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칼럼]원천연구 기반한 일자리 창출

 전승준|고려대 교수·화학


최근 우리나라의 경제전망이 서서히 긍정적으로 변화하는 것 같다. 1년 전에 시작한 경제 침체의 어두운 터널을 빠져나오는 듯한 조짐을 보이고 있지만 아직도 큰 걱정거리는 청년실업 등 고용문제가 해결될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일자리 창출은 미국에서도 큰 걱정거리인 듯하다. 비즈니스위크 최신호에 ‘연구개발의 근본적 재고(再考)’라는 제목의 커버스토리가 실렸다. 그 중 한 기사가 ‘과학이 어떻게 수백만개의 새로운 일자리를 만들 수 있는가’라는 제목으로, 최근 미국에서 좋은 일자리가 줄어들고 있는 현상을 분석하고 이를 해결하는 방법으로 무너지고 있는 미국 고유의 일자리 창출 모델인 ‘대규모 연구소의 기초원천연구에 기반한 고급 일자리 창출’을 꼽았다.


미국은 작년의 대공황 수준의 경기 침체 이전에도 1981년 이후 세번의 경기 후퇴를 경험하였는데 그 때마다 한두 개의 새로운 블록버스터 산업이 일어나면서 오히려 더 견고한 발전을 할 수 있었다. 즉, 80, 90년대의 PC·인터넷·휴대폰 관련 신산업은 좋은 일자리를 만들었다. 경기 후퇴를 극복하기 위하여 기업들은 고임금 일자리를 저임금의 개도국으로 보냈지만, 이와 같은 새로운 산업은 줄어든 일자리보다 훨씬 더 많은 수의 고급 일자리를 창출하였기 때문에 미국 경제는 지속적인 성장을 하였다. 그러나 최근 들어 신산업 창출이 안되고 있기 때문에 좋은 일자리 창출은 벽에 부딪치고 있고 고용 문제가 심각한 수준이 되었다는 것이다.


Bell, IBM, RCA, Xerox PARC와 같은 대기업의 대형 연구소나 NASA, DARPA와 같은 국가지원 대형 연구소가 일찍이 기초원천연구를 수행하면서 신산업 창출의 원류를 이루어 놓고, 다양한 기업들이 이를 응용 개발연구해 신산업 창출의 구성이 되는 다양한 산물을 만들어냄으로써 이에 종사하는 수많은 고급인력을 흡수하는 좋은 일자리가 창출되었다. 바로 이것이 미국 고유의 일자리 창출 모델이었다. 벨연구소의 트랜지스터, 팩스, UNIX, 휴대폰의 원천연구 결과는 후에 PC, 다양한 전자기기를 만드는 데 응용되었고, DARPA의 인터넷 연구, Xerox PARC의 이더넷 연구는 인터넷 관련 신산업을 일으키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원천연구 결과들이다. 그런데 이러한 원천연구는 신산업이 일어나기 약 10~20년 전에 수행되었던 것들이다.


그러나 1990년대 이후 기업연구소는 기초원천연구 투자를 줄이기 시작하고 연구인력을 대폭 감원하면서(벨연구소는 3만명이던 연구인력을 최근 1000명으로 줄임) 우수한 원천연구 결과들이 없었기 때문에 2000년대에 신산업의 창출도, 더 이상 좋은 일자리를 만들어내기도 어렵게 됐다는 것이다. 기초원천연구는 상당기간이 지난 후에 가시적인 성과를 만들어낼 수 있다. 물론 아무런 가시적 성과를 내지 못하는 경우도 허다하다. 어쩌면 재원, 인력, 인프라가 갖춰진 미국만이 가능한 모델일 수 있다. 그러나 우리에게 던져주는 시사점은 과학기반 기초원천연구가 선행되어야 고급 일자리를 만드는 신산업이 창출될 수 있다는 것이다.


경향신문 2009/09/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