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칼럼]도구의 미래 ‘모사 인간’

 전승준 고려대 교수·화학


인간은 도구를 사용하는 영장류로서 도구 인간(homo faber)이라고도 한다. 인류는 영장류로 진화한 이래 흙, 돌, 나무 등 자연에서 얻을 수 있는 재료로 도구를 만들어 사용하였다. 침팬지가 흰개미 집을 부순 후 잎을 떼어내고 중간까지 씹은 나무 줄기로 흰개미를 낚는 것과 같이 인간 아닌 영장류 중에 도구를 사용한다는 보고가 있지만 도구 사용은 인간의 특징이다. 도구는 인간의 물리적 능력을 극복하는 데 사용되어 왔다.


석기시대 초기 현 인류의 선조는 의식주를 해결하기 위하여 도구를 사용하기 시작했다. 돌을 재료로 만든 다양한 도구로 식물 채집과 동물 사냥을 위하여, 그리고 먹을 것을 가공하기 위하여 사용하였다. 도구를 무생물 재료로 만든 것에서 인간 근력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하여 활용하는 생물로까지 확대한다면 말, 소와 같은 동물도 인간의 도구라고 할 수 있다. 석기시대 이후 청동기, 철기로 만든 도구 사용과 바퀴, 도르래 등의 고안은 인류 문명을 발전시키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암흑시대라 불리는 중세시대에도 도구의 발전은 지속되어 여러 마리의 소가 끄는 무거운 쟁기의 고안은 농사 기술을 획기적으로 향상시켜 인구 증가를 가져왔고, 자연 현상을 이용하여 에너지를 얻는 풍차와 수차의 발명은 근대 서구 문명 발전의 원동력이 되었다.


근대 이전의 도구는 주로 인간 근력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한 것이었던 반면 근대 이후 오감의 능력을 확대할 수 있는 도구도 발명되었다. 대표적 예가 시각 능력을 확대하는 망원경과 현미경이다. 그리고 이동을 위한 도구로 말과 마차와 바람을 이용하는 배에서 기차, 자동차, 증기선, 비행기 등으로 획기적 발전을 이루었다. 20세기에 들어와서 고안된 가장 획기적인 도구는 인간의 지적능력을 대신하는 도구의 발명이다. 간단한 계산에서 시작한 컴퓨터는 뇌가 수행하는 작업의 일부를 대신할 수 있는 도구이다. 최근 컴퓨터의 계산 속도가 엄청나게 빨라져 인간이 할 수 있는 한계를 훨씬 뛰어 넘고 있지만, 아직 인간이 고안한 명령체계 내에서 지시를 수행하는 수동적 도구이다.


미래의 도구는 틀림없이 인간의 근력으로 하는 일을 대신하여 강한 힘을 발휘하거나 섬세한 일을 하고, 오감을 대신하여 효율적인 감지를 하거나, 인간의 지적 능력을 대신하여 빠른 계산뿐 아니라 인간의 창조성을 흉내낼 수 있는 기기도 고안될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도구들은 어떤 특정한 하나의 목적을 위한 기기로 고안할 수 있지만, 이 모든 능력을 한 개체 내에서 수행하도록 고안한 것이 인간 모사 로봇이라고 할 수 있다.


인간과 유사한 능력을 훨씬 뛰어나게 발휘하는 모사인간은 다양한 도구를 만들어왔던 도구 인간이 추구하는 최종 목표일 수 있다. 아마 다양한 방법이 시도될 것이다. 만화영화에 자주 등장하는 것처럼 모든 것을 기계적으로 조종하는 로봇이 만들어질 수 있고, 생물학적 복제인간일 수도 있고, 인간의 지적능력을 가진 휴머노이드일 수도 있다. 그러나 100년 후에 로봇이 어떤 형태일 것인가를 예측하는 것은 쉽지 않다. 100여년 전 자동차가 처음 고안되었을 때 미래의 큰 차는 집이 움직이는 형태라고 예측하였지만 현재 큰 차의 주류는 버스 형태이다.


경향신문 2009/06/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