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칼럼]백락(伯樂)을 만난 천리마

 전승준 고려대 교수·화학


지난 1월20일은 미국 역사상 가장 중요한 날의 하나로 기록될 것이다. 흑인 대통령이 탄생한 날로서, 1961년 미국에서는 백인 중에서 무시당하던 아일랜드 출신 가톨릭교도인 케네디가 대통령이 되었던 날보다 훨씬 더 길이 기억될 것 같다. 오바마 대통령은 흑인 케네디라는 말을 들을 정도로 케네디 대통령이 가졌던 젊은 패기와 똑똑함, 과감한 추진력 등의 이미지를 미국민과 전세계에 주고 있다. 그런데 또 하나 아주 비슷한 것은 케네디 대통령 부인 재클린 여사와 오바마 대통령 부인 미셸 여사의 이미지이다. 직업여성으로 활발한 활동을 할 뿐 아니라 패션 감각에서 일반인뿐 아니라 의상 디자이너들로부터 찬사를 받고 있다. 미셸 여사가 취임식에 입고 나온 옷들도 패션 감각뿐 아니라 상징적인 의미를 표현한 것으로 찬사를 받았다. 그런데 필자가 주목한 것은 그 옷을 만든 디자이너이다. 취임식 무도회에서 입었던 한쪽 어깨가 드러나 보이는 아이보리 색 ‘싱글 숄더 룩’ 시폰 드레스는 우아함으로 찬사를 받았고 관례에 따라 스미소니언 박물관에 기증된다고 한다. 그런데 이 옷을 만든 사람은 제이슨 우라는 26세의 대만 출신 디자이너이다. 미셸 여사가 평소 가깝게 지냈던 시카고 디자이너 이크람 골드먼의 소개로 드레스가 선택되었다고 한다. 패션계에서는 ‘싱글 숄더 룩’이 유행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고, 제이슨 우는 전도유망한 신인으로 패션계를 이끌 재목이 될 가능성이 크다. 제이슨 우의 의상을 입은 미셸 여사가 패션잡지 보그의 3월 표지에 나온다고도 한다. 오바마 대통령도 27세의 존 파브로라는 청년을 연설문 담당 비서로 발탁했다. 그는 현 백악관 대변인인 로버트 기브스의 추천으로 후보 시절부터 연설문을 작성하여 호평을 받았으며 역시 전도유망한 정치계 신인이다.


젊은 신인의 발굴이 과학계만큼 중요한 곳은 없다. 왜냐하면 과학 분야에서 특히 젊은 시절 창조성을 발휘하는 연구가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노벨상 수상자들과 같은 훌륭한 과학자들은 사제간인 경우가 많다.


물리학자 페르미 교수는 6대의 사제관계에 걸쳐 노벨상을 배출하였다. 선생은 제자의 과학자로서 자질을 일찍 알아보고 키운다. 유명한 예로 1944년 노벨 물리학상 수상자인 컬럼비아 대학의 라비 교수는 1936년 뉴욕주립대의 학부학생이었던 18세의 슈윙거-컬럼비아 대학으로 옮기려는 친구를 따라왔던-를 만나게 된다. 라비 교수는 원래 만나고자 온 학생보다 따라온 슈윙거의 자질을 알아보고 입학을 제안한다. 라비 교수로부터 배운 슈윙거는 1965년 노벨 물리학상을 받는다.


어느 분야나 훌륭한 인재는 매우 중요하다. 능력있는 인재는 어쩌면 사회 곳곳에 숨어있을지 모른다. 인재를 육성하는 것 이상으로 인재를 알아보고 발탁해서 사회에 기여하게 하는 것 또한 중요하다. 중국고사에 백락일고(伯樂一顧)라는 말이 있다. 천리마가 백락이라는 사람을 만나야 세상에 알려진다는 의미로 능력을 알아보는 사람이 발탁해주어야 능력을 발휘할 수 있다는 것이다. 우리도 이크람 골드먼이나 라비 교수 같은 백락이 필요한 것 같다.


경향신문 2009/02/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