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칼럼]연구로 사회 기여하는 대학
전승준 | 고려대 교수·화학
대학은 인류 문명발전에 가장 큰 기여를 한 제도 중의 하나이다. 12, 13세기에 볼로냐대학, 파리대학, 옥스퍼드대학이 거의 동시에 설립되었으므로 대학이라는 교육기관은 800년 정도의 역사를 가지고 있는 셈이다. 설립 초기의 대학은 중세시대 상인들의 동업자조합인 길드와 유사한 형태로 출발하였다. 배우기를 원하는 학생들 또는 가르치길 원하는 교수들이 길드를 형성하여 세속적이며 종교적인 통제로부터 자유로운 독립기관으로 학문의 자유를 누릴 수 있었고, 이러한 전통을 아직까지 유지하고 있다.
19세기에 들어오면서 독일에서 대학제도에 큰 변화가 있었다. 당시 유럽의 후진국인 독일은 나폴레옹의 프랑스에 패한 이후 새로운 대학의 설립을 통하여 엘리트를 양성하려고 하였다. 이때 연구중심 대학의 시조라고 할 수 있는 베를린 훔볼트대학을 설립하였다. 학생 수의 급격한 증가로 부업을 하지 않아도 수입이 충분해진 교수는 연구를 수행할 수 있는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기센대학의 리비히 교수는 실험실을 최초로 만들어 현재 대학에서 실험연구를 수행하는 관행을 만들었다. 이후 정부에서 대학의 연구를 적극 지원하여 대학은 교육과 더불어 지식 창출의 연구라는 기능을 하는 곳이 되었다.
19세기 후반 많은 대학을 설립한 미국은 독일 대학을 벤치마킹한 연구중심대학으로 운영하면서 대학 제도의 새로운 시험을 하였다. 미국의 대학은 정부와 산업계에서 제공하는 연구비로 사회가 필요로 하는 연구를 수행하는 기관이 되었고, 특히 1, 2차 세계대전을 통하여 국방 연구의 기여는 정부에서 대학 연구능력을 확실히 인정하는 계기가 되었다. 미국의 대학은 교육과 연구 이외에 사회기여라는 중요한 기능을 대학에 추가하였다.
역사에서 보듯 대학 제도의 핵심은 학문의 자유와 대학운영 재원 확보라고 할 수 있다. 학문의 자유는 대학과 사회 발전의 동력이다. 그러나 대학을 운영하는 재원이 필요하며, 초기에는 수업료가 주 수입원이었고 이때에는 연구를 할 여유가 없었다. 독일은 자유의 이념을 유지하면서 정부에서 지원하여 연구를 할 수 있는 제도를 만들어냈다. 미국은 정부뿐 아니라 기업으로부터 지원금을 받아들여 실용적인 연구로 사회기여를 하였다. 그러나 기부금 모금이라는 독특한 제도를 만들어 자유의 이념을 크게 손상하지 않고도 재원을 마련할 수 있었다. 최근 미국 대학을 중심으로 멀티버시티, 아카데믹 캐피털리즘 등 대학의 새로운 실험이 진행되고 있는데 이는 대학의 인적자원을 최대한으로 활용하여 사회기여를 더욱 확대하고 대학 운영자금을 만드는 것이다. 수업료와 기부금 이외의 자금은 일종의 대가성이다. 대가는 대학의 자유를 구속하게 된다. 미국의 대학은 운영자금 확보와 자유를 잘 조화시켜 세계 최고의 대학들이 되었다. 특히 대학교육의 대중화라는 조류 속에 엘리트 교육을 발전시켰다. 미국식 대학제도에 일본식 사고방식의 교수와 관료로 시작한 우리나라의 대학은 엘리트 대학을 만들어야 하는 과제를 안고 있다. 자유 이념 유지와 연구를 지원할 자금 확보의 조화는 연구대학 미래에도 가장 중요한 과제일 것이다.
경향신문 2008/12/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