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탁류세평]미래 지향적 과거

전승준 이과대 교수·화학과

        [1722호] 2013년 05월 05일 (일) 11:08:19      고대신문news@kukey.com        

                

전승준 이과대 교수·화학과  5월5일로 개교 108주년을 맞이하였다. 미국의 하버드대와 예일대, 영국의 옥스퍼드대와 캠브리지대, 일본의 동경대 등 대다수의 우수 대학들은 그 나라에서 가장 역사가 오래 된 대학이다. 고려대 역시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대학중의 하나이다. 역사는 오랜 세월을 통하여 만들어지기 때문에 쉽게 만들어 질 수 없다. 그런 면에서 고려대학교가 우리나라의 최초의 종합대학이라는 자랑스러운 역사가 있다.


 역사가를 비롯한 많은 현인은 역사는 무엇을 어떻게 기술해야 하는 지, 역사란 어떤 의미가 있는지 등에 대한 수많은 연구 결과와 의견들을 발표하였다. 에드워드 카는 ‘역사란 무엇인가’라는 저서에서 역사란 과거와 현재의 대화로서 단순한 과거가 아니라 현재, 그리고 더 나아가 미래와 연결되어야 한다는 주장을 하였다. 그리고 대다수의 역사가들은 역사를 단순한 사건의 기록으로 보기 보다는 시대에 따라 역사의 사건들의 의미를 되새기는 일들을 하였다. 동양에서 사마천의 사기를 비롯한 역사의 기록들은 후대에 국가를 운영하는데 본보기를 삼아 왔다.


 한정된 기간을 사는 인간 누구도 일생을 편안하고 순탄하게 보내는 사람은 없을 것 같다.  긴 역사를 가진 대학과 같은 기관, 더 나아가 국가는 더욱 굴곡이 있게 마련이다. 고려대도  자랑스러운 역사가 있는 반면, 수치스럽게 생각할 수 있는 역사도 틀림없이 있을 것이다. 우리나라의 역사에서도 임진왜란 당시 이순신 장군께서 왜군을 물리친 한산도대첩과 같은 세계 역사에 남을 만한 자랑스러운 승전이 있는 반면, 병자호란 당시 청나라 300명의 기병에 4만명의 조선 군사가 거의 몰살당한 쌍령전투와 같은 수치스러운 패전도 있었다. 자랑스러운 역사는 알리고 싶어 하기에 한산도 대첩은 잘 알지만, 부끄러운 역사는 숨기고 싶어 하기에 쌍령전투는 잘 모른다.


 역사는 모든 사건을 기록하지 않고 그러고자 해도 할 수도 없다. 그것은 시간의 경과의 문제도 아닌 것 같다. 일주일 전에 몇 번 화장실에 갔었는가를 기억하는 사람은 거의 없지만 10년전 월드컵에서 안정환의 골든 골은 거의 기억할 것이다. 인간은 기억하고 싶은 것만을 기억하기도 하고, 구로사와 감독의 라쇼몽에서 표현된 것처럼 같은 사건을 사람에 따라 다르게 받아들이기도 한다. 부끄러운 일은 기록자체를 없애서 잊고자 하기도 하고, 없는 과거를 미화하기도 한다. 어느 나라나 역사를 보면 왕조의 초대 왕의 선조는 근거가 부족한 미화된 역사를 가지는 경우가 허다하다. 최근 우리나라 대학들 중에서도 갑자기 역사를 2배, 심지어 10배를 늘리는 낯간지러운 역사를 만드는 일도 일어나고 있다.


 그러면 미래지향적인 과거는 무엇일까? 오랜 역사 또는 굴곡진 역사 속에서 자랑스러운 역사만을 되새기면서 자부심을 심어주는 것이 미래지향적일까? 필자는 역사를 연구하는 전문가는 아니지만 세계사를 살펴보면 현재 강대국일수록 과거의 부끄럽고 수치스러운 역사를 있는 그대로 보여주고 계속 재해석하려 하는 것을 느낀다. 현재의 위치가 충분히 강하지 못하다고 느끼면 부끄러운 점을 감추고 자랑스러운 점만을 내세우는 반면, 충분히 강하다고 느끼면 오히려 부끄러운 것들도 내 놓고 이를 치유하기 위한 방안을 마련하기 위하여 노력하는 것 같다. 이탈리아는 과거 로마시대의 유산을 자랑하고 그것으로 먹고 살지만, 미국은 어려울 때의 역사를 자랑스럽게 내세우고 재해석 하고 있는 것 같다. 따라서 과거에 대한 자랑, 후회, 반성, 용서 등이 중요한 것 같지 않다. 임마누엘 칸트는 시간은 공간과 함께 외부세계를 직관적으로 포착하기 위한 인식의 ‘틀’임을 주장하였다. 과거는 자랑하는 것 또는 부끄러워하는 것이 아니라 직시하고 이성적인 생각을 하는 틀이어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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