하여 정치력도 발휘해야 할 것 같다. 아마도 정부 연구비를 관장하는 공무원이나 연구지원기관 관련 인사들을 열심히 찾아다니는 정치교수가 돼야 하는 경우도 간혹 있었을 것 같다.


최근 우리나라에서 많은 대학들이 대학의 명성을 높이기 위하여 연구환경을 만드는 데 투자를 시작하는 것 같다.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 보면 정말 이상한 일도 일어나는 것 같다. 대부분의 연구를 위하여 지원하는 자금에는 연구에 사용되는 직접 경비만을 지원하고, 연구관리를 하기 위하여 사용되는 경비를 간접비라는 명목으로 일부 지원하지만 연구시설을 운영하는 경비는 거의 지원하지 않는다.


우리나라 사립대학은 대학재정의 상당 부분을 학생들의 등록금으로 충당하고 있다. 그런데 사립대학에서 연구를 위한 환경을 만드는데, 예를 들어 연구공간 연구에 사용되는 전기료 등은 대학에서 지불한다. 그러면 사립대학의 교수들이 연구를 하기 위하여 사용하는 전기료(사실 엄청난 전기를 사용하는 연구장비도 있다)는 학생의 등록금으로 지불하는 것이다. 즉 가난한 학생이 국가 연구를 하는 데 돈을 내는 것이다.


따라서 어떤 한 면만을 보고 외국에서 그렇게 하니까 우리도 그렇게 해야 한다고만 생각하는 것은 틀림없이 문제가 생긴다. 우리나라의 대학에서도 연구환경을 만들어주고 경쟁을 시켜 못하는 교수를 퇴출시키는 것이 합리적이다. 맨땅에 헤딩해서 머리가 안 깨지는 교수들에게 정년보장을 주는 대학을 가진 사회는 앞날이 없다고 생각한다.


〈 전승준/ 고려대교수·화학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