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칼럼]마네와 다윈의 영감(靈感) 여행

 전승준 고려대 교수·화학


며칠 전 서울시립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는 미술 전시회 ‘퐁피두센터 특별전’에 갔었다. 파리국립근대미술관 퐁피두센터가 소장한 피카소, 브라크, 마티스, 클레, 미로, 칸딘스키 등의 현대 미술 작품을 감상할 수 있는 좋은 전시회였다. 전시회는 황금시대, 낙원, 풍요, 조화 등 10개의 소주제로 꾸며 그림을 전시하였는데 10번째 마지막 소주제가 ‘풀밭 위의 점심식사’로서 19세기 인상파의 대표적 화가인 에두아르 마네의 동명의 걸작을 패러디한 작품 2개를 전시하고 있었다. 마네의 원작은 그 이전의 사실주의 그림과 완전히 다른 개념의 인상주의를 시작하는 혁명적 그림으로 평가하고 있다. 그림 중앙의 여인누드는 그 이전의 다소곳한 누드와 다른 도발적인 시선과 주위와 대비되는 매우 밝게 표현한 반동적인 그림이었다. 이 그림은 살롱전에 출품했다가 낙선한 것으로 낙선자 전시회에 출품하여 비평가들에게 혹평을 받았으나 관람객은 문제의 작품을 보려고 줄을 섰었다. 그 후 여러 유명화가들이 이 작품을 패러디한 동명의 그림을 그렸다. 피카소도 과거의 재현 연작 중에 동명의 그림을 그렸다. 이번 전시회에 전시된 두 작품 중 두보사르스키와 비노그라도프의 대작은 두 작가의 합동 작품이라는 특이한 면도 있고 고호 등 인상파 화가들을 그림 안에 등장시킨 최근 현대미술 작품이었다. 이와 같이 화가들은 유명한 작품을 따라 연구하여 영감을 얻고 자신의 작품세계를 만드는 것 같다. 마네도 16세기 조르조네라는 화가의 ‘전원음악회’라는 작품으로부터 영감을 얻어 이 작품을 그린 것으로 추정된다.


과학에서도 훌륭한 과학적 업적은 계속 후대의 과학자들에게 영감을 불러일으켜 위대한 연구 결과를 만든다. 올해는 다윈 탄생 200주년이면서 진화론을 주장한 <종의 기원> 출판 150주년이 되는 해이다. 다윈의 진화론은 과학사에서 가장 중요한 연구업적 중의 하나이다. 다윈이 비글호의 여행에서 모은 자료들을 해석하는 과정에서 맬서스의 <인구론>을 읽고 영감을 얻어 진화론에서 자연선택의 핵심개념인 적자생존을 생각해냈다는 것은 유명한 일화이다. 진화론은 생명과학 발전에 기여한 많은 과학자들에게 영감을 불러일으켰다. 생명체의 유전정보를 담고 있는 유전자를 발견하게 한 것이나 동물행동학자인 리처드 도킨스가 자신의 저서 <이기적 유전자>에서 생물은 유전자에 의하여 창조된 기계로서 생물의 많은 행동이 유전자를 보호하기 위한 것이라는 주장 역시 진화론의 영감으로부터 나온 이론이다. 진화론은 과학분야뿐 아니라 정치·경제와 같은 다른 학문 분야에도 영감을 불어넣었다. 최근 세계적 금융위기 속에서 아담 스미스의 경제이론으로부터 신자유주의 그리고 앞으로 진행할 미래도 진화론을 차용하여 예측하기도 한다.


과학에서는 항상 새롭고 창의적인 연구결과를 원한다. 그러나 화가가 유명화가의 그림을 보고 흉내 내는 습작기간을 거치면서 자기만의 새로운 작품세계를 만드는 것처럼, 과학의 창의적인 연구결과도 앞서 있었던 연구 업적을 계속 익히고 배우는 과정에서 영감을 얻어 태어나는 것이다.


<전승준 고려대 교수·화학>

입력 : 2009-01-15 18:10:20ㅣ수정 : 2009-01-15 18:10: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