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탁류세평]천동설에서 지동설, 다시 천동설?
전승준 이과대 교수·화학과
[1718호] 2013년 03월 17일 (일) 17:39:19 고대신문news@kukey.com
전승준 이과대 교수·화학과
서양의 근대 과학혁명은 코페르니쿠스의 지동설을 서술한 ‘천구 회전에 관하여’가 발표된 1543년을 기점으로 시작하고, 만류인력과 운동법칙을 정리한 뉴턴의 ‘자연철학의 수학적 원리’로 완성되었다. 코페르니쿠스의 지동설은 그 이전까지의 천동설을 뒤엎은 과학적 업적 이상의 의미를 가진다. 즉, 생각의 틀이 인간 중심에서 인간과 주위 환경을 좀 더 객관적으로 바라보게 하였다.
고대 그리스시대 이래 서양사상의 주요 의문중 하나는 인간의 감각이 믿을 만하나, 그리하여 감각을 통하여 관찰된 자연은 믿을 만 하나였다. 존재한다고 생각하는 사물들이 객관적으로 존재하는가 아니면 인간의 의식에 의해 주관적으로 존재한다고 믿는 것인가의 문제이다. 근대 서양철학과 과학 확립에 크게 기여한 데카르트는 이 문제를 재정의하였다. 물질과 정신을 분리하여, 인간의 인식과는 상관없이 우주가 객관적으로 존재하고, 과학은 우주에 존재하는 물질만을 다루게 되었다. 뉴턴은 우주를 다루는 방법의 기준 틀로 절대공간과 절대시간을 가정하였다. 인식의 문제는 철학의 문제로 남겨졌고, 과학은 철학과 분리되었다. 20세기 들어오면서 새로운 과학이론으로 상대성이론과 양자이론이 확립되었다. 아인슈타인은 상대성이론을 통하여 뉴턴의 공간과 시간을 독립적으로 간주한 기준틀을 보정하여 공간과 시간이 서로 얽혀 있는 절대시공간으로 수정하였지만, 우주는 여전히 객관적으로 존재하는 것으로 간주하였다.
20세기 초에 확립된 양자이론은 물체들의 입자 성질과 파동 성질을 동시에 표현하는 중첩(superposition)과 얽힘(entanglement)의 파동함수와 불확정성 원리로 원자의 세계를 수학적으로 체계화 하였다. 양자이론의 수학적 결과는 원자뿐 아니라 우주를 설명하는데 전혀 문제가 없을 뿐더러 뉴턴의 고전역학이론과도 조화를 이루기에 완벽한 이론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이론에 의한 결과가 자연의 상태를 설명하고 해석하는 데에 문제가 생긴다. 예를 들어, 길거리의 고양이가 아무도 보지 않는 상황에서는 산 상태와 죽은 상태가 중첩되어 있는 데 누군가가 그 고양이를 관찰하는 순간 완전히 살아있는 상태로 변하는 것일 수 있다. 이것은 관찰이라는 인간의 인식 문제와 관련되기에 이론 확립에 기여한 아인슈타인은 양자이론이 불완전하다고 생각하였고, 죽을 때까지도 그렇게 생각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왜냐하면 물체의 존재여부에 관찰이라는 인간의 의식이 관여하기 때문이다. 아인슈타인은 이 양자이론 세계의 기괴함을 일찍이 ‘아무도 달을 보고 있지 않다고 달이 없는가?’라는 말로 표현했다.
그러나 양자이론의 결과가 자연 상태를 정확하게 예측하기에 거의 모든 학자들은 양자이론을 통하여 물체의 성질을 연구하고 활용하는 데 열중하였고, 해석은 관심 밖이었다. 그러나 1960년대 아인슈타인을 존경했던 존 벨이라는 무명학자가 뉴턴-아인슈타인 세계와 양자이론 세계를 구별할 수 있는 방안을 제안하였다. 그 후 실험들을 통하여 자연은 양자이론 세계라는 것이 증명되었다. 우주가 양자이론 세계라면, 관찰을 하는 우리의 의식이 세계를 구성하는데 관여하고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의식이란 무엇인가, 의식은 인간만 가지는가, 물체가 정해지는 관찰의 순간은 어떤 상태인가, 우주는 인간의 의식에 의해 존재하는 새로운 천동설인가 등 이에 따른 의문들이 계속 생긴다. 물질적인 것만을 대상으로 간주하였던 과학을 재정의해야 하는 문제가 생길 수도 있다. 최근 2기를 시작한 오바마 정부가 천문학적 예산을 투입했던 인간게놈 프로젝트보다 훨씬 더 예산 투입이 예상되는 뇌활동지도(Brain Activity Map) 프로젝트를 계획 중이라는 것도 아마 이러한 새로운 탐구와 무관하지 않을 것 같다. 이 문제는 과학과 인문학이 연계된 중요한 융합연구주제가 될 가능성도 있다. 우리 대학도 새로운 주제에 과감히 뛰어들만한 야심만만한 학도를 육성하는데 힘써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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