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이란 언어


전승준 (고려대 화학과)


신정부에서 영어 공교육 강화가 중요한 교육정책의 하나로 채택되면서 최근 영어 교육은 더욱 관심을 끌고 있다.  언어를 배우는 목적은 의사소통에 있다. 소리나 문자를 통하여 시공간 상의 의사소통은 인류가 현재의 문명을 발전시킬 수 있었던 주요한 원동력이었다.  그런데 과학도 일종의 언어라고 생각할 수 있다. 일반 사람이 과학자들 사이의 학문적인 토론을 들으면 무슨 이야기를 하는 지 전혀 이해를 못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마치 우리가 모르는 외국어로 이야기하는 대화를 이해하지 못하는 것과 유사하다.  그리고 과학자들 사이에서도 학문 분야가 다르면 학문적 의사소통이 무척 힘들다.

그러나 과학자들도 일반인이 사용하는 언어를 사용하여 소통한다.  그렇지만 과학적으로 사용하는 단어는 일반적인 의미보다 단어를 더 엄밀하게 정의하여 사용한다.  예를 들면, "일"이라는 단어는 일반적으로 사용되는 단어이다. 국어사전을 찾아보면 '어떠한 가치의 창조를 위하여 몸과 마음을 쓰는 활동이나 작업'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그러나 과학에서는, 특히 물리학에서 일은 '물체에 힘을 가해 일정한 거리를 움직이는 경우, 움직이는 방향의 힘(실제로는 반작용 힘) 성분과 움직인 거리의 곱'으로 정의한다.  만약 1톤짜리 바위가 있는데 어떤 사람이 그것을 밀어 움직이려고 한 시간 동안 작업을 했는데 전혀 움직이지 않았다고 했을 때 그 사람은 온몸에 땀이 흐르고 일반적으로 엄청나게 일을 많이 했다고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물리학적으로 판단하면 바위가 전혀 움직이지 않았기 때문에 움직인 거리가 0이고 따라서 한 시간 동안 한 일은 0이 된다.  많은 경우에는 과학의 용어가 일반적인 개념과 크게 다르지 않지만, 어떤 용어는 개념 차이 때문에 학생들이 과학을 배울 때 일상적인 용어로부터 가지고 있는 두리뭉실한 개념으로 과학적 사실을 이해하고 설명하려고 할 경우 어려움을 겪게 된다.  또한 처음에는 과학적으로 만들어진 단어가 일반인들에게 사용되면서 더 포괄적인 의미를 가지기도 한다.  '엔트로피'라는 단어를 예로 들 수 있는데, 당초 과학적으로 엄밀하게 정의가 되었지만 일반적으로 무질서한 상황을 의미하는 좀 더 포괄적인 의미의 단어로 사용하고 있다.

훌륭한 문학가가 되기 위하여 사용하는 언어에 대하여 이해하고 문장을 자유롭게 구사할 수 있어야 하는 것과 같이, 훌륭한 과학자가 되기 위하여 과학에서 사용하는 용어의 엄밀한 의미를 이해하고 표현 방법을 배워야한다.  거기에 더하여 일상용어로 표현하기 힘든 것을 수학적 표현을 사용하면 과학자들 사이에 소통이 훨씬 원활해지기 때문에 수학에 대한 이해가 과학자들에게는 필수적이다.  따라서 배우는 과정에 있는 과학도는 현재까지 축적된 과학적 지식을 과학자들과 소통하기 위한 언어로서 배우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과학의 언어를 충분히 이해하게 되면 자신의 연구 결과를 과학적 언어로 발표하고 다른 과학자들로부터 검증을 받아 훌륭한 과학적 업적으로 인정을 받게 된다.  비록 자연적 현상을 이해했다고 하더라도 과학의 언어로 표현하지 못하면 학계에서 거의 인정받을 수 없다.  때로는 자연 현상의 전혀 새로운 설명을 위하여 단어를 새로 정의하고 표현 방법을 고안하여 새로운 과학적 소통 방법을 창조할 때도 있는데, 이것이 학계에 인정을 받게 되면 위대한 과학이론이 되기도 한다.  

과학이 특수한 언어이기 때문에 과학 현상에 대한 대중과의 소통은 때에 따라 쉽지 않다.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같은 단어라도 일반적 의미와 과학적 의미가 상당히 다른 경우가 있기 때문에 일반인들이 잘못 이해하는 경우가 흔치 않게 일어난다.  따라서 외국어을 통역하는 통역사가 있는 것과 같이 과학을 대중에게 이해시키는 통역사가 필요하다.  바로 이러한 일을 하는 사람들이 대중을 위한 과학 저술가나 과학 담당 기자들이라고 할 수 있다.  홀륭한 번역가가 꼭 훌륭한 언어학자나 문학가일 필요가 없듯이 과학 번역가가 훌륭한 과학자일 필요는 없다.  최근 광우병 쇠고기 괴담과 같이 과학적 근거가 왜곡되어 대중들에게 전해지는 것을 막기 위하여 훌륭한 과학 번역가가 더욱 필요할 것 같다.


경향신문 2008/05/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