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칼럼]만학의 조교수들

입력: 2008년 07월 24일 18:07:11

필자는 고려대학교 조교수로 임명되었을 때 나이가 만 34세였다. 당시 동기들 중에 교수가 된 사람이 별로 많지 않았던 것으로 기억되기에 평균보다 약간 이른 나이에 조교수가 된 것 같다. 필자는 대학을 졸업하고 군 복무와 유학 준비 기간이 3년반 정도 걸렸고 미국에 유학하여 석박사 학위를 취득하는 데 5년반 정도와 박사 후 연구원 2년을 보내고 나서 귀국하여 고려대에 부임하였기에 대학 졸업 후 11년 만에 조교수가 된 셈이다.


당시에 이공계의 경우 군복무가 면제된 극히 일부가 30대 초반에 조교수가 되었지만 일반적으로 30대 중후반에 조교수가 되었던 것 같다. 그러면 20년 가까이 지난 지금은 어떨까? 지난 4월에 교수신문이 보도한 전국 124개 대학 2008년도 상반기에 임용된 신임교수 1846명을 조사·분석한 결과를 보면 평균연령은 39.6세였다. 학문분야별로 차이가 있었는데 인문사회계가 40세를 약간 상회하고 이공계는 40세를 약간 밑돌았다. 조사에는 정규직으로 이미 근무하던 학교나 연구소로부터 이직한 12.8%를 포함하는데 이를 고려하더라도 신임 조교수가 되는 나이가 30대 후반이다. 필자가 근무하는 고려대의 경우도 최근 조교수로 임용되는 신임교수가 역시 30대 중후반으로 20년 전과 별로 다르지 않은 것 같다.


美·日보다 5-10년 늦은 30대 후반

그러면 외국의 경우는 어떤가? 미국의 경우 주요 대학의 웹사이트를 통하여 살펴보면 학문 분야에 따라 차이가 있지만 대체적으로 30세 전후인 것 같다. 일본의 경우 조교수에 해당하는 조수가 되는 연령도 역시 비슷한 것 같다. 따라서 우리와 비교하면 거의 5~10년 정도 빠르게 조교수가 된다. 이공계의 경우 성공한 학자들은 젊은 나이에 연구를 열심히 하여 좋은 연구업적을 쌓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고 알려져 있다.


하리에트 주커만이라는 사회학자가 미국의 과학부문 노벨상 수상자들에 대하여 조사·분석한 결과를 보면 평균적으로 20대 중후반에 논문을 처음 발표하기 시작하고 30대 중후반에 정교수로 승진하며 노벨상을 수상하게 한 연구를 30대 후반에 수행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노벨상을 수상하게 한 연구를 수행하고 약 15년 정도 지난 50대 중반에 노벨상을 수상하게 된다. 물론 노벨상 수상자는 엘리트 중의 엘리트이기에 미국의 평균 과학자들보다 조금 빠르게 경로를 따라간다는 것을 감안해야 할 것이다. 미국의 연구중심대학에서는 조교수가 되면 연구를 수행하기 위한 장비 등 기본 연구환경을 갖추는 데 필요한 자금을 대학에서 시드머니(ssed money)로 제공하여 조교수로 임용된 후 바로 연구를 수행할 수 있도록 배려한다.


우리나라의 경우는 30대 중후반에 조교수가 된다하더라도 극히 일부대학에서만 미국과 유사한 시드머니를 제공하고 대부분은 경쟁적 연구지원사업에 지원하여 선정되는 소수의 조교수만이 처음 연구환경을 만들기에도 상당히 부족한 연구 자금을 받는다. 그리고 이렇게 선택된 일부 조교수들 중에 열심히 노력하여 40대 중후반이 되어야 어느 정도 독립적으로 연구할 수 있는 환경을 갖춘 과학자가 된다. 과연 이러한 상황에서 우리나라도 노벨상을 바랄 수 있을 것인가?


연구 수행 지연 국가경쟁력 손실

우리나라에서 조교수로 임용되는 연령이 높은 주요 이유는 두 가지가 있는 것 같다. 하나는 의무적 군복무이고 다른 하나는 이공계 신임교수 중 다수가 외국에 유학하여 석·박사 과정을 한다는 것이다. 군복무 기간이 최근 2년 정도로 단축되었지만 군복무 전후 준비 기간을 고려하면 3~4년의 공부 중단 기간이 있게 된다. 그리고 외국 유학을 위하여 최소한 2년 이상 준비하는 것 같다. 두 가지 이유 모두 우리나라의 특수 상황 때문에 해결은 쉽지 않을 것 같다.


그러나 과학기술 경쟁력은 국가 경쟁력과 직결된다고 한다. 따라서 국가 경쟁력을 획기적으로 높이기 위하여 이 문제를 해결하는 방안을 심각하게 생각해야 한다. 단번에 해소하는 방법은 이공계의 경우 국내에서 석·박사 과정을 군복무로 대체해 주는 것이다. 군복무 자원의 부족 문제나 형평성 문제로 이러한 제안은 꺼내기조차 쉽지 않지만 국가의 미래를 위하여 심각하게 고려할 때가 아닌가 생각한다.


<전승준|고려대교수화학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