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탁류세평] 코페르니쿠스와 다윈
[1511호] 2005년 06월 05일 (일) 00:00:00 고대신문kunews@kunews.ac.kr
16세기 근대 과학혁명 이후 과학의 발전에 기여한 무수히 많은 과학자들이 있지만 대표적인 과학자 두 사람을 꼽으라면 아마도 뉴턴과 아인슈타인이 아닐까 한다. 본인 역시 과학적 업적 면에서 최고의 과학자로서 이 두 과학자를 꼽는데 주저하지 않을 것이다. 그런데 과학적 입장이 아닌 인류 문명에 가장 기여한 과학자를 꼽으라면 본인은 코페르니쿠스와 다윈이라고 주장하고자 한다.
그 이유는 이 두 사람이 과학적 업적에서 매우 획기적인 아이디어를 제안하여 과학의 발전에 공헌하였을 뿐 아니라 인간을 자각시키는데 크게 기여한 점이 과학의 발전을 이끈 것 이상으로 중요한 업적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코페르니쿠스는 지동설을 제안하였고, 다윈은 진화론을 제안하였다는 것은 누구나 알고 있을 것이기에 여기서 학설에 대한 설명은 생략하겠다. 그러면 이들이 어떤 점에서 인간을 자각시키는데 기여했을까?
우선 이 두 사람이 살았던 시대를 생각해 보자. 코페르니쿠스 시대의 서구는 암흑의 시대라고 일컬어지는 신과 교회가 최상의 권위를 가지는 기독교 중심의 중세에서 막 벗어나던 시대였다. 그리스시대에 꽃을 피웠던 인간정신의 발전은 1000년 이상 신의 권위에 묻혀 오히려 이슬람에서 명맥을 유지하였다. 기독교는 시오니즘의 전통을 이어받아 인간은 신으로부터 특별히 선택을 받았고 따라서 인간이 살고 있는 곳은 특별한 곳이라고 생각했다.
이에 반한 생각은 신을 모독하는 것으로 이 같은 생각을 갖는 자체가 죽음을 가져올 수도 있는 위험한 것이었다. 따라서 인간이 살고 있는 지구는 우주의 중심이고 태양을 비롯한 하늘의 모든 별은 지구를 중심으로 회전하고 있다고 믿었다. 그러나 이러한 상황에서 코페르니쿠스는 인간이 사는 곳이 우주의 특별한 위치에 있어야 하는가에 대하여 회의를 가졌다. 그리고, 별들의 움직임에 대하여 지구가 다른 별들과 마찬가지로 움직이고 있다는 새로운 해석을 하였다. 이 해석은 당시의 문헌을 연구한 과학사학자들에 의하면 1000년 이상을 모든 사람들이 굳건히 믿고 있던 프톨레마이오스의 천동설 보다 별들의 움직임을 더 잘 설명한 것은 아니었다고 한다.
그리고 코페르니쿠스가 지구 입장에서의 겸손도 아니었던 것 같다. 단지 우리가 살고 있는 곳도 수많은 별들과 다름없는 자연 속의 하나의 별이라는 자각이다. 즉 인간이 속한 곳이 특별한 곳이 아니다 라는 것이다. 이것은 신들이 인간을 특별하게 대우한다고 생각하고 이 대우를 계속 받으려면 계속 신을 섬겨야 한다는 당시 무소불위의 교회 권위에 대한 큰 반란이었다. 그러나 이러한 자각이 100년이 지난 후 뉴턴에 의하여 근대 과학혁명이 완성되면서 인류는 물질적인 면에서도 비약적으로 발전하게 되었다.
뉴턴의 과학혁명 이래 천체의 움직임을 완벽하게 해석할 수 있고 예측할 수 있게 된 것은 물론 모든 다른 과학 분야에서도 눈부신 발전이 있어 19세기에는 인간이 거의 신의 경지에 이르게 되었다는 인본주의의 절정에 이른 시대였다. 그런데 다윈이라는 학자가 나타나서 인간도 모든 다른 동물들과 별로 다를 게 없는 한 종의 동물이고 따라서 인간의 조상이 원숭이로부터 유래할 수 있다는 파격적인 학설을 제안했다. 즉 코페르니쿠스는 인간이 살고 있는 환경이 우주 속에서 특별한 곳이 아니라는 주장을 하였고, 다윈은 인간마저도 특별한 존재가 아닌 한 종류의 동물이라고 자각하였다. 그러면 이 두 과학자는 인간을 별 볼일 없는 것으로 비하시킨 것일까?
자신이 특별한 대우를 받기를 원하고 소속된 집단이 특별하기를 원하는 것이 아마도 인간의 심리일 것 같다. 그러나 이러한 생각은 자신, 소속집단, 인류문명 발전에 오히려 해가 되는 측면이 강하다. 개인이나 집단 중에 그들의 상황에 만족하고 그것만은 지키려고 하면 거의 발전이 없다. 거의 대부분의 성공한 사람들이나 집단들을 보면 그들의 상황을 정확히 인식하는 자각을 거쳐 현상을 통찰하고 발전 방향을 제안하고 실행한다.
이 두 학자는 인간에게 자연속의 인간의 상황을 자각시키는 선구자의 역할을 하였고, 당시 거의 대부분의 학자들의 생각과 다른 학계에서 매장당할 만한 주장을 하였다. 예전에 텔레비전의 한 회사 광고가 기억이 난다. 모두들 “예”라고 할 때 “아니요” 라고 말 할 수 있는 사람을 존중하는 회사라고 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말은 쉽지만 실제로 통찰력을 가진 이런 사람은 정말 드물다. 우리학교나 우리나라가 이러한 자각이 필요할 때가 아닌가 생각돼 이러한 선구자를 기다려 본다.
전승준(이과대 교수·물리화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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