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칼럼]한국 BT산업 전망 밝다
전승준 | 고려대교수·화학
세계 경제상황이 혼란스럽고 우리나라 역시 매우 힘든 상황인 것 같다. 이에 따라 새로운 국가 성장동력을 찾기 위해 정책 입안자와 학자들이 다양한 의견을 제시하고 있다. 최근 우리나라를 비롯해 주요 선진국에서 미래 성장동력으로 에너지와 환경 문제를 동시에 해결하는 녹색 성장을 꼽고 있다. 그러나 한편으로 어떤 부문이 주요 산업으로 발전하기 위해 갖춰야 할 요인을 고려하면, 우리나라에서 의료 및 의약산업과 같은 생명공학(BT) 부문도 유망하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산업 발전의 역사를 되돌아보면, 1960년대에는 경공업, 70·80년대에는 중화학공업, 90년대와 2000년대에는 정보기술(IT)이 국가 경제를 선도하는 산업이었다.
이러한 산업 발전의 요인은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재미있는 상관관계를 가지는 요인이 한 가지 있다. 그것은 과거 대학 학과 인기도와 후속 산업 발전 부문이다. 50·60년대에 가장 인기를 끈 학과는 화학공학과와 화학 분야였고, 70·80년대에는 전자공학과와 물리학 분야였다. 이것을 상관지어 보면 50·60년대의 우수한 화학공학과 졸업생이 70·80년대 중화학 산업 발전의 원동력이 되었고, 70·80년대 우수한 전자공학과 졸업생이 90년대와 2000년대의 IT산업을 세계 최고의 수준으로 만드는 데 기여했다.
그러면 90년대와 2000년대에 가장 우수한 학생들이 몰린 학과는 어딜까? 잘 아는 바와 같이 의·약학과와 생명과학 분야이다. 그러면 우리는 2010·2020년의 BT 산업을 발전시킬 수 있는 우수 인력을 충분히 확보하고 있는 셈이다. 그런데 우수 인력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은 필요조건 중 하나일 뿐이다. 과거에는 산업 발전에 정부가 중요한 역할을 했다. 정부는 관세를 이용해 외국의 우수한 제품이 들어오는 것을 막아주고, 대신 질이 떨어지는 국산제품을 국민들에게 사용하도록 권장했다. 이러한 정책은 우리나라 제품이 충분한 국제경쟁력을 가진 후 해외에 진출할 수 있도록 도움을 주었다. 그리고 재벌 오너십에 의한 적기의 과감한 대규모 설비 투자로 상당한 성공을 거두었다. 이러한 몇몇 산업부문의 성공이 우리나라를 선진국 문턱까지 다다르게 했다.
BT산업은 전형적인 지식집약적 산업이며, 국가 규제산업이다. 의료와 의약산업은 연구·개발이 매우 중요하고, 국민의 생명과 직결되기 때문에 세계 어느 나라나 규제가 엄격하다. 의약산업의 경우는 우리의 특기인 대규모 설비 투자가 별로 필요 없다. 대신 우리 독자적이고 창의적인 연구·개발 능력과 대규모 임상실험비와 장기간 투자가 필요하다. 보통 한 의약품을 개발하는 데 1조원이 소요된다고 하는데, 이 중 80% 이상의 경비가 의약 후보 물질 개발 후 이를 인체에 적용해 보는 임상실험비다. 허가까지는 5~10년이 걸린다. 이러한 방식의 산업은 우리에게 매우 생소한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익숙한 외국기술 도입과 대규모 유형 자산 투자로 성공한 중화학 또는 IT산업에서 독자 기술 개발 및 무형 특허와 장기간 투자로 돈을 버는 산업으로, 과감한 발상 전환을 한다면 우리나라에서도 BT산업 전망이 밝을 수 있다.
경향신문 2009/03/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