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칼럼]과학 법칙과 동·서양 ‘자연법’
전승준 고려대 교수·화학
16세기 이후 과학기술의 획기적 발전이 서양에서 이루어졌지만 동양에서는 서양식 과학기술 발전이 거의 없었다. 왜 이러한 현상이 일어나게 되었는가에 대한 여러 해석이 있지만, 20세기 과학사의 기념비적인 저서로 꼽히는 <중국의 과학과 문명>의 저자 조지프 니덤 교수의 해석을 과학의 법칙과 사회의 법률 사이의 관계와 함께 소개하고자 한다.
원시사회에서 법은 단순히 공동체 생활을 원활하게 유지하는 도덕적 비판과 그것에 따른 벌칙과 같은 성문화되지 않은 관습법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사회가 형성되고 국가가 되면서 이러한 관습적 판결은 사회 상황에 따라 정해지고 결국 입법자가 나타나게 되어 성문법이 되었다. 그러나 동양과 서양은 성문법 형성 과정에서 큰 차이를 보인다. 서양 법체계의 원류라고 할 수 있는 로마법에서는 영구불변의 보편타당성을 지닌 자연법과 특정한 주민 또는 국가의 시민법인 실정법을 인정하였다. 그리고 법은 어느 정도 신성 불가침한 것으로 사회적 행위의 조건들을 제어했다. 그러나 동양 특히 중국에서는 상당히 다르게 전개된다. 중국의 법률 체계는 중국에서 만들어졌고 주변에 많은 영향을 준 정신적, 윤리적 가치 체계에 비하여 하위에 위치하였다. 물론 법가의 법을 존중해야 한다는 사상이 있었지만, 유가의 사회관습에 가까운 ‘예(禮)’를 실정법보다 선호했다. 우주, 인간사회, 인체라는 세 가지 수준의 관계를 보면, 서양은 법을 제정하고 집행하는 의인화된 존재가-로마에서는 입법자, 그리고 기독교시대에는 의인화된 신-세 수준에서 밀접하게 관련된 것으로 본 반면, 중국인은 좋은 관습이 구체화된 ‘예’나 ‘의(義)’가 세 가지 수준에서 필요한 조화를 나타낸다고 생각했다.
자연에 존재하는 대상들의 행동 규칙성을 ‘과학법칙’이라고 한다. 이것은 어느 정도 추상적이고 은유적인 의미를 가졌지만 서양의 자연법 즉 자연의 창조자인 신에 의해 제정된 법이라는 개념과 밀접한 관련이 있어 보인다. 따라서 근대 서양에서는 과학법칙을 받아들이는 데 전혀 어려움이 없었다. 최근 과학자들은 무신론적인 경향이 강하지만 근대 과학혁명의 주역인 코페르니쿠스, 데카르트, 갈릴레오, 뉴턴은 모두 독실한 기독교도였다. 즉 서양의 과학자들은 신이 창조한 우주의 자연법인 자연법칙을 이해하고 기술하는데 전념을 다했다. 근대 과학은 신의 존재를 불가지론으로 대체하면서 철학의 영역에 남겨두고, 과학과 철학은 분리되었다. 그리고 자연법칙은 수학적 표현과 함께 매우 단순한 형태로 표현하였다. 그러나 중국에서 자연법은 법이라기보다 ‘예’라는 명칭을 갖고 인간사회에서만 적용하였다. 자연 현상은 주자학의 ‘이(理)’ 또는 도가의 ‘도(道)’로 표현하는데, 중국인들은 자연에 질서가 없는 것이 아니라, 서양의 신과 같은 이성적이고 인격적 존재에 의하여 정해진 질서도 아니고 지상의 언어로 나타내기에는 너무도 미묘하고 복잡하다고 생각하였다. 그러나 질서는 인간이 그 안에 존재하고 있기에 이해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동양의 자연이해 방식은 현대 과학의 혁명적 전환을 만든 양자역학과 상대성이론을 연구한 일부 과학자들 사이에서도 받아들여지면서 동양의 자연법이라 할 수 있는 ‘이’와 ‘도’를 과학자들도 탐구하게 만들고 있다.
경향신문 2009/07/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