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칼럼]‘신의 입자’를 찾아서

입력: 2008년 09월 18일 18:13:45

지난 10일 스위스와 프랑스의 접경에 위치한 유럽원자핵연구소(CERN)에서는 ‘거대강입자가속기’(LHC)가 14년 간의 공사를 끝내고 가동하기 시작하였다. 이 실험장치는 우주의 근본 물질과 상호작용을 밝히기 위한 것으로, 과학계에서는 ‘빅뱅’이라 불리는 우주 탄생에 대한 의문을 풀어줄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우리들도 자신이 어떻게 태어났는가 하는 데에 의문이 있는 것처럼 과학자는 물론 많은 사람들이 우리가 존재하는 우주가 어떻게 태어났는가에 의문을 가지고 있다. 이를 알아내기 위한 노력은 근대 과학이 발전하기 이전에는 종교나 철학의 소관이었지만, 20세기에 들어서면서 상대성이론과 양자이론이 확립된 이후 본격적으로 과학적인 탐구가 이루어졌다. 이 실험장치의 완성은 우주 탄생의 의문을 풀어가는 과정에서 한 단계 도약의 장이라고 할 수 있다. LHC는 지하 100m에 둘레가 27㎞의 원형에 가까운 약 3m 직경의 굴로서 그 안에 거의 빛의 속도에 가깝게 움직이는 두개의 양성자(원자핵의 구성요소) 빔을 충돌시키는 장치이다. 인류가 만들어낸 가장 큰 에너지의 양성자 충돌에 의한 파편은 우주를 이루는 기본 입자들을 수없이 만들어내고 이들을 분석하여 우주가 탄생할 당시의 상황을 예견하는 가설이 맞는가를 알아볼 것이다.


- 전세계 과학자가 모인 CERN -


이번 실험에서 무엇보다도 가장 큰 관심사는 ‘신의 입자’로 불리는 힉스(Higgs) 입자를 발견하는 것이다. 모든 물질의 기본입자 구성 이론인 ‘표준모형’에서 예견하는 소립자들 중에 유일하게 관찰하지 못한, 매우 중요한 힉스입자의 존재 여부를 밝히는 것이 이번 실험의 가장 중요한 목적이다. 이 실험은 수십 년 동안 과학계를 지배하였던 이론을 확인하는 것으로 유럽은 물론 전 세계적으로 다수 국가가 참여하여 10조원 정도의 연구비를 투입하고 있으며 수 천 명의 학자들이 연구에 참여하고 있다. 수십 명의 우리나라 연구자들도 역시 참여하고 있다. CERN은 이렇게 과학적으로 중요한 실험이 이루어지는 장소이지만, 그 이상으로 다음 두 가지 면에서 인류 문명 발전에 큰 의미를 주고 있는 곳이다.


하나는 항상 전 세계 각국에서 온 수백 명의 과학자가 CERN의 연구실, 사무실은 물론 휴게실이나 복도, 그리고 식당에서 생각과 아이디어를 교환하며 실험을 성공시키기 위하여 열심히 노력하는 것이다. 전 세계 과학자들의 공통언어인 과학언어로 서로 소통하며 한 가지 위대한 과학의 목적을 위하여 노력하는 곳이다. 이곳 식당에서는 식사를 한 쟁반에 실험에 관한 아이디어를 그린 그림이나 공식을 쓴 냅킨이 자주 보인다. 즉 전 세계에서 모여든 최고 학자들이 언제 어디서나 인류의 지식을 증진시키기 위하여 노력하며 즐기는 곳이다.


다른 하나는 전 세계 평범한 사람들에게도 지대한 영향을 미친 20세기 후반의 최대 발명품의 하나인 월드와이드웹(WWW)을 창출한 곳이기도 하다. 인터넷 연결망은 1969년 미국 국방성에서 구축하기 시작하여 1980년대에 대학 등 많은 연구기관들 사이에 정보를 주고받는 수단으로 발전하였지만 컴퓨터에 대한 전문적 지식이 부족한 일반인들이 사용하기에는 쉽지 않았다. 그런데 1980년대 말 CERN에서 일하던 팀 버너스리 박사가 연구소에서 만들어지는 많은 과학 데이터를 학자들 사이에 쉽게 공유하는 수단으로 하이퍼텍스트인 HTML에 기반한 웹을 고안하였다.


- 연구·토론의 요람 부러움 절로 -


그리고 현재 우리가 사용하는 웹브라우저인 익스플로러의 원조 하이퍼텍스트 브라우저와 편집기를 고안하여 일반인들도 쉽게 인터넷을 사용할 수 있는 길을 열었다. 이 발명은 90년대 IT 산업의 붐을 일으키는 데 큰 기여를 하였고, 일반 사람들도 전 세계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들을 즉시 알 수 있는 시공간상 정보전달의 혁명적인 변화를 가져왔다. 따라서 우리가 우선 해야 할 것은 최첨단 연구장치를 가지는 것 이상으로 최고의 학자들이 모여서 마음놓고 연구하고 토론하는 장소를 많이 만드는 것이고, 아마도 그러한 곳에서 산업발전과 국민 복지에 기여하는 획기적인 발명을 기대할 수 있을 것 같다.


<전승준|고려대 교수·화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