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칼럼]日 노벨상, 이제 시작이다

입력: 2008년 10월 16일 18:04:51

 

지난 주 올해의 노벨상 수상자가 발표되었다. 올해 특이한 것은 생리의학, 물리학, 화학의 과학상 3부문 수상자 9명중 과반이 넘는 5명이 동양계(두 명은 미국 국적)이었는데, 아마도 노벨상 역사에 처음있는 아시아 과학의 쾌거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일본계 4명과 중국계 1명으로 특히 일본 열도가 열광했다고 하는데 우리로서는 부럽고 축하할 일이다. 우리나라 주요 언론들에서 일본 과학기술, 특히 기초과학에 대한 꾸준한 투자를 주요 원인으로 꼽았는데 필자 역시 이에 동의한다.

일본은 1949년 첫 번째 노벨 물리학상 수상자를 배출하였다. 그러나 그 후 일본의 국력과 경제력을 감안하면 구미 선진국에 비교하여 노벨상 수상자가 매우 적었다. 어떤 면에서 노벨상이 서양 중심이라고 치부할 수 있었지만 일본에 노벨상을 수상할 만한 학자가 그리 많지 않았었던 것 같다. 필자가 일본 학계를 처음 방문한 1990년 전후 일본 학자로서 노벨상 후보에 오를 만한 과학자는 거의 없었던 것 같았고, 역시 일본은 실용적 개발연구에 더 중점을 두어서 그런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 후 필자는 2001년부터 시행된 일본의 ‘제2기 과학기술기본계획’에 노벨상과 같은 국제적 과학상 수상자를 유럽수준(50년간 30명 정도)으로 배출한다 것이 정부 정책의 목표 중 하나로 명기한 것으로 보게 되었다.


- 2050년까지 30명 배출 목표 -


당시 일본이 과연 할 수 있을까하는 의문과 함께 노벨상을 받을 만한 일본 학자들이 있는가에 대한 의견을 주위 학자로부터 간간히 들어보니 놀랄만한 결론을 얻었다. 왜냐하면 물리학, 화학, 생명과학 분야에서 노벨상 후보로 손색이 없는 세계적인 대학자들이 상당수가 있는 것 같았다. 따라서 앞으로 노벨상 수상자가 많이 나올 것이라는 예상을 하면서, 잃어버린 10년이라고 부르는 경제 침체기인 1990년대 일본 기초과학계에 무슨 일이 있었기에 이렇게 바뀔 수가 있는가하는 의문을 가지게 되었다. 그런데 2000년대 들어 올해를 포함하여 8명의 수상자는 정말 일본의 오랜 저력에서 비롯되었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노벨상은 수상자 업적의 연구시기와 수상시기 사이에 평균적으로 15-20년간의 간격이 있고, 역시 8명의 수상업적 연구 시기는 60년에서 80년대 사이였다. 그러면 90년대 이후 육성된 일본의 대학자들 중 노벨상 수상자가 나올 시기는 2010대 이후가 될 것으로 예상할 수 있기에 2050년까지 30명이 아니라 그 두 배 이상의 수상자를 낼 수도 있을 것 같다.


그러면 원인은 무엇일까? 우선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꾸준한 연구개발 투자이다. 일본은 전통적으로 대학교수들에게 나누어주기식으로 배분했고 따라서 거의 모든 교수가 연구할 수 있는 여건에 있었다. 그리고 90년대 경제가 어려울 때에도 국내 경기 부양의 일환으로 정부는 연구장비 구입자금을 더 투입하는 등 학계에서는 불황의 영향을 별로 받지 않았다. 다른 주요 원인으로 일본 학계의 그룹제도라고 생각한다. 그룹은 어떤 주제를 연구하는데 공동연구를 할 수 있는 기본 연구단위가 되면서, 조교수(일본에서는 조수라고 함)는 신진인력으로 그룹내에서 연구 시설장비와 연구비 등을 제공받기 때문에 젊어서부터 연구에 전념할 수 있는 여건이 마련되어 연구 인력 풀의 가동을 극대화할 수 있었다.


- 연구기반 탄탄해 더 나올것 -


그러나 이 두 가지 원인은 나누어먹기식 비효율적 연구비 투자와 학문적 동종교배(본교 출신만으로 교수 채용)로서 일본 학계의 가장 고질적 문제라고 지적됐었다. 그러나 이를 해결하기 위한 본격적인 노력이 80, 90년대를 거쳐 진행되면서 우수한 학자를 선발하여 집중적으로 지원하는 제도가 가미되었고, 연구 그룹 내 학문적 동정교배 문제가 해소되기 시작하면서 가장 우수한 학자가 그룹의 리더로 자리잡는 인력 유동성도 생겨 학계 분위기가 쇄신되었던 것 같다. 비효율적으로 보이지만 우수한 연구자들을 지속적으로 발굴할 수 있는 탄탄한 풀뿌리 기반을 만들고, 그러한 여건 하에 우수한 학자들을 선발하여 집중 지원하는 제도의 확립은 누구나 아는 기본이지만 일본이 명실공히 기초과학 선진국을 만든 초석인 것 같다. 이것이 우리가 배워야 할 점이다.


<전승준|고려대교수·화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